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 밥 한 번 먹는 것도 쉽지 않다. 맛집을 찾고, 분위기를 본다. 상술과 사진에 속지 않으려 댓글도 꼼꼼히 본다. 후보들이 경합하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토너먼트다. 가격은 적당한가, 주차는 편한가 등이 맞붙고 마지막으로 한 집이 남는다. 마무리를 위해 전화를 걸지만 ‘두 명은 예약이 안되는데요’ 이 한 마디면 첫 단계부터 다시 시작이다. 검색, 검색, 전화, 예약.
물건을 살 때는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인터넷을 뒤진다. 회원 가입을 하고 앱도 설치해 쿠폰을 받는다. 카드를 새로 발급받기도 하고 해외에서 물건을 직접 사들이기도 한다. 자유무역 만세. 배대지니 뭐니 이런 것들을 찾고 환율도 따져 가면서.
피곤할 수밖에. 그래서 피로 회복을 위해 비타민C도 먹고, 간에 좋은 알약도 먹는다. 그래도 개운치 않다. 이게 꼭 간 때문만은 아닐 것 같아 운동을 하러 가기도 한다. 물론 운동하러 갈 때도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어느 헬스장이 좋은지 오랫동안 검색한다. 피곤하다. 애초에 피곤할 일을 안 만들면 영양제도 운동도 필요 없을텐데.
짧은 여행은 이런 피곤함의 총집합이다. 익숙한 것들이란 하나도 없다. 안 하던 일들을 계속 해야 한다. 힘들게 휴가를 냈고, 비싼 항공권에 호텔을 잡아 왔으니 그에 상응하는 본전을 뽑아 가야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육체적 한계를 뛰어 넘게 해 준다. 쇼핑, 맛집, 바다, 관광지. 다시 쇼핑, 맛집, 호텔 풀장. 밤 쇼핑. 뫼비우스의 고리는 끝이 없다. 블로그에서 본 유명한 가게 앞에 줄을 서고, 동호회에서 받은 쿠폰을 만지작거리며 쇼핑몰로 가는 버스를 탄다. 다들 빠이팅이 넘친다. 오전엔 ㅃ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하지만 결국 사람은 육신의 노예. 오후 두 시가 되면 몸에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오후는 육체가 지배하는 시간. 육신이 명령한다. 한숨 잤으면 좋겠다. 에어컨 틀어놓고 까질러 누워서. 하지만 3박 4일 정도의 짧은 일정에 그런 짓을 했다간 하루가 날아간다. 아직 완전히 주권을 뺏기지 않은 정신이 소심하게 반항한다. 결국 육체와 정신은 레드불 한 캔으로 타협한다. 시원하게 한 캔을 쭉 마시고 다시 어디론가 간다. 인터넷에서 봤던 그곳으로. 가도가도 끝이 없는 나그네길. 출발과 동시에 몸이 불평한다.
이런 나그네길을 이틀쯤 걷다 보면 바다고 뭐고 다 귀찮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날은 바닷가에 도착해서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차에서 에어컨을 틀어 놓고 퍼질러 잤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로 피곤했다. 앞유리를 천으로 가리자 아늑하니 제법 잘 만했다. 한참을 자다가 내 차 옆의 주차 공간으로 차가 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낡은 픽업 트럭 한대가 굳이 차를 뒤로 세우느라 분주했다. 이렇게 차 세울 자리가 많은데 왜 굳이 뒤로 주차하겠다고 저럴까 싶어 바라봤다.
의문은 이내 풀렸다. 시동이 꺼지자 반바지에 헐렁한 민소매 셔츠를 입은 청년 둘이 내렸다. 천천히 트럭 뒷부분으로 걸어가서는 적재함의 플랩을 내리고서는 거기에 걸터 앉았다. 두 청년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그날 바다에 온 두 청년이 한 일은 그게 전부다. 해가 질락말락 하고 있는 일요일의 늦은 오후였다. 그러니까 굳이 바닷가에 차를 몰고 와서 후진 주차까지 한 후에 기껏 한 일이라곤 차에 걸터 앉아 담배 한 대 피우면서 해 지는 바다를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오래 전 봤던 영화 속 대사 한 마디가 떠올랐다.
“더 살아도 결국 결국 아무 것도 없단다.”
영화 전우치에 나오는 대사다. 어찌어찌하다 도사가 요괴로 변해 버렸다. 요괴는 식당 안의 손님과 직원들을 모두 죽였다. 운 좋게 살아 남은 소녀는 문 밖에 몸을 숨기고 제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비명을 삼키고 있었다. 여유있게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걸어 나가던 요괴는 소녀의 기척을 느끼고 소녀에게 천천히 걸어간다.
“몇 살 이지?”
“열 한 살이요”
겁에 질린 소녀의 대답과 함께 요괴는 소녀에게 손을 뻗친다. 소녀는 겁에 질린다. 소녀를 바라보던 요괴가 무표정하게 말한다.
“더 살아도 결국 결국 아무 것도 없단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눈이 커지는 소녀를 바라보던 요괴는 짧은 코웃음을 남기고 손을 거둬 들인다. 더 살아도 아무 것도 없는데 굳이 죽일 이유도 없다는 식이다.
전우치는 요괴와 도사가 나오는 유쾌한 액션 영화다. 말썽많은 도사 전우치와 요괴로 변해버린 도사 화담의 대결이 흥미진진하다. 영화의 재미와 별개로 저 대사 만큼은 오랫동안 마음 속에 무겁게 남아 있었다. 영화 속에서 저 말을 들은 소녀의 나이는 열한 살. 열한 살이면 뭘 시작하건 이룰 수 있는 나이다. 아주 예외적인 것들, 예를 들어 은퇴가 극단적으로 빠른 피겨 스케이트나 리듬 체조 선수같은 것만 아니라면 뭐든지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열심히만 한다면 그런 분야를 시작하더라도 충분히 성취를 얻을 수 있는 나이가 열한 살이다.
실패할 것이라는 말보다 무서운 것은 앞으로 남은 날동안 이룰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더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그전에 이루고 싶은 게 있기는 한 것일까. 이런 고민에 앞서서 그까짓거 이뤄 봤자 아무 의미도 없는데, 굳이 살아야 할 이유는 있을까. 더 살아야 아무 것도 없는데.
뭔가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세상에는 목표, 혁신, 경쟁, 변화, 효율, 효과, 이런 단어들이 주류를 이뤘다. 이런 단어들은 사람을 피곤하게 했다. 피곤할 때면 가끔씩 영화 전우치 속 대사가 가끔씩 떠올랐다.
담배를 다 핀 두 청년은 해가 지기 시작하자 별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서 해가 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나는 두 청년과 지는 해를 번갈아 바라봤다. 해가 바다 뒤로 넘어가자 두 청년은 트럭에서 내려와 적재함의 트랩을 다시 세워 고정시켰다. 손발이 척척 맞아 이내 트럭은 다시 짐을 실을 준비를 마쳤다. 둘은 차에 올라탔고, 차는 왔던 길을 돌아갔다. 말 그대로 담배 한 대 필 시간이었다. 그들에게 바다에 왜 왔어요라고 물으면, 담배 피러요라는 짧은 대답만이 돌아 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