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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의 시간 Feb 16. 2024

윤의 첫 손님, 현

드디어 찻집을 여는 첫날이 되었다.

윤은 새벽에 일어나 침대를 정돈하고 따뜻한 보리차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는 거실에 요가매트를 깔고 여느 때처럼 요가를 했다. 요가는 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었고 자신감을 주었다. 회사에 퇴사한다고 이야기한 게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세 달이 지나있었다. 그간 찻집을 할 만한 부지를 알아보고 인테리어를 하고 메뉴를 준비하다 보니 드디어 찻집 오픈날이 되었다.

"드디어 시작이네."

윤은 마음이 설렜다. 5년 전 처음 찻집을 열기로 결심했던 회사 앞 공원에서의 그날이 스치듯이 기억이 났다.

"이제 진짜 사는 것 같네."

윤은 혼잣말을 했다. 처음에 이사를 고려했던 윤은 당분간은 엄마의 집에서 출퇴근을 하기로 했다. 일도 바뀌고 거주지까지 바뀌면 적응하기 힘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또한 혼자 살게 될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았기에 당분간은 엄마랑 계속 살기로 한 것이다. 

다만 집에서 찻집까지의 교통편이 꽤나 불편했기에 윤은 중고차를 마련했고 새로 생긴 고속도로 덕에 차로 40분 정도면 집에서 찻집으로 올 수 있었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차에 탄 윤은 쇼팽 클래식을 들으며 찻집으로 향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을까.”

쇼팽 연주곡을 들으며 윤은 황홀함과 경이로움을 느꼈다. 지난 10여 년간의 회사 생활이 스치듯 떠올랐다. 오늘 윤은 흰색 브이넥 니트에 청바지를 입고 중간 알 사이즈의 진주목걸이를 하였다. 신발은 윤이 좋아하는 하얀 스니커즈를 신었다. 오늘 첫 개시라 스니커즈가 반질반질했다. 회사 다닐 때는 보통 정장차림으로 회사를 갔는데 가볍게 청바지에 니트를 입고 출근하니 마음까지 가벼웠다. 회사를 다닐 때는 옷차림에서조차 자기를 숨겨왔는데 이제 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취향대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우선 음악을 골랐다. 차에서 듣던 쇼팽 클래식을 틀고 식물들에게 물을 주었다. 그리고는 창을 닦았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창밖으로 공원이 보였고 나뭇잎이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눈에 들어와 윤은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앉아서 홍차를 한 잔 마시며 낙엽들을 구경했다. 어느덧 오후 늦은 시간이 되었고 40대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찻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자리를 잡으려던 여자 둘은 테이블당 의자가 하나씩밖에 없는 것을 보고 윤에게 물었다.

"의자를 붙여서 앉아도 될까요?" 

일행 중 왼쪽에 있는 사람이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찻집은 1인 손님을 위한 찻집이에요. 죄송하지만 두 분 손님이라 저희 찻집에서 차를 드시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윤이 대답했다.

"특이한 찻집이네요."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말했다. 그러자 다시 왼쪽에 있는 사람이 말했다.

"특이한 게 아니라 이상한 것 같은데."

오른쪽에 있는 여자가 다시 대답했다.

"나중에 한 번 올게요."

"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윤은 다시 창가 쪽 자리로 돌아가 앉아서 바깥은 구경했다. 공원에 있는 사람들은 가지각색이었다. 운동을 하는 이도 있었고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이도 있었고 혼자서 무언가 생각하며 걷는 이도 있었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윤은 이내 서서 가게 안을 혼자 걸어 다니며 중얼거렸다.

"아무도 안 오네."

찻집을 연 첫날인데 손님이 없었다. 지나가다 새로 오픈한 가게를 창을 통해 바라보던 이들은 몇 명 있었지만 찻집에 들어와 차를 마시는 이는 없었다. 차를 한잔 더 마시고 상념에 젖어있던 윤은 어느덧 저녁 7시 30분이 된 것을 알고 집에 갈 채비를 하였다.


"처음부터 잘 되면 그게 더 어색하지."

혼잣말을 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차 마실 수 있나요?"

20대로 보이는 여자였다. 청바지에 블랙의 패딩을 입고 브라운색 어그를 신고 온 여자는 보라색으로 'think'라고 적힌 베이지색 에코백을 하나 메고 있었다.

"그럼요. 그런데 저희가 마감이 8시라 30분 정도밖에 계시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아요."

"네, 그러면 편하신 자리에 앉으세요."

윤은 첫 손님이 온 것에 기분이 좋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혹시 생강차가 있나요?"

"네, 있어요. 제가 무농약 생강과 유기농 설탕으로 직접 만든 생강차예요. 이 차를 드시면 몸이 따뜻해지실 거예요."

"네, 그럼 생강차 한 잔 주세요."

그녀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많이 지쳐 보였다. 정말이지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손님은 책장 앞을 서성이더니 책 하나를 골라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는 몇 페이지를 읽더니 책을 덮어두고 바깥을 응시했다. 

윤은 정성스럽게 생강차를 준비하였고, 곁들일만한 쿠키도 준비하였다. 쿠키는 단맛이 별로 나지 않아 생강차와 잘 어울렸다. 은은 나무쟁반에 생강차와 쿠키를 담아 손님에게 가져다주었다.

"여기 차 나왔습니다. 쿠키도 같이 드셔 보세요."

"고맙습니다."

윤은 첫 손님인 그녀가 너무 반가웠지만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 듯했다. 그래서 차를 내어주고 윤은 차를 만드는 공간으로 돌아갔다. 손님은 공원에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쿠키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다시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손님은 자기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찻집 마감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윤이 말을 건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하였다.

"차 잘 마셨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유유히 찻집을 나섰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뵈어요."

윤은 인사했다.

윤은 첫 손님인 그녀가 다시 윤의 찻집을 다시 찾아주길 바랐다. 그리고 그녀의 지친 영혼이 이곳에서 위로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첫날 윤의 찻집은 비록 한 명의 손님만 있었지만 윤은 앞으로 더 잘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손님의 이름은 현이었다. 

현은 4년 차 공시생이었다. 현은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합격을 위해 매일매일을 로봇처럼 정해진 일정대로 살았다. 현의 하루는 이러하였다. 아침 8시에 일어나 대충 아침을 때우고 아침 9시부터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오후 1시에 점심을 먹고 2시부터 다시 공부를 한다. 7시에 저녁을 먹고 8시부터 다시 공부를 한다. 새벽 1시가 되면 샤워를 하고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보다가 잠이 든다. 현은 대개 아침식사를 커피 한잔으로 때웠고 점심과 저녁은 김밥이나 주먹밥으로 때우곤 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자 원룸을 나와 김밥집을 갔다. 키오스크에서 김밥 하나와 라면 하나를 장바구니에 넣고 카드로 결제를 했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현은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열어 포털에 있는 뉴스를 생각 없이 읽어 내렸다. 5분이 채 되지 않아 음식이 나왔고 현은 인터넷을 하며 음식을 입으로 밀어 넣었다. 현에게 식사시간은 영양분을 보충하고 자기를 돌보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저 공부를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확보하는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7시 20분이 되었고 머리가 아파 공원 산책을 나섰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상쾌하였다. 그러다 현은 우연히 '리틀 티타임'이라는 찻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새로 생긴 찻집인가 보네.’

찻집은 식물로 인테리어를 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가보니 마침 내부에 손님도 없었다. 현은 이내 찻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신기하게도 메뉴판에는 커피가 없었고 차만 있었다. 추운 날씨 탓인지 마음이 추운 탓인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차를 마시고 싶었던 현은 생강차를 주문하였다. 그리고는 창가 자리에 앉아 바깥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찻집을 한 번 둘러보더니 일어나 책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주로 소설과 그림책들이 있었다. 그러다 현의 눈을 사로잡는 제목의 그림책이 있었다. 바로 올가 토카르축의 '잃어버린 영혼'이라는 책이었다. 

‘잃어버린 영혼이라…’ 

현은 이내 그 책을 들고 자리에 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은 한 직장인의 이야기였는데, 그는 어느 날 출장지에서 자신이 이곳에 왜 있는지를 까먹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까지 잊게 된다. 이에 그는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는데 의사는 바쁘게 사느라 그의 영혼이 주인을 잃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는 약 대신 '시간'을 처방한다. 현은 책을 읽으며 책 속 남자가 꼭 자기 같다고 생각했다.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으로 밥벌이를 하는 것, 그것이 현의 목표였고 현은 그것 외에는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인양 3년을 살았다. 현은 깨어있는 시간에 마치 자신의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짜인 일정대로 바쁘게 살았다. 정말이지 공부 외에 모든 것을 최소화하였다. 대충 밥을 입에 넣고 대충 잠을 자고 자리에 앉아 공부만 하였다.


"차 나왔습니다."

현은 책에 둔 시선을 옮겨 찻집 주인인 윤을 바라보았다. 현이 보기에 윤은 영혼을 잃지 않은 사람 같았다. 

"고맙습니다."

현은 생강차를 한 모금 마셨다.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좋다.."

현은 자신도 모르게 말하였다. 차의 따뜻한 기운 덕분인지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은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리고는 다시 책을 펼쳐 들고 생각에 빠졌다. 대체 언제 공무원 시험을 합격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공무원 시험을 합격하면 그때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건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현의 부모님은 현이 어렸을 적부터 안정적인 삶의 중요성을 얘기하곤 했다. 부모님은 종종 "공무원 돼서 안정적인 사람 만나 결혼해. 결혼해서 아기 낳고 그렇게 살면 그보다 좋은 삶은 없어."라고 말하였다. 부모님에게 크게 반항한 적 없이 자란 현은 자연스레 공무원이 되고 싶다, 아니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공무원이 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되는 건지는 잘 몰랐지만, 아빠처럼 겨울에 추운 데서 일하고 여름에 더운 데서 일하는 삶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라고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덧 시계를 보니 7시 50분이 되었다. 현은 서둘러 일어나 원룸으로 돌아갔다. 8시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슬럼프인 건지 지난 몇 주간 현은 정해진 스케줄대로 공부하기 위해 자리에는 앉아있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날도 8시에 자리에는 앉았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현은 자리에 앉아 방금 전 갔던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자신도 모르게 "좋다..."라고 내뱉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나도 좋은 순간들이 있구나.'

현은 생각했다. 현은 여태 세 번의 시험을 봤고 세 번 모두 필기에서 떨어졌다. 같이 공부를 했던 친구 두 명은 각각 한 번, 두 번만에 합격을 해서 이제는 어엿한 공무원으로 사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에 합격한 친구는 얼마 전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 모임을 한다고 연락을 해왔다. 현은 혼자 남겨져 계속 이 수험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시험에 세 번 떨어지고 나니 현은 이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지 자꾸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 생활을 그만둔다고 해서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름 공시생이라는 정체성이 있었는데 그것마저 사라지면 현은 사회에서 자기를 설명할만한 단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없는 형편에 매달 현의 생활비를 대주는 부모님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현은 공무원에 합격해야 했다. 그것이 현의 부모님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었다. 현은 공부를 그만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덮어두고 다시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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