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중부 바닷가의 도로를 따라 운전하는 것은 정말 즐겁다. 오늘 저녁 식사는 자기가 사겠다는 편한 선배와 뭘 먹을지 메뉴를 정하지 않고 '술이나 한 잔 하자' 하고선 먹자골목을 걷는 기분과 비슷하다. 이런 류의 골목은 보통 들어서는 순간 아구찜 집부터 하나 보인다. 그 특유의 간판 글씨체와 색감을 보는 순간 침이 고인다.
'오, 아구찜, 매콤한 양념에 아삭한 콩나물, 담백한 흰 살, 좋지 좋아.'
이런 대화를 주고 받다보면 생선 굽는 냄새가 난다. 아구찜은 잠시 옆으로 밀쳐두고 냄새를 따라 가보면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오는 맛' 이런 걸 써 붙이고 생선을 굽고 있다. 투명한 가게문 너머 손님들은 술잔을 부딪히고 있다. 이것도 맛있을 것 같고 저것도 맛있을 것 같아서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에 다시 걷는다. 결국은 골목 끝까지 기웃거리며 천천히 걷게된다.
아산(Asan) 비치에 들어가게 된 건 말하자면, 먹자골목을 끝까지 걸어본 후의 일이다.
여기를 기웃, 저기를 기웃하면서 '캬, 곱창 좋죠. 어! 저기 복어집도 있는데요' 어쩌고 하는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정신 없이 걷다가 결국은 골목 끝에 도착한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건 없겠지? 그렇다면 정하긴 정해야 할 텐데'하는 찰나에 이지카야가 하나 보인다. 주차도 적당해 보이고 외관도 깨끗하다. 이미 많은 곳을 지나쳤고 더 이상 갈 곳은 없다. 돌아서기 보다는 들어가는 쪽이 편하다.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처음부터 아산 비치에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숙소가 있는 투몬(Tumon)에서 출발해 아산 비치에 이르기 전까지 이름도 모르는 몇 개의 해변을 감탄만 하면서 30마일 정도로 자동차에 앉아 스쳐 지나다 보니 슬슬 조바심이 났다. 초행길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이 계속 나타날 것인가. 어느 순간부터 해변은 보이지 않고 도로만 이어졌다. 출장이 아니라 여행이다. 어딘가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바다를 느껴보고 싶다는 찰나에 해변으로 이어질 것 같은 잘 포장된 진입로가 나타났다. 단련된 술꾼의 직감으로 알았다. 여기가 먹자골목의 맨 끝에 있는 이자까야다. 반사적으로 핸들을 꺽었다. 늘 하던 일이어서 능숙하게 해냈다.
들어가면서 표지판을 보니 '태평양전쟁기념 역사박물관'이라고 영어로 길게 써 있었다. 이름에 걸맞게 잔디가 잘 자란 마당 위에는 녹이 시커멓게 슨 전봇대만한 포탄도 전시돼 있었다. 바다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마당을 한 바퀴 돌고서는 바다 가까이에 주차를 하고 내렸다.
차에서 내린 순간, 바람이 몰려들었다. 천지 사방에 온통 바람이 가득했다. 세상에 바람이 부는 곳은 어디든지 있다. 그러니 바람 좀 분다고 호들갑 떨 수는 없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그런데 그곳은 좀 달랐다. 바람의 밀도가 달랐다. 속도나 세기가 아니라 밀도다. 모든 공간을 빈틈없이 바람이 채우고 있었다. 바다에서 육지로 바람은 쉬지 않고 불어왔다.
바다는 모래밭도 없이 육지에 연달아 붙어 있었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는 잎이 손바닥큼만한 덩쿨식물들이 바닥에 붙어 서로를 단단하게 붙잡고 바람에 시퍼렇게 흔들리고 있었다. 식물이 끝나고 물이 들어찬 자리에는 굵직하고 거친 바위가 바다로 바로 이어졌다.
하늘은 맑고 날씨는 따뜻했다. 바다에서 바람이 계속 불어와 옷은 펄럭거리고 발치의 작은 풀들도 바람에 흔들렸다. 파도도 끊임없이 철썩거렸다. 펄럭거리고 철썩거리는 규칙적인 소리만 끝도 없이 반복됐다. 반복이 거듭되니 아예 아무 소리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고요함은 억지로 소음을 차단시킨 공간의 고요함과는 다르다. 조용한 사무실은 오히려 불안하다. 어디선가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와야 편안하다. 화가 난 누군가의 질책하는 목소리마저 있으면 '그래 이게 사무실이지'하는 흐뭇한 안도감마저 드는 것이다.
이런 저런 소리가 있는 공간에서 관심은 외부를 향하고, 소리가 들려 오는 쪽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무념무상은 스님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일반적인 직장인들은 소리 하나에 감각 하나씩, 그렇게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걸어 둔다. PC에 하나, 카톡에 하나, 사무실 전화에 하나, 그리고 부장님께도, 와이프에게도, 어머니에게도, 그렇게 연결고리는 늘어간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처럼 사람 이름 하나에 고리 하나씩.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낭만적이긴 하지만, 이런 연결고리가 별처럼 많아지면 자기 자신과의 연결고리에 대해 쓸 수 있는 감각이나 관심은 줄어든다. 인간의 관심은 커다란 물탱크와 같다. 여기저기 빨대를 꼽아대다간 곧 말라붙게 마련이다. 물탱크나 사람이나 그런 건 똑같다. 인체의 3분의 2가 물이라는 말과 사람 됨됨이를 그릇에 비유한 것은 참 의미심장하다. 나는 그릇은 크지 않으면서 꼽혀 있는 빨대는 많았다.
조용한 곳에서 외부를 향한 빨대를 다 뽑아 버리자 내부를 향한 빨대로 물이 꿀렁꿀렁 들어가기 시작했다. 소리가 없는 공간에서 감각은 묵직하게 내부를 향하고 그제서야 굶주리고 메마른 내 속의 뭔가가 물을 빨아댔다.
내 속의 뭔가가 한참을 빨아댄 후에 질문이 들려왔다.
-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었니
- 너는 무엇이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니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바람 속에서 펄럭거리며 서 있으니 뭐 그럭저럭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어릴 때 잔뜩 화가 나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 보니 어째 몸도 개운하고 바람은 선선한데 배가 슬쩍 고픈 그런 초여름 저녁 나절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