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강제노동국가, 한국

노동인권후진국이 자국민을 착취하는 방법이 궁금하십니까?

by 고발자a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아래 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국방부 공고를 자세히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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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민참여입법센터)


2019년 10월 31일 국방부가 입법예고하였고, 만약 시행된다면 2021년 1월 1일부터 적용되는 이 따끈따끈한 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사회복무요원 및 사회복무요원 소집대상자인 보충역에게 현역병으로 복무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겠다.


현재 사회복무요원 또는 4급 보충역 판정자는 일명 '슈퍼 굳건이 프로젝트'나 다른 질병, 심신장애의 치유 활동을 통해서 보충역 판정을 받게 한 신체적, 정신적 결격사유가 사라지게 하지 않는 이상 현역병으로 지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제는 (거의) 어떤 사유로 인해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건 현역병에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주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규정과 상식을 뒤엎는 정부의 이러한 행보는 어떻게든지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뒤틀린 의지의 표상이다.

위 사진들의 내용을 읽어보았다면 알겠지만 정부가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는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 중 하나인 '강제노동 협약(제 29호)'을 비준하기 위해서이다.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자 지위 향상을 위해 존재하는 국제연합(UN)의 전문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권의 글로벌 스탠다드이며 비준한 국가 내에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같는 여러 '협약'들을 마련해 놓았는데, 그 중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8개의 협약이 '핵심 협약'이다. 부끄럽게도 선진국을 참칭하는 대한민국은 과거 비준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핵심 협약 8개 중 절반인 4개를 비준하지 않은 상태이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강제노동 협약(제 29호)'이다. 그리고 이를 비준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사회복무요원 제도가 바로 ILO가 규정한 강제노동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즉, 명백하게 '어떤 사람이 처벌의 위협 하에서 강요받았거나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노동과 서비스'에 해당하며 '군사적 성격의 업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회복무요원의 노동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강제노동이며, 한국 정부가 뻔뻔스럽게 사회복무요원 제도에 대해 협약 적용 예외를 인정받으려 ILO에 몇 차례 문의하였을 때마다 강제노동 협약 적용의 예외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아왔다.


앞선 글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3. 병역(兵役)은 국민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국가에 대한 '군사적 의무'를 의미한다. 사회복무를 병역의무이행으로 볼 수 있는가? 병역 의무라는 미명 하에 군사적 목적과 아무련 관련이 없는 일에 한 인간을 강제로 종사토록 하는 것이 정당한가?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과정에서 나온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국제노동기구는 그 위상에 걸맞게 이미 핵심적인 협약으로 명백히 규정해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그 답을 애써 외면하며 과거 했던 비준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고 노동후진국의 추악함을 보여주다가, 대선 공약으로 핵심협약 비준을 내건 문재인 정부 들어서야 협약 비준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현재 정부가 '강제노동 협약'을 비준하고자 내놓은 해법이란게 보충역(사회복무요원)에게 현역병으로 갈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기괴한 소리냐면, 정부는 "보충역 판정을 받아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할 어떤 사람에게 현역병으로 입대할 수 있는 선택권도 있을 때, 그 사람이 현역병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는 걸 본인 스스로 선택한 것이므로 이것은 강제노동이 아니게 된다." 라는 상식적으로 이해불가능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부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까닭을 간단한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시궁창물이 담긴 사발 한 그릇과 농약이 담긴 사발 한 그릇을 주고서는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둘 중 하나를 마시라고 위협할 때, 이 사람이 시궁창물을 마신다면 그는 '자발적'으로 시궁창물 마시기를 선택한 것일까? 어처구니없게도, 정부가 펼치는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이 사람은 시궁창물 마시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된다. 여기서 시궁창물 마시는 것을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로, 농약 마시는 것을 '현역병으로 복무'로, 둘 다 마시기를 거부했을 때 총성과 함께 머리가 박살나는 것을 '병역거부 시 받게 되는 징역형'으로 치환하여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제 정부 또는 최소한 국방부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백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폐지한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궤변과 말장난으로 감히 ILO를 기만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착취 위에서만 존재하는 달콤한 과실들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수백년 간 제단 위를 피로 물들이던 아즈텍 제국의 끔찍한 대규모 인신 공양 제의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이후 서구 문명이 도래하며 근절된 것처럼, 이 나라에 의해 자행되는 21세기 대규모 강제노동 행위는 ILO와 EU의 압박과 경제제재라는 외부적 힘을 통해서만 근절될 가능성이 보이는 듯 하다. 뒤틀린 병역체계가 수십년간 이어져온 이 나라는 이미 세뇌된 자들의 광기로 가득 차 있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찾아 볼 수 조차 없다.


그런데 정부가 초등학생 아이도 코웃음 칠만한 궤변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무슨 근거로 현역병 복무 선택권이 주어지면 ILO가 사회복무요원을 강제노동으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일까? 정부가 소위 '행복회로'를 돌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ILO는 비군사적 복무라 하더라도 개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지고, 관련자의 수가 적은 경우와 같이 “개인적 특혜(Privilege granted to Individuals)”에 해당하는 경우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2.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병역 의무의 형평성 차원에서 운영되는 것이므로 그 필요성을 ILO도 충분히 인정해 줄 것이다.

위의 1번과 2번은 국방부, 고용노동부와 같은 관계부처의 공식적인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2번에 대한 반박은 추후에 따로 다루기로 하고, 우선 1번 주장에 대한 논의를 해보자.

1번에서 얘기하는 조건을 만족한다고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제도로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공중보건의사, 예술체육요원, 공익법무관처럼 특정 자격,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현역 복무 대신 다른 형태의 복무를 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준 경우를 들 수 있다(이 중 산업기능요원은 공익목적과의 무관련성이나 관련자의 수가 많다는 점 등 문제 소지가 있지만 논의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일단 이에 대한 이야기는 보류하도록 하겠다). 그런데 사회복무요원은 위의 제도들과 달리 개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도 않고, 관련자의 수도 수 만명으로 소수라고 보기 어렵다. 이에 정부는 사회복무요원(보충역)에게 현역병 복무라는 선택지를 열어두었을 때 복무예정자가 두 가지 선택지 중 사회복무요원을 선택한 것을 "개인적 특혜"를 받은 것으로 포장함으로써 협약과의 상충소지를 완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발상은 앞서 시궁창물과 농약의 비유를 통해 알아보았듯이 어처구니없는 궤변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정부가 이 궤변을 통해 ILO를 속여넘길 수 있을 만한 법을 만들어 놓았다는 무서운 현실과 마주치게된다. 만약 4급 보충역 판정자가 충분히 현역병 복무를 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현역병, 사회복무요원 2가지 선택지 중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선택하는 것이 "개인적 특혜"라고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반대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 현역병 복무를 할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가졌다는 것과 같다면 현역병 대신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는 것이 절대 "개인적 특혜"가 될 수 없다. 애초에 자신의 신체적 상태를 고려하면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즉 핵심쟁점은 '과연 현재 보충역 판정을 받는 사람들이 현역병으로 복무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느냐?' 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4급 보충역 판정을 받는 게 현역 복무에 부적합한 신체적, 정신적 조건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우리 주변을 보아도 과체중, 저체중부터 시작하여 혈압이상, 시력이상, 허리디스크, 미주신경성실신증 등 일상생활은 몰라도 고강도 훈련과 신체활동이 포함되는 군생활 속에서는 반드시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건강 상태를 가진 사람들이 보충역 판정을 받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현역병 복무에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또한 보충역 판정자들이 현역 복무에 적합하다면, 지금까지 '슈퍼 굳걷이 프로젝트' 등을 통해서 보충역 판정자들이 신체적 결격사유를 없애야 현역병 지원을 가능하게 했던 이유는 대체 뭐고, 대한민국은 2018년 기준 신체검사를 받은 남성들 중 94.3%(1~4급 판정자)가 군인에 적합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슈퍼솔져의 나라라는 것인가?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법은 상식을 거스른다. 선택권을 주면 사회복무요원 제도가 "개인적 특혜"에 해당한다는 정부의 궤변은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병역법에 의한 보충역의 정의와 맞물리며 합당한 주장으로 둔갑한다. 병역법은 보충역을 이렇게 정의하기 때문이다.

병역판정검사 결과 현역 복무를 할 수 있다고 판정된 사람 중에서 병력수급(兵力需給) 사정에 의하여 현역병입영 대상자로 결정되지 아니한 사람.
(병역법 제5조 中)

병역법에 의하면 보충역은 '현역 복무를 할 수 있다고 판정된 사람'이다. 단지 '병력수급 사정'에 의해서 지금까지 현역병으로 입영 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즉 현역병이 부족하게 되면 신체검사 기준을 바꿔서 변경 전 보충역 판정을 받게 되었을 사람도 얼마든지 현역병으로 입대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20대 청년을 최대한으로 구속하고 착취하기 위해 진화해 온 대한민국 병역체계의 부조리와 악랄함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사람이 군복무를 해야 하는지 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판단할 때 실제 그 사람이 현역병 복무에 적합한지 아닌지는 정부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정부는 단지 병력수급 계획하에 현재 현역병이 적냐 많냐만 고려한다. 적으면 더 잡아들이고, 많으면 덜 잡아들인다. 그 뿐이다. 애초에 어떤 사람이 현역병 복무에 적합한지 아니한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은 이 나라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펜대질 몇 번이면 하반신 마비인 사람도 군대로 끌고 갈 수 있는 위대한 병역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반신 마비인 사람도 두 팔이 살아있는 한 군대 안에서 무슨 일이든 맡길 만한 일은 있고, 정부는 이 사람이 군대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군 복무에 적합하다고 규정해버리면 그만이다. 물론 이러한 극단적인 예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덜 극단적인 사례는 지금까지 무수히 많이 존재했고 모든 부작용과 피해는 복무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어왔다. 이와 관련한 김종대 의원의 지적을 들어보자.

김종대 의원이 현역병의 인권과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현역판정률과 급여의 공적인 기준 마련을 촉구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국방위원회·비례대표)은 “현역판정률 90%는 말도 안되는 숫자다. 현역판정률 90% 일 때, 윤일병 사태를 주도한 이 병장이 현역판정을 받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라고 지적했다. 또 김 의원은 “건군 71주년을 맞은 우리군은 아직 단 한 번도 적정 현역판정률과 적정 급여에 대한 공식적인 기준을 적용한 적이 없다”며 “이 기준은 현역병의 인권과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설정해야한다. 그 기준을 만들지 않으면 불행한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 군의 병력수급 체계는 국방부에서 연도별 병력소요량을 설정하고 병무청은 단지 목표치에 맞춰 인력을 수급하는 체계다. 소요량은 군사적 필요와 인구절벽 등 사회적 요인을 반영해 설정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무리없이 병역을 마칠 수 있는 ‘적정’ 현역판정률은 고려되지 않았다.

국방부가 적정 현역판정률로 설정한 83%를 유지한 지난 3년 (2016~2018년) ‘현역병 복무 부적합’으로 조기 전역한 병사수는 연 5,000명 수준을, 자살 예방을 위한 관리 프로그램인 그린 캠프 입소자 인원 역시 연 3,500명 수준을 유지했다. 현역판정률이 90%를 넘겼던 2014년, 병무청은 훗날 윤 일병 사건을 주도한 이 병장을 심리이상자로 분류하고도 현역 판정을 내렸다.

[출처] 복무기간 줄고, 월급 올랐다지만... 병사 현역판정률·급여 적정기준 아직도 없다

반복하여 말하지만 대한민국의 징병제 하에서 징병대상자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리없이 병역을 마칠 수 있는 '적정' 현역판정률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존재하지도 않고, 지금까지의 현실을 보면 정부에게는 그러한 기준을 마련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복무자가 갈려나가든지 말든지 인원이 모자란다 싶으면 펜대질 몇 번으로 규정을 바꾸고 더 잡아들여 꾸역꾸역 군대 안으로 쳐넣으면 그만일 뿐이다.

이제 현역병 복무 선택권을 주면 사회복무요원이 "개인적 특혜"가 된다는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정부가 아무런 객관적 기준에 의한 통제없이 마음대로 현역복무적부 기준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복무요원 복무가 명목상 "개인적 특혜"에 해당될지 아닐지도 자의적으로 정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복무요원이 강제노동에 해당되는지가 법 조항, 규정, 정부의 입장표명 등에 의해서 판단된다면 그저 서류 놀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뻔뻔하고 구역질나게도 대한민국 정부는 그 서류 놀음으로 ILO를 기만하려 병역법 개정에 착수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부의 속임수가 ILO에 의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ILO가 강제노동을 판별하는 기준은 일률적이지 않다. 전문가위가 일정 기간마다 개별 회원국 사례를 들여다보면서 판단한다"며 "따라서 이전까지 있었던 ILO의 판단도 사실상 비공식적인 것이지만 현 정부의 판단도 맞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보충역에 선택권을 준다면 상황은 완화될 수 있으나 정말로 그러할지는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관련뉴스). 즉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는 소리이다. 우려되는 것은 사회복무요원이 강제노동에 해당되는지를 ILO가 검토할 때 정부의 기만공작행위로 ILO가 실제 현실을 알지 못한 채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비준 관련안이 국회에 머물러있는 상황 속에서 실제 ILO의 검토와 결정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아있으므로 21세기 한국 강제노동의 현실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고 설명할 필요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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