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평화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방법을 찾으려면 우선 세계 정상들이 모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장소는 고급 호텔이나 대형 컨벤션이다. 이런 곳에서는 양복을 빼입고 앉아 회의를 하는게 가장 자연스럽다. 늘 하던 방식대로 국기를 갖다 놓고 요란하게 둘러 앉았으면 핵무기부터 얘기하는 게 정석이다. 아니면 환경 오염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다. 모두 인류의 큰 적들이다.
일단은 핵무기로 시작하자. 술을 마시더라도 시작할 때는 간단하게 맥주를 한 잔씩 돌리는 법이다.
미국이나 영국, 혹은 프랑스의 정상이 인도와 북한의 정상에게 소리를 지른다. 사퇴 혹은 사과하라고 호통치는 우리 나라 국회의원의 어조와 태도를 빼다 박았다.
“당장 핵무기 폐기하세요. 당장!”
누구에게 한 말인지 몰라도, 북한 정상이 이런 말을 듣고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이내 얼굴이 일그러지고 쨍하는 목소리가 튀어 나온다.
“웃기시네. 그러는 에미나이가 갖고 있는 건 핵폭탄이 아니고 이쑤시개네?”
통역가는 이 말을 어떻게 옮길지 고민한다. 진땀이 난다. 그나마 통역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걸 통역없이 대화랍시고 주고받기보다는 핵탄두를 서로 던지고 받는게 안전하다. 핵탄두는 쉽게 안 터진다고 들었다. 반면, 말은 쉽게 끓고 터진다. 성격 급한 지도자가 있다면 통역이 고민 끝에 옮겨준 말에도 부들부들 떨면서 스마트폰으로 핵폭탄 발사를 지시할 지도 모른다. 세계 평화, 실패.
핵무기는 실패했지만 좀 가벼운 주제는 대화로 해결 가능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녹아 내리는 빙하와 갈 곳을 잃은 하얀 곰같은 문제들. 이번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의 정상이 앞장을 선다. 일본이나 덴마크, 스웨덴의 정상도 거든다. 가장 중립적이라는 누군가가 말을 시작한다.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해...” 여기까지 말하고 나면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무슨!”이라고 누군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를게 뻔하다. 동조하는 누군가가 "너희들은 살 만큼 사니까, 이제 좀 살아보려는 우리보고 참으라는 거 아냐!"라고 삿대질을 한다. 이것 역시 우리나라 국회에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세계 평화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회의장 분위기는 삭막하다.
이런 위기의 순간 누군가가 넥타이 매듭을 한 손으로 느슨하게 풀어 헤치면서 “우리 춤이나 출까요, 다 같이. 어차피 답도 안 나오는데.”라고 쿨하게 말을 하면 어떨까? 그가 일어나는 순간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미텐더'를 경쾌한 템포로 편곡한 곡이 울려 퍼진다. 자국의 댄스곡이 아니라 전 인류가 사랑하는 엘비스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진정성을 알 수 있다. 그 진정성에 모두들 어깨를 들썩들썩하다 책상을 밀어내고 연단으로 나선다. 그리고 다 같이 댄스! 어디선가 드럼이 두둥 둥둥둥하고 울린다.
차모로 야시장(Chamorro Village Market)에는 이런 분위기로 사람들이 춤을 추는 댄스 홀이 있다. 클럽이 아니라 정말 댄스 홀이다. 아무 것도 없는 넓직한 홀이 있고 한 구석에는 밴드가 작은 무대에 올라 엘비스나 아바의 올드 넘버 중 춤추기 좋은 곡들을 연주한다. 베이스 기타, 드럼, 건반으로 구성된 단촐한 밴드지만 엘비스나 아바의 힛트곡은 약수터에서 라디오로 들어도 신이 나는 노래다.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강남 스타일을 튼다. 요즘엔 방탄소년단을 틀지도 모른다. 탁월한 선곡 덕에 나이가 많거나 젊거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함께 춤을 춘다. 치마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여자가 턴을 하면 우아하게 치마가 펼쳐지고 그만큼의 동그라미가 생긴다. 그 원을 보고 있자면 동서양 모두 천이 귀하던 시절에 기를 쓰고 긴 치마를 입어댔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인류는 아름다움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존재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댄스홀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할아버지도 있다. 베테랑답게 박자를 타고 놀면서 사람들을 이끈다. 각자 저마다의 스텝을 밟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똑같은 스텝을 밟으며 같은 춤을 춘다. 손뼉으로 짜짜짜짝짝하는 소리를 내면 반사적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처럼 일사불란하다. 매주 한 번씩 다 함께 같은 춤을 추다 보면 언젠가 세계 평화도 오지 않을까.
춤을 추다가 지치면 야시장을 구경한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열리는 시장이다. 야시장이라고 부르지만 오후 5시에 시작해 9시면 문을 내린다. 한국인에게는 초저녁이다. 그래도 야시장답게 들어서는 곳에서부터 이런 저런 음식들과 여행지 특유의 기념품을 판다. 음식들은 푸짐하다. 플라스틱 도시락에 괌 특유의 레드 라이스와 갈비 맛이 나는 돼지 고기, 양념 닭고기 같은 것들을 푸짐히 넣어도 비싸지 않다. 돼지 혹은 닭고기로 만든 꼬치도 좋다. 흔히 말하는 아는 맛이다. 아는 맛은 편하고 맛있다.
관광지의 기념품은 월드와이드하게 비슷하다. 바다가 그려진 티셔츠, 민속 공예풍으로 만든 목걸이. 내가 보기엔 도대체 이걸 사서 어디 쓰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것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다.
밥과 고기가 담긴 도시락과 맥주를 챙겨들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1층 댄스홀을 바라보기 좋은 난간이 있다. 난간에 기대 맥주를 마시며 춤추는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여전히 즐겁다. 노래가 이어지는 한 춤은 계속된다. 나이를 먹어도 치마는 살랑거린다. 세계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