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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의 시간 Feb 16. 2024

150만원의 의미

수의 휴직 첫날.

수는 자신도 모르게 눈이 떠져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8시였다. 

‘오늘은 출근하지 않아도 돼. 조금 더 자자.’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나 정말로 휴직을 해버렸네. 정말 저질러 버렸어.’ 

불현듯 불안감이 수를 엄습했다. 수의 기억에 수는 대학에 온 이래로 멈춰본 적이 없었다. 항상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인생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홀로 트랙을 나온 것만 같아 불안했다. 

‘이제 내게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수는 일어나 남편이 자는 방으로 갔다. 남편은 벌써 출근하고 없었다. 

수는 찻집에 가고 싶었다. 핸드폰을 켜 온도를 확인하니 바깥온도는 영하 5도였다. 목도리를 하고 장갑을 끼고 어그까지 챙겨신었다. 바깥은 어두웠지만 차가운 공기가 정신을 들게 했다. 5분여를 걷자 공원이 나왔고 공원을 가로질러 서문 쪽으로 가니 찻집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와주셨네요. 잘 지내셨지요?”

“아.. 네..”

윤이 반갑게 수를 맞이해 주었고, 수는 그런 윤이 싫지 않았다. 수는 베이글과 홍차를 주문하고 식물들이 모여있는 실내 정원 옆에 자리를 잡았다. 모처럼의 여유였다. 

창밖에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는 한 젊은 여자가 보였다.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기가 궁금해 유모차 안을 살펴보니 조그마한 아기가 치즈를 먹고 있었다. 사랑스러웠다.  

‘나도 아기를 기를 수 있게 될까? 지금의 형편으로는 우리 둘 아니 세 명 사는 것도 빠듯한데..’ 

수는 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이 남의 이야기 같이 느껴졌다. 수는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것조차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하신 베이글과 홍차 나왔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수는 블루베리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발랐다. 베이글의 고소한 향기와 블루베리의 달콤한 향이 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마침 스마트폰 알람이 울려 스마트폰을 열어보았다. 자동이체 알람이었다. 150만 원이 빠져나갔다. 

그 150만 원은 수의 엄마에게로 이체되었다.  


수의 아빠는 수가 중학생일 때 돌아가셨다. 당시 수의 부모님은 분식집을 운영했었는데 대개는 일 년에 이틀을 쉬고 매일 출근을 했다. 그 이틀은 설날 당일과 추석 당일이었다. 수가 중학생이던 토요일 어느 날, 아빠와 엄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가게에 나갈 준비를 했다. 그날은 김밥 60줄 주문이 들어왔기 때문에 수의 부모님은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났다. 수는 잠결에 깨서 거실에서 아빠와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따라 두통이 심하네.”

“약 하나 먹어요.”

“응, 그럴게.” 

수는 아빠는 건강하니 약 하나 먹으면 낫겠지 하는 마음에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수는 스스로 아침을 차려먹고 학교에 갔다. 그날따라 수는 일진이 좋지 않았다.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지각을 했고 지각을 해서 선생님께 혼이 났다. 게다가 지갑을 버스에 두고 내려 미술 시간에 쓸 준비물도 사지 못했다. 그러던 그날 오후 두 시 무렵, 갑자기 외삼촌에게 연락이 왔다. 수는 수업 시간 중이라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내 문자가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한조병원으로 와.”

수는 가슴이 철컹 내려앉았고 그 이후는 정확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날 아빠는 정말로 돌아가셨다. 심장마비였다. 아빠의 인생은 일과 일과 일이었다. 일만 하다가 그리고 일을 하다가 아빠는 세상을 떠났고 엄마와 수만 세상에 남겨졌다. 엄마는 아빠가 죽고 난 후 분식집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고 몇 달을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생활비가 부족하게 되었고 엄마는 마트에 계산원으로 취직을 했다. 엄마는 대개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9시나 10시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고 그런 엄마의 지치고 희망 없는 표정은 수를 절망하게 했다. 수는 그런 엄마를 보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 가난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 수는 공부를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그냥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는 과도한 노동에 힘들어했지만 그 일을 놓지는 않았다. 배운 것 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하지만 엄마의 그런 마음과 달리 몸은 점점 상해갔다. 그리고 약 2년 전, 엄마는 허리디스크로 더 이상 일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엄마는 재활을 하고 빨리 회사로 복귀하고 싶었지만 회사는 엄마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엄마는 한 회사에서 10여 년 넘게 일을 했지만 비정규직이었고 엄마에게는 휴직이라는 게 없었다. 엄마가 치료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자 그 자리는 빠르게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 수는 엄마에게 여분의 돈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한 달에 150만 원씩 엄마에게 이체를 했다. 엄마는 미안해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수는 찻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 150만 원이 수와 엄마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사실 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일을 꾸역꾸역 하는 이유는 엄마와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민은 호주로 떠난 후 수와 연락할 때면 대한민국만큼 돈 많으면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나는 여기서 영원히 이방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한국에 다시 오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

“아니, 난 그래도 여기서 살 거야. 여기서 나는 이방인이지만 그래도 사람대접은 받는 것 같거든. 내가 뭐 여기서 산다고 엄청 부자 되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돈 없어도 사람대접은 받아. 그런데 한국은 돈 없으면 없는 존재 취급하잖아.  한국 가서 계약직으로 또 살 거 생각하면 숨이 막혀. 나한테는 호주가 나아. 한국은 돈 많으면 살기 좋은 나라니까 나중에 돈 엄청 벌면 그때 가서 다시 가는 거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지금 당장 엄마에게 150만 원을 보내는 것도 부담이 되는데 앞으로 그 금액은 점점 더 커지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아픈 부모의 생계를 고스란히 자식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뀔 건 없었다. 그저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수에게는 남편이 있었지만 수는 남편에게 그런 짐을 나눠들 자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오히려 수가 엄마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을 알면서도 결혼을 강행한 남편에게 미안함이 있었다. 그래서 수는 경제적인 부분으로 남편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강하게 느꼈다. 수는 앱을 열어 자신의 비상금 통장에 얼마가 남았는지를 확인했다. 엄마에게 이체를 하고 900여만 원이 남아있었다. 

“비상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4~5개월 정도는 엄마를 도울 수 있을 거야.”

어느덧 시간은 한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차 잘 마셨습니다.”

수는 찻집을 나와 집을 향했다. 집에 돌아온 수는 점심을 먹기 위해 냉장고문을 열었다. 계란과 김치뿐이었다. 수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다음날 수는 정신과에 갔다. 

“휴직하니 어떠신가요?”

의사가 물었다. 

“혹시라도 복귀했을 때 자리가 없거나 권과 사직을 받을까 두려워요.”

“그렇군요. 두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고 설령 일어난다고 해도 수님은 극복하실 수 있어요. 자신을 한 번 믿어보세요.”

“네… 저는 저를 잘 못 믿는 것 같아요. 항상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음, 수님은 자기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아요. 수님 마음속에 호랑이 선생님이 있어요.”

“네, 맞아요. 저희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엄하셨거든요. 아빠 돌아가시고부터 더 그러셨던 것 같아요. 남한테 손가락질받지 않게 하려고 더 엄하게 대하셨어요.”

“그렇군요. 사람은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대했던 방식으로 자신을 대하게 되어요.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엄한 것은 자연스럽게 부모님으로부터 학습된 거라고 보여요.”

“네….”

“하지만 우린 달라질 수 있어요. 우선 감당하기 힘든 일은 감당하기 힘들다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 일을 상사에게 얘기해서 현실적인 목표치로 조정해 볼 수 있고 재정적인 부담은 남편과 논의해서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혼자 다 짊어지지 마세요.”

“네, 근데 그게 정말 힘드네요. 일의 양을 줄이는 것은 회사에 복귀하게 되면 꼭 그렇게 해볼게요.”

“네 그리고 오늘 제가 과제를 하나 내드릴게요. 하루에 하나씩 자기 자신을 칭찬해 주세요.”

“칭찬이요? 네 한번 해볼게요.”

상담을 마치고 나온 수는 속이 후련해짐을 느꼈다. 혼자 짐을 다 짊어지지 말라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 


수는 집에 가는 길에 또다시 찻집에 들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또 와주셨군요.”

윤이 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네, 생강차 한 잔 주세요.”

“네, 그럴게요.”

찻집은 언제나처럼 정갈했고 고요했다. 이곳에 오면 쫓기던 마음이 편해졌다. 

수는 오늘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을 다시 떠올렸다. 의사는 수에게 자기 자신에게 호랑이 선생님처럼 엄하게 대한다고 이제는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 보라고 얘기해 주었다. 수는 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엄하고 가혹할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면서 이 찻집의 주인은 자기 자신을 사랑으로 대할 거라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저…”

“네”

“찻집 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아 세 달 정도 되었어요.”

“아 얼마 안 되셨군요. 저는 이 공간이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해요. 손님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아 저는 김수라고 합니다.”

“아 저는 윤이라고 해요. 수님 반갑습니다.”

“네 윤 님, 반가워요.”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걱정이 있어 보이세요.”

“아 그냥… 회사를 휴직했거든요. 근데 대학 졸업하고 경제활동을 멈춰본 적이 없어서 좀 두려워요.”

“아 그러셨군요. 혹시 휴직 왜 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그냥.. 회사 생활이 좀 지쳐서 번아웃이 왔어요.”

수는 우울증이라는 말 대신 번아웃이 왔다고 둘러댔다. 우울증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번아웃이라고 말을 하니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그렇군요. 회사 생활 하시느라 그동안 고생 많으셨네요.”

수는 윤의 말에 왠지 모르게 위로를 받았다. 자신에 대해 모르는 타인이 건네는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될 수 있다니.. 

“저도 잘은 모르지만 음… 이번 기회로 삶을 돌아보실 수 있는 기회가 되실 거예요.”

“고맙습니다. 우리 종종 얘기해요.”

“네, 생강차 준비해 드릴게요.” 

수는 낯선 사람과 이렇게 대화를 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본래 자신은 인간 알레르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던 것이었나 보다 싶었다. 

수는 정신과 의사의 말을 떠올리며 오늘 자기 자신을 칭찬할 것을 찾아보았다. 그리고는 메모장에 적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모르는 이에게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눴다는 자체에 수는 뿌듯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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