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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틀비와 함께 Nov 17. 2024

타로카드로 떠나는 백두산 여행(1)

2번 여사제의 신비로움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      


자다가도 ‘애국가 1절’하고 툭 치면 눈 감고도 나오는 것이 애국가일 것이다. 각자 일상에서 바쁘게 살다가도 애국가를 들으면 내가 ‘한국인’이지 하고 다시금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애국가가 만들어진 일제강점기 당시, 기도하면서 돌을 쌓거나 문지르듯이, 모든 조선인이 백두산이 닳아 없어질 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기원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지금도 독립은 아니지만, 다른 형태로 그 간절한 마음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들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백두산을 우리 땅을 통해 갈 수 없고 중국, 연길을 통해서만 가야 한다. 그래서인지 백두산은 신화와 전설의 공간처럼 요원하게 여겨진다. 나는 이런 백두산을 직접 볼 수 있는 행운을 올해 7월 13부터 16일에 가졌다. 해외여행을 2018년 6월 이후 6년 만에 나가는 것인 데다 백두산이라니 설렐 수밖에 없는 여행이었다. 신화와 같은 공간이 내 눈앞에 펼쳐질 생각을 하면서 백두산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백두산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 그래야지 하는 마음과 그래도 나한테는 보여주세요’ 하는 엇갈린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하면서, 타로카드로 백두산을 설명하면 어떤 카드가 가장 적합한지 궁금해졌다. 백두산 여행을 오래 기억하는 방법으로 타로카드와 연결해서 글로 기록하고 싶어졌다.       


가장 먼저 떠오른 카드는 4번 황제였다. 2744미터의 웅장한 높이(한라산은 해발 1947미터)로 한반도를 내려다보는 백두산의 모습은 황제 카드가 상징하는 절대적 권위를 닮아있다. 천지를 품에 안은 채 사계절을 변함없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은 우리 민족을 수호하는 영산의 위엄을 보여주며, 단단한 현무암 기둥들은 천연의 성곽으로 황제가 가진 수호자의 면모를 드러낸다. 백두산의 위용과 당당함은 황제 카드와 연결할 수 있지만, 수비학적으로 13번 죽음 카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적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카드가 바로 2번 여사제 카드이다. 여사제 카드는 11번 정의 카드 그리고 20번 심판 카드와 연결된다. 여사제 카드는 신비로움과 직관, 내면의 지혜를 상징하며, 11번 정의는 공정함과 균형을, 20번 심판은 부활과 각성,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백두산의 당당함과 신비함 속에서 우리는 역사적 사실과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을 깨닫는다. 이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왜 일반인은 서파와 북파로밖에 올라올 수 없는지를 각성하게 만든다. 이 점에서 4번 황제보다는 2번 여사제 카드로 백두산 여행기를 작성하기로 했다. 백두산 여행기는 2편으로 적을 예정이다. 첫 번째는 2번 여사제 카드를 위주로 천지를 품은 백두산의 신비로움을 이야기하고, 두 번째는 11번의 정의와 20번의 심판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     

우리 비행기가 연길(연변)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예정보다 늦은 오후 7시였다. 비행시간은 2시간도 안 됐지만, 비행기가 연착했고, 항공기 예정에 따라 우리가 탄 항공기가 제일 늦게 내리게 되었다. 주의사항은 연길 공항은 군부대와 민간 항공이 같이 쓰고 있어서 창문을 절대 열면 안 된다고 한다. 여행이란 게 이런 차이를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길국제공항 

연길 여름 저녁 날씨는 생각보다 시원했다. 저녁 시간이어서 공항 근처 조선족 식당에 들러 가볍게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전통 조선족 백반이었는데 볶은 고기 요리와 다양한 나물 요리가 나왔다. 간은 전체적으로 슴슴하다는 표현이 뭔지 정확히 이해될 정도였다. 원래 짠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내 입맛엔 맞았다.     


저녁 식사 후 연길에서 백두산의 관문인 이도백하로 다시 차를 타고 2시간 동안 이동했다. 연길의 조선족 자치주는 자신의 특성을 알리는 아이콘을 배너나 가로등에 부착하는데, 이도백하의 대표 아이콘은 잣이었다. 늦은 밤 도착한 호텔 앞 잣 모양의 가로등은 백두산 관문에 도착했다는 실감을 주었다. 무엇보다 가로등 위의 달빛은 마치 여사제가 쓰고 있는 왕관과 유사했으며,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도백하 금수학 호텔 앞 '잣'모양의 가로등과 달빛

각자의 방으로 배정받고 올라가기 전, 가이드가 내일 백두산 서파에서 천지를 볼 수 있게 기도를 올리라고 숙제를 줬다. 우리 일행은 나 빼고 다들 모범생이어서 숙제는 꼭 하는 사람들이다. 그 늦은 시간에 한 방에 모여 내일 여행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백두산 천지도 꼭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던데 우리 일행은 다들 덕은 잘 쌓은 사람들인 것 같아 걱정은 안 됐다. 

내 방으로 돌아와 내일 챙겨갈 등산화, 스틱, 바람막이와 간단한 간식을 확인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산에 올라가면 멀미를 느낀다고 해서 한국에서 챙겨 온 멀미약을 눈에 띄는 곳에 두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자, 내일 백두산이 과연 나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졌다. 내일이면 드디어 오랫동안 꿈꿔왔던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렘으로 창밖을 바라보자, 달빛이 마치 여사제의 은은한 광채처럼 느껴졌다.     


서파의 계단 1442개를 무사히 올라갈 수 있길 진심으로 기원했고, 그 계단을 오르는 과정이 마치 여사제가 말하는 내면의 여정처럼 느껴졌다. 육체적인 도전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민족의 정신을 찾아가는 순례가 될 것 같았다.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여행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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