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는 누구나 먹어 봤다. 지금은 분홍색 소세지와 멸치 볶음이 들어간 도시락 대신 편의점에서 사먹던 싸구려 햄버거 맛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는 시대다. 앞으로는 퇴근이 늦어져 저녁을 못먹고 2차 자리에 합류한 사람은 '추억의 도시락' 메뉴 대신 '추억의 햄버거'를 주문해 안주삼아 먹으면서 '중학교때 편의점에서 이거 맨날 사먹었는데'하면서 추억에 잠길 것이다.
햄버거는 맛없기가 어렵다. 빵과 고기, 치즈는 따로 먹어도 맛있다. 야채는 건강할 것이라는 환상을 준다. 그래서 이들을 함께 먹으면 환상의 맛이 된다. NBA 올스타 멤버로 꾸린 국가 대표팀이 올림픽 금메달을 못 따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햄버거가 맛이 없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 햄버거 비하 발언이 아니라 재료 하나 하나가 올스타급으로 훌륭하다는 의미다.
맛과 추억, 이 두 가지가 겹치면 음식에 대한 컬트적 숭배가 생겨난다. 숭배는 찬양으로 이어진다. 기회가 생기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햄버거는 말이야'하면서 썰을 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햄버거는 괌에서 먹었던 햄버거다.
햄버거를 주 종목으로 하는 가게들은 괌의 여기저기에 있다. 해안 도로를 따라 남부를 돌다보면 대략 10분 간격으로 햄버거 가게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도를 운전하며 원조 소머리국밥집이나 양평 해장국집을 마주치는 것과 비슷한 빈도다. 국도변에 있는 음식점들은 전 세계 공통의 정서가 있다. 우선 간판이 크고 화려하다. 1km 전방에서부터 간판이 보인다. 간판이 보이는 순간 '저건 도대체 뭐하는 집이길래' 하는 호기심이 든다. 500미터 전방 정도에서는 '아하 햄버거 가게구나' 하면서 알아 볼 수 있다. 간판을 보는 순간 배가 좀 출출해지거나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일단 차를 세우고 잠깐 스트레칭이라도 할까하는 생각이 짧은 순간에 파바박 떠오른다. 이유가 뭐건 결국은 속도를 줄이고 가게로 들어 가게 된다. 이건 일종의 법칙이다. 이런 가게는 진입로도 굉장히 잘 닦여 있고, 주차장도 널찍하다. 이것 역시 국도변에 있는 음식점의 글로벌 스탠다드 중 하나다. 그러니 깡통만 보면 차고 싶어하는 초등학생처럼 무조건 차를 세울 수 밖에.
나도 그렇게 괌 남부의 국도를 따라 해변가를 운전하다 잔지(Jan Z)버거에 들어갔다. 점심을 먹은 지는 좀 지났고 저녁 식사는 아직 제법 남은 시간이었다. 뜨거운 오후의 한가운데였지만 가게 안은 어두컴컴하고 시원했다. 바에는 두 남자가 민소매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대낮에 편의점 앞의 원색 플라스틱 테이블에 남자 둘이 앉아 멸치나 땅콩을 놓고 막걸리를 마시는 것같은 나른하고 느슨한 분위기였다.
오늘의 버거를 주문했다. 접시에 담긴 햄버거와 콜라, 감자 튀김이 나왔다. 그동안 동네 백수 같은 아저씨들은 맥주를 한 병씩 더 주문했다. 나는 천천히 햄버거를 먹고 감자 튀김에 케찹을 찍었다. 가게 창 밖으로는 선착장이 보였다. 한낮이라 그런지 배도, 사람도 없었다. 맥주를 마시는 두 남자는 리드미컬하고 신나게 떠들었다. 편안하고 느긋했다. 햄버거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햄버거가 가장 어울리는 시간과 장소였다. 햄버거 역시 본연의 역할은 충분히 다 했다. 앞서 말했지만 햄버거가 맛없기는 힘들다. 잔지버거는 몆 년 전 없어졌다. 옛 기억을 더듬어 다시 가보면 가게가 바뀌어 있는 것도 국도변 음식점의 글로벌 스탠다드다. 다시 방문해 실망할 일도 없어졌으니 잔지버거는 기억 속 최고의 버거로 영원히 남았다
식당에서 먹어도 좋지만 괌에서 먹는 햄버거의 완성은 테이크 아웃이다. 투몬 베이 쪽 K마트 앞의 삼거리에 있는 도스 버거(Meskla Dos)가 그런 곳이다. 도스버거는 테이블이 4~5개 밖에 없는 작은 가게다. 가게 안은 덥고 시끄럽고 음식냄새가 가득하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주문 카운터에는 항상 줄이 늘어서 있다. 꽤 유명한 집이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모여들어 햄버거를 먹기 위해 얌전히 줄을 선다. 나도 그 일행의 하나로 합류해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메뉴판을 보고 있으면 줄은 금방 줄어 든다. 햄버거의 미덕 중 하나가 스피드다.
문장 끝에 테이크 아웃 플리즈를 붙이거나 혹은 투고?(to go?)라고 종업원이 물을 때 쿨하게 고개를 까딱하면 하얀 스티로폼에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곱게 담아준다. 가게 안에서 먹으면 콜라나 사이다를 무한 리필해주지만 그런 것에 연연하면 괌 초보다. 소스와 냅킨 따위를 챙겨 이파오 공원으로 갔다. 차로 10분이면 간다. 이파오 공원의 넓직한 잔디밭에는 바베큐를 해 먹을 수 있도록 시멘트로 만든 테이블과 화덕이 있다. 바닷가에서 고기를 구워먹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괌 주민들이 친구처럼 느껴졌다.
테이블에 앉아 비닐봉지에 든 햄버거 도시락을 꺼냈다. 바람이 불어오고 아이들이 물에서 첨벙거리며 노는 소리가 들렸다. 파리도 달려 들었다. 지름이 CD만한 햄버거는 조금 식기는 했어도 여전히 따뜻했다. 따뜻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었다. 한 입 크게 베어 먹었다. 워낙 커서 한 입 먹어도 여전히 원형에 가까웠다. 펠리컨 정도가 와서 크게 한 입해야 원형이 이그러질 것 같았다. 맥도날드나 버거킹에서 먹어본 매끈한 느낌과는 다르게 어딘가 좀 거친 느낌이 들었다. 고기는 좀 더 질겼고, 빵은 좀 덜 푹신했다. 새콤달콤한 자극적인 맛은 거의 없었다. 분명 햄버거인데 집밥같은 느낌이었다.
밖에서 먹고 있으니 조금 더웠다. 파리가 계속 달려들어 손을 저어가면서 먹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집에서 만든 것 같은 햄버거를 먹고 있자니 어쩐지 이곳에서 오래 살았던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햄버거맛보다 그 기분이 더 좋아 마지막 한 입까지 정성들여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