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감 감생]1. 살아 있는 느낌이란 건 뭘까

괌에 왜 자주 가냐고 물으신다면

by 탱커레이 텐

자정 쯤에 술에 취해서 택시를 타고 강변북로를 지날 때마다 한국 관광 홍보 영상에 이 장면을 넣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곤 했다. 이 순간은 평균적인 한국 직장 남자의 애환이 농축된 시간과 공간이다. 내비게이션에서는 오른쪽 커브 혹은 과속에 주의하란 말이 반복적이고 단조롭게 나오지만, 기사와 승객 모두 신발 꺾어 신지 마라는 어머니 잔소리를 듣는 기분으로 한 귀로 흘린다. 애초에 귀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창 밖으로는 은은한 주황색의 나트륨등이 뒤로 휙휙 지나간다. 지나간다. 지나간다. 그리고 잠이 든다. 수면 내시경보다 빠른 속도로 잠에 빠진다. 잠결에 신의 계시처럼 택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군자역 어디로 갈까요?"

좀 짜증이 난듯하면서도 너같은 놈을 내가 한 두 번 보는 게 아니라는 듯 달관한 목소리다. 잠이 덜 깨서 어딘지도 몰라 두리번 거리다가 가까스로 내릴 곳을 찾아내면 어딘가 뿌듯하다. 힘차게 말하지만 발음은 잘 안된다.

"저 앞에 세워 주세요."

잠이 덜 깬채로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걸어 가 겨우 이를 닦고 잠이 든다. 다음날 새벽엔 매트릭스에 들어가서 죽을 위기를 넘기고 나온 요원처럼 휴대폰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난다. 지갑이 잘 있는지, 팔다리는 잘 붙어 있는지, 발가락은 왜 이렇게 아픈지 확인해 보고는 큰 탈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래봤자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있고, 없어야 할 것들이 없는 것 뿐이다.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가다가 바닥에 놓인 자켓을 본다. 양복 자켓 가슴팍이 주먹만큼 허옇다. 허연 얼룩이 왜 생겼는지 의아하지만 샤워를 마칠 때까지 기억해내지 못한다. 결국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는다. 어차피 물티슈로 문지르면 없어질 자국이다.


올림픽대로를 지날 때도 있었고, 가끔은 옷이 깨끗할 때도 있었지만 그게 뭐 대수겠는가. 옷이 깨끗한 대신 정강이에 멍이 드는 정도의 차이였다. 이런 일을 세 번 정도 반복하면 토요일이 됐다. 그러니까 월, 수, 금요일에 술을 마셨다. 깨어 있는 시간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다. 술에 취해 있거나 술을 깨고 있거나 술을 마시고 있거나. 정도만 다르다 뿐이지 몽롱했다는 점에서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그 틈틈이 일을 했다. 그 짧은 시간에 그 일들을 다 해냈다는 걸 생각하면 가끔 자랑스럽기도 했다.

탑 스타들이 너무 바빠서 인기를 실감하기 힘들다고 인터뷰에서 겸손하게 말하는 것처럼, 나도 멘토 특강이러던가 캠퍼스 리쿠르팅 같은 자리에서 마이크가 주어지면 겸손하게 미소지으며 말하고 싶었다.

"매일 술마시느라고 살아 있는 걸 느낄 틈이 없어요."

회사 측에서도 내가 이런 말할 것을 짐작했는지 내게 마이크를 권하지 않았다. 피차간에 얼굴 붉힐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인생은 왜 살아야 하는가. 이런 문제는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닌 것 같다. 석가모니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이런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낼 수 있다. 일반인들은 어디로 갈 것이라고 방향을 정했으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갈 것인지만 고민하면서 묵묵히 가는 수밖에 없다. 내가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 끝에 꿀단지가 있을 것이라 믿고 계속 걸어 가야하는 것이다. 조니 워커 위스키가 괜히 잘 팔리는 게 아니다. keep walk.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은 대단하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욕해도 굴하지 않는다. 반면,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이 틀린 것인지 맞는 것인지 아무래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특별한 목표도 없었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한 인생도 힘들지만 아무 목표도 없이 휩쓸려 떠다니는 삶도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군함은 군함대로 힘들고 종이배는 종이배대로 힘들다.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들다면 몸이라도 편하게 살자는 생각에 어느날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두고서 어떤 책을 보다 깜짝 놀랐다. 어떤 책에서 본 얘기다.

1955년 12월 1일. 로자 파크스는 몽고메리에서 버스를 탄다. 그리고는 버스 안의 백인 전용 좌석에 앉는다. 이로 인해 엄청난 시위가 벌어졌고, 흑인 인권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먼 훗날, 한 대학원생이 로자 파크스에게 왜 앞자리에 앉았는지 물었다. 로자 파크스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피곤해서요."

회사를 그만두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진심으로 안타까워 했다. 조금만 일찍 읽었더라면 나 역시 비슷하게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회사를 그만두려는 거니?"

"피곤해서요"

나는 로자 파크스의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잡다한 규칙들을 구질구질하게 지켜가면서 사는 건 시대와 국적, 인종을 뛰어 넘어 피곤하고 귀찮은 짓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이것저것 다 귀찮아서 정도는 잠만 잤다. 침대에서도 자고 소파에서도 잤다. 잠을 자지 않는 시간에는 소파에 누워서 VOD로 오래 전 개그 프로를 연달아 봤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나니 볼만한 프로그램도 없고, 딱히 잠도 오지 않았다.


뭘 해도 상관없는데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뭘 할까."

이런 고민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한 적이 있었다. 무려 20년쯤 전의 일이다. 시간은 남아 도는데, 무엇을 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전까지는 얌전히 시키는 것만 하면 됐는데, 살을 더 먹자마자 사람들은 갑자기 온화한 미소를 짓더니 '자 이제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렴'이라고 속삭였다. 당황한 내가 '아니, 내가 원하는 게 뭔데요?' 라고 다시 물으면 이내 한심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거야 니가 제일 잘 알고 있겠지"

그리고 그들은 떠났고 남겨진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이걸 하고 싶은데, 너무 힘들 것 같아. 저건 내가 생각해도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들 것 같아. 우리 엄마 빨리 호강시켜드려야 하는데."

결국 나는 딱히 뭘 해야겠다는 생각없이 열심히 수업을 듣고 레포트를 쓰고 시험을 쳤다. 일단 뭐든간에 열심히 한다는 건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겨울 밤에 언덕배기에 있는 자취방으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걸어가면서 길거리에서 모카커피를 한 잔 사먹는다던가 하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나에게 충고를 했던 사람들도 별반 다를 바 없이 그렇게 산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도 '뭐, 일단 열심히 했으니까'하면서 다 같이 모여 맥주라도 한 잔 기울이면 기분이 좋아졌다.그 기세를 몰아 졸업을 하자 열심히 들어야 할 수업도 써야 할 레포트도 없어져 버렸다. 또 고민 했다.

할까.

다들 회사를 들어가는 것 같았다. 쉽지 않아 보였다. 이력서를 내고 떨어지고, 면접을 보고 떨어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날 무렵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에 들어가자 고민할 게 없었다. 뭔가를 하라고 시키는 사람이 넘쳐 났다. 어찌나 잔뜩 시켜댔는지 정신을 차리자 10년이 지나 있었다. 견디지 못해 걷어차 버리자 소나기 그친 오후처럼 갑자기 고요해졌다. 다시 원점에 돌아온 기분으로 소파에 누워 고민했다.

뭘 할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점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해보지도 않았고, 좋아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고 40년 가까이 살아온 것이다.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몽롱한 상태에서.

열심히 해도 제자리란 생각에 뭔가 억울했지만 대학, 회사에서 섭섭하지 않게 대접을 받고, 놀기도 했으니 크게 손해 본 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본전만 해도 다행이니, 너무 무겁지 않은 기분으로 내가 좋아했던 일을 해보고 싶었다. 살아 있다는 기분같은 걸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기분을 가장 많이 느꼈던 괌 여행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이것저것 다 합쳐서 한 달도 안되는 체류기간에 전적으로 관광객 코스만 돌아다닌 탓에 쓸만한 정보는 거의 없다. 정확하게는 괌 여행기가 아니라, 괌에서 느낀 기분들에 대한 모음집이다. 이런 순간들을 잘 기록하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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