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멈추게 하는 것을 녹이는 방법
빨간 눈 극복 챌린지
사람은 저마다 무서워하는 것들이 하나씩 있다. 정색하는 표정, 따지는 듯한 말투처럼 특정 행동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고양이, 강아지, 토끼처럼 작고 귀여운 동물 친구를 겁내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빨간 마스크 괴담이나 귀신 같은 실체 없는 것에 공포를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런 공포를 마주할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 역시 제각각인데, 잔뜩 긴장해 온몸을 웅크리거나 털이 바짝바짝 서기도 한다. 어쨌든 대체로 얼음 상태다. 그렇게 피가 식어서 이성을 마비시켜버리는 감정은 유쾌하지 않다. 무서워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나는 유독 무서워하는 행위를 싫어했다. 무언가를 무서워한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이 좁아지는 듯한 기분. 그 기분을 느꼈던 건 다름 아닌 비둘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 밤 11시가 되면 TV에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현실에 있을 법한 무서운 이야기들을 그린 프로였는데, 구미호나 처녀귀신, 저승사자가 종종 등장했다. 어린이가 그런 프로를 보기에는 정서상 좋지 않았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어른들의 눈을 피해 방문을 살-짝 열고 거실에 나오는 프로그램을 종종 훔쳐보곤 했다. 몰래 본다는 스릴 때문인지, 어린 마음에 그 연출들이 진짜 무서웠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연기가 나오며 무서운 것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때의 미디어에 묘사되는 저주 걸린 무언가는 대체로 빨간 눈을 가지고 있어서 그때부터 나에게 빨간 눈은 저주받은 것으로 각인되었다.
사람들이 토끼와 비둘기의 눈 색깔을 자세히 본 적 있을까? 눈치챘겠지만, 토끼와 비둘기는 빨간색 눈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맥락에서 토끼와 비둘기는 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에게 해를 가할지 모르는 몬스터 같은 것. 토끼는 일상을 보내며 쉽게 만날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기에 다행이었지만 비둘기는 아니었다. 공원과 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기차역이나 지하철역까지 들이닥치기 때문에 그를 피하는 삶이 너무 힘들었다. 근처에 비둘기가 있기라도 하면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고 주위를 둘러보면 아니나 다를까 한 마리씩 주변에 꼭 있었다. 그럴 때면 옆에 있는 친구를 앞장 세워 쫓아냈는데 비둘기는 좀처럼 사람을 무서워하는 구석이 없는 녀석들이라 쫓아내기도 쉽지 않았다. 혼자서 길을 걸어갈 땐 눈을 감고 와다다 뛰어가거나 일부러 빙 둘러가는 방식으로 피해 가기 일쑤였다.
그러다 끝내 파국이 온 것이다. 그날은 자격증 시험을 치러 가던 평범한 날이었다. 하필이면 초행길이라 길눈이 어두웠고, 비둘기가 도로 한가운데 위풍당당하게 있었다는 사실을 빼면. 게다가 시간도 아슬아슬해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 시험장으로 가면 늦을 게 확실했다. 최대한 거리를 두고 걸어기에도 비둘기가 너무 가운데 있어서 불가능했다. 그때의 난 얼음땡 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얼음’을 하고 멈춰 있었다. ‘비둘기가 있어서 이 길을 못 지나가는데, 어쩌지’ 하는 생각만 머리에 있었고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었다. 같은 시험장으로 뛰어가던 다른 사람이 얼떨결에 비둘기를 내쫓은 덕분에 무사히 시험을 칠 수 있었지만, 그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쩌지도 못하고 얼어버려서 새가 날아갈 때까지 기다렸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속이 답답했다. 지금이야 언제든 도전할 수 있는 자격증 시험이었지만, 콘서트나 비행기처럼 중요한 순간에도 얼음이 되어버리면 곤란하니까. 그날은 다른 사람들이 내쫓아준 것처럼 운이 좋았지만 매번 운이 좋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비둘기를 무서워해서 그것을 피하느라 중요한 것을 놓치며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누구나 두려움 앞에서 그걸 극복해야 할 것 같은 순간이 온다. 나의 경우엔 그때였다. 내 세상이 좁아진 느낌. 그래서 얼음을 땡, 깨고 부수고 나오기로 마음먹었다.
이름하여 빨간 눈 극복 챌린지. 비둘기를 무서워한다는 걸 순순히 인정한 뒤, 왜 그게 무서울까 곰곰이 생각했다. 저주받은 눈, 그리고 좀처럼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위풍당당함이 공포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빨간 눈을 가진 토끼가 그려진 마우스패드를 사 빨간색 눈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공포라는 건 단숨에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나름의 단계를 거쳤다. 빨간 눈의 마우스패드, 귀여운 비둘기 웹툰을 보며 차츰 진짜 토끼와 비둘기에도 익숙해졌다. 얼음을 깨고 움직일 때가 온 거다. 이제는 비둘기가 옆을 지나가도 피하지 않는다. 때때로 앞길을 막는 비둘기를 내가 먼저 내쫓곤 한다. 가끔 사람에게 돌진하는 비둘기를 만날 때면 여전히 얼음인 순간이 오긴 하지만, ‘땡’하고 얼음이 깨져 자유로운 순간이 더 많아졌다. 사실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감내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내가 언제 얼음이 되는지 알고 나를 얼려버리는 무언가를 안다면, 내 세상이 마냥 좁아지기만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