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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의 시간 Feb 13. 2024

인생 제2막, 찻집을 열다

윤은 한 달의 시간 동안 주중에는 인수인계를 하며 회사생활을 마무리했다. 주말에는 친구인 은의 도움을 받아 찻집을 운영할 동네를 알아보느라 여기저기를 다녔다. 은은 윤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 처음 만났다. 은은 국어를 좋아했고 윤은 수학을 좋아했는데 서로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다가 친해졌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깝게 지내왔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은은 대학을 졸업하고는 소설을 쓰고 국어 과외를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약 4년 전 소설가와 과외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접고 독립서점을 시작했다. 은의 독립서점은 한국소설을 전문으로 하는 서점으로 특히나 젊은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다뤄 20-30대 여성들에게 꽤나 잘 알려져 있었다. 은은 이렇듯 독립서점을 운영했기에 위치 선정이나 부동산 계약과 같은 일들에 경험이 있었다.


"은, 너무 고마워. 너도 바쁠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고 마음 써주는 게 말이야.. 덕분에 좋은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응, 윤에게 딱 맞는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고마워, 은."

"나는 사실 윤이 찻집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놀라진 않았어. 평소에도 윤은 차를 좋아하니까.. 근데 뭔가 윤의 직업이 안정적이니까 윤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괜히 나도 그게 아깝더라고... 웃기지?"

"응, 나도 그 안정성을 포기하고 내 길을 가기로 결심하는데 7년이 걸렸고, 정말 준비하기까지 또 3년이 걸렸잖아. 참 회사가 주는 '이름'과 '돈'을 포기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 근데 뭔가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었어. 회사를 다닐수록 내가 점점 회색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나중에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그런 것도 잘 모르겠더라고..."

"그랬구나. 나는 독립서점한 지 4년 되었잖아. 처음 1년은 이런저런 다양한 손님들이 왔었어. 그런데 2년 차부터는 정말 꼭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손님으로 오더라고.. 서점이 나를 닮아가고 색을 찾아가니 그 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았어. 그래서 윤도 윤의 찻집을 운영하다 보면 점점 그 찻집에 윤만의 색이 생길 거야. 그리고 그 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찻집에 올 거고.. 그러니까 내 말은 윤의 색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야. 물론 경제적으로는 좀 힘들 수 있어. 나는 뭐 원래부터도 회사라는 곳을 다녀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독립서점이란 게 경제적 풍요랑은 거리가 멀거든. 예전에 엄마가 아파서 간호한다고 2주를 문을 닫았었거든. 그때 매출이 거의 0원이었어. 나름 온라인 판매도 하는데 말이야. 그때 알았지. 이 서점은 내가 쉬면 바로 매출이 떨어진다는 걸 말이야. 그때부터 괜히 두려워져서 더 열심히 운동도 하게 되고 실비보험도 들고 그랬다니까."

"그렇지, 나만의 사업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

"그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걸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면 정말 큰 복이라니까."

"그러게 말이야."

"윤”

“응?”

“그래도 말이야, 혼자 오롯이 서는 게 두려울 수 있는데 대신 윤은 이전보다 더 강해질 거고 더 온전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믿어."

윤은 은의 '온전하다'라는 단어가 참 좋았다. 한편으로 윤은 워크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라는 단어가 싫었는데 그 이유는 일이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윤은 일을 할 때도 온전하게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그러려면 윤은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둘째로 윤은 가급적이면 일이 사람들 각각에게 잘게 쪼개진 채로 나눠져 전체를 볼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윤 혼자서 A부터 Z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자신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확인하고 의미를 찾고 싶었다. 셋째로 윤이 부자가 되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먹고살만한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 직업 이어야 했다. 윤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한다면 자유를 잃는 거라고 생각했다. 윤은 그런 직업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여러 선택지 중 하나씩 지워나가는 일을 하다 보니 결국 남은 답은 찻집 운영이었다. 

은의 응원에 더욱 마음이 단단해진 윤은 그렇게 은과 찻집을 할만한 장소를 물색하는데 주말들을 보냈다. 그렇게 은의 도움으로 윤은 서울 변두리의 여러 동네들을 살펴보았고 그중에 E동을 최종 위치로 결정하게 되었다.


윤이 선택한 동네는 서울 변두리에 있는 곳이었는데 윤은 이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 임대료도 높지 않았고 산자락 밑에 위치해 공기도 맑았다. 게다가 고등학교 친구였던 은이 사는 동네라는 점도 왠지 든든함을 주었다. 이 동네는 행정구역상 서울에 속했지만 서울의 정신없는 바쁨과 다르게 홀로 천천히 시간을 사는 동네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들의 표정이 여유가 있거나 평온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지쳐 보였고 초조해 보였다. 그들은 거친 세상 속에서 경쟁에 밀려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였고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찻집 주변에는 작은 규모의 전문대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 학생들 역시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지친 사람들에게 차로 위로를 해주고 싶어.’

 윤은 자신이 차를 통해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자신의 찻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그런 공간과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찻집 이름은 뭐가 좋을까." 

윤은 고민했다.

윤은 사람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 짧게나마 자기만의 티타임을 갖길 바랐다. 윤은 자신이 그런 시간들을 가진 덕분에 삶이 어려울 때 넘어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엎드려지지는 않았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윤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용기를 주었다.

"마이 리틀 티타임(My little teamtime)으로 해야겠어."

윤은 사람들이 하루에 적어도 30분 정도는 차를 마시는 시간으로 자기 자신에게 할애하길 바라는 마음에 찻집 이름을 마이 리틀 티타임으로 지었다.

"사람들이 무리 지어 우리 찻집에 오기보다는 혼자 와서 자기만의 시간을 즐겼으면 좋겠어." 

윤은 집에 있는 티테이블을 생각했다. 윤은 대개 혼자서 그 티테이블에서 차를 마셨다. 고요히 차를 마셨던 그 시간에 윤은 자기 삶을 돌아볼 수 있었고 계획할 수도 있었고 자기 자신을 격려할 수도 있었다. 윤은 자신의 찻집에 오는 손님들도 그런 시간을 갖기를 바랐다. 그래서 윤은 1인 손님만 출입할 수 있는 찻집이라는 원칙을 정했다. 물론 매출이 조금 걱정되기는 하였지만 사업의 시작 단계에는 돈보다는 철학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이런 원칙 때문에 손님이 적을 수 있지만 나중에는 그런 혼자만의 티타임을 원하는 이들이 먼저 찾는 찻집이 될 거라고 믿었다. 


이제 이름도 지었고 나름의 원칙도 정했으니 남은 것은 메뉴 선정과 인테리어였다. 메뉴는 우선 윤이 좋아하는 홍차류와 허브티 등으로 구성을 하였고 커피는 제외하기로 하였다. 물론 윤도 회사를 다니면서 거의 매일 커피를 마시기는 했지만 윤에게 커피는 자신을 각성시키는 존재였지 위로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윤은 찻집에 오는 이들이 평온한 마음으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느리게 음미하기를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차가 적절한 음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커피를 제외한 차로만 메뉴를 구성하기로 한 것이다. 디저트류는 구상하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가게를 오픈하고 천천히 준비를 하기로 하였다. 


“은, 그런데 찻집 공간 말이야. 어떻게 인테리어 하는 게 좋을까?” 

“응,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 

“음,,, 사람이 들어와서 평온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 세상은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지만 우리 찻집에 오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꼈으면 좋겠어.”

“그렇구나. 그러면 윤이 느끼기에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 너는 책도 좋아하고 식물도 좋아하잖아. 네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인테리어에 반영해서 해보면 되지 않을까.”

“음 내가 느끼기에 평온한 공간이라…. 우선은 전체적으로 화이트톤으로 디자인을 하고 우드톤으로 티테이블을 준비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랑 식물들로 공간을 꾸며볼게. 고마워.” 

그렇게 윤은 자신이 평온하다고 생각되는 공간을 구현하는 인테리어를 진행하였다. 테이블 크기며 재질이며 신경 쓸 게 너무 많았지만 그래도 그 과정이 윤에게는 즐거웠다.  


어느덧 회사 출근 마지막 날이 되었다.

"박 과장 오늘 마지막 출근이구나. 한 달도 금세 가네." 

상사가 말하였다.

"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윤은 자신의 상사와 팀사람들에게 각각 조그마한 차 상자를 선물로 주었다.

"이건 제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제가 만든 차예요. 생강과 홍차잎이 들어있어 추운 날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실 거예요."

"고마워 박 과장. 근데 너무 오래 쉬지 마. 알아서 잘하겠지만 너무 오래 쉬면 영원히 쉬어야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서 바짝 벌어놔야 해.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으면 돈이 엄청 들어간다니까. 영어유치원도 보내야 되고 초등학교 가면 또 초품아로 이사 가야 된다고. 초품아 알지? 단지 내에 초등학교가 있는 아파트 말이야. 그리고 요새 아파트값 장난 아니잖아. 조금만 쉬고 바로 일해. 연애도 부지런히 하고."

부장은 마지막까지 성실과 돈을 강조했다. 윤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네, 조금 쉬고 또 일자리 찾아봐야지요. 연애도 해볼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래, 잘 가 박 과장. 그리고 취직할 때 어려우면 연락해. 나도 아는 사람들 좀 있잖아. 뭐 내가 취직시켜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도와줄게. 고생했어”

“네 부장님,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윤은 인사를 하고 인사팀 면담을 하였다. 퇴직사유가 이직이 아니라 인사팀 면담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노트북을 반납하고 사원증을 반납하자 윤은 이제 정말 회사생활이 끝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난 10여 년간의 회사생활을 되돌아보았다. 윤은 이 시간을 '인생 제1막'이라고 스스로 명명하였다.

'나에게 인생 제1막은 세상이 원하는 직업을 준비하고 선택하고 그것을 견뎌왔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 세상은 대기업에 가는 게 안전한 길이라고 말해줬고 나는 그걸 착실히 수행했어. 일을 하면서 종종 보람 있을 때도 있었지만 이 일이 정말 내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하루에 가장 생산적인 시간들을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서 썼고 그래서 나의 색이 많이 바래졌던 것 같아.'

하지만 윤은 그렇게 견딘 시간들 덕분에 앞으로 좋아하는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돈과 시간을 가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10년을 버텨준 자기 자신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 정말 고생했어."

윤은 스스로를 격려했다. 윤은 자신의 인생 제2막은 자기다움을 드러내고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마이 리틀 티타임을 운영하는 것이 자기다움을 경험하는 시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회사를 퇴사하고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진 윤은 그다음 해 1월 드디어 찻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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