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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May 24. 2023

남귤북지

회수 남쪽의 귤을 회수 북쪽에 옮기면 탱자가 된다

옛날 제나라의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초나라 영왕이 일부러 안영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연극을 했다고 합니다. 안영과 대화하는 앞으로 초나라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잡힌 제나라 사람을 호송하도록 했고, 초나라 영왕은 그 죄수에게 어느 나라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일로 잡혀왔는지를 물었죠. 물론 그 죄수는 사실대로 제나라 사람으로 도둑질을 잡혀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초나라 영왕은 안영에게 왜 이리 제나라 사람은 도둑놈이 많은지 물었습니다. 안영에게 부끄러움을 주어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였죠. 그러자 안영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신이 듣기로 귤을 회수 이남에 심으면 귤이 되지만 회수 이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같은 나무라도 그것이 심긴 곳의 토양과 기후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저 사람도 본래 제나라에 있을 때는 선한 사람이었지만 초나라에 살면서 환경의 영향으로 저리 바뀐 것 같습니다.”




탱자와 귤은 완전히 다른 속에 속하는 엄연히 다른 종으로서 같은 씨앗을 다른 곳에 심었다고 이들이 다른 식물로 자랄 것 같지는 않아서, 안영이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없는 말을 지어냈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실제로 하나의 식물종을 나른 장소에 심었을 때, 완전히 다르게 발현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한국에서 칠엽수라고 불리는 마로니에입니다. 어디에선가 한 번쯤 들어보셨을 ‘마로니에 거리’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샹젤리제 거리의 별칭으로 마로니에 나무가 가로수로 예쁘게 심겨져 있어서 이 이름이 붙었습니다 (신기하게도 파리의 위도가 48.8도로 37.5도인 서울보다 높지만, 두 도시의 연평균 기온은 12.8°C로 같습니다). 또한 한국의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 역시 이 나무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이 두 나무는 다른 나무인데요. 프랑스 파리에 있는 마로니에는 유럽을 원산으로 하는 마로니에이고요. 대학로에 있는 마로니에는 일본에서 온 일본칠엽수입니다. 두 나무 다 한 잎자루에서 잎이 일곱개가 나와서 칠엽수라고 불립니다. 한국의 보이는 대부분의 칠엽수는 일본칠엽수이고 꽃도 예쁘고, 나무의 모양도 예쁘고 꿀도 많이 생산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로니에 공원과 홍릉에 가시면 아주 크게 자란 일본 마로니에 나무를 보실 수 있고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나무는 한국에서 꽃도 피우고 잘 자라지만 종자는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지역의 차이 때문에 그럴까요? 그런데 왜 종자를 맺지 못하는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혹시 제가 틀렸거나, 종자를 맺지 못하는 이유를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답글 남겨주세요). 참고로 유럽에서 온 칠엽수도 서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덕수궁에 1913년 네덜란드 공사가 고종황제에게 선물한 칠엽수가 덕수궁 석조전 뒤에서 아직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파리의 유럽 마로니에

(Source: http://www.thesanguineroot.com/?p=3243,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orse_chestnut,_Paris.jpg)


일본 마로니에

대학로의 마로니에 (Source: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madebyha&logNo=40199381666)와 홍릉숲의 마로니에 (Source: http://know.nifos.go.kr/mobile/plant/detailPlantTwentyfour.do)


리기다 소나무 역시 원산지와는 다른 특성을 보여줍니다. 리기다 소나무는 아주 특이한 형태로 산불에 적응이 되어 있는데요. 침엽수는 일반적으로 잎이 떨어지면 다음 해 봄에 새로 잎이 나기 전까지는 잎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또한 맹아도 자라지 않지요. 하지만 리기다 소나무는 아주 특이하게도 줄기에서 맹아가 자라나 (아래 사진을 보시면 맹아가 어떤 것인지 보실 수 있습니다) 산불과 같이 잎을 손상시키는 상해를 당한 후에도 쉽게 회복을 합니다. 수간(줄기)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잎을 다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타종에 비해서 유리한 위치에서 경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알기로 리기다 소나무가 수간에서 맹아를 생산하는 유일한 소나무 (pine) 종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한국전쟁 이후에 황폐지 조림과 산사태 방지용으로 많이 조림되었습니다. 그래서 1999년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산불이 나기 시작한 후 이 나무의 자연 맹아의 의한 갱신에 기대가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 산불 후 한국에서 리기다 숲의 자연 맹아에 의해 갱신된 산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나무가 자라는 환경이 달라져서 그런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리기다 소나무 맹아

 (Source: http://seoulky.ekfem.or.kr/archives/672)


위에 두 예시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렇게 큰 종의 이동을 시키는 것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은 대륙적인 범위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자연에서는 수만 년이나 수백만 년이 걸릴 일이지만 지금은 비행기등의 많은 탈것들의 발달도 단지 몇 시간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최근 에메랄드 물푸레 딱정벌레가 (emerald ash borer) 북미의 물푸레나무들을 초토화시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병충해는 단기간에 그 영향이 눈에 보이지만 식물종의 이동은 그 영향이 매우 천천히 보입니다. 하지만 그 변화를 눈치챘을 때는 그 영향이 매우 넓고 큰 경우가 많습니다. 그 좋은 일례가 호주의 목축업에서 벌어졌습니다. 모든 목축업자가 그러하듯이, 호주의 목축업자들에게도 좋은 풀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병충해가 작고, 양분이 적어도 잘 자라는 식물을 찾을 수 있으면 큰 비용을 아낄 수 있어서 이러한 식물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 목축업자들은 마침내 유럽에서 자라는 클로버가 (Trifolium subterraneum L.) 병충해에도 강하고 질소 고정을 하기 때문에 비료를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는 것을 알게되었죠. 또한 양들도 이 식물을 잘 먹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식물을 호주에 넓게 심고 양을 기르는데 이용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목축업자들은 이 식물을 신이 주신 선물처럼 여겼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 이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새끼가 태어나지 않고 불임의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숫양의 정자수가 감소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곧 역학조사가 시작되었고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식물이 방어기작으로 여성호르몬과 유사한 화합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나만 계속 먹는 종은 정자가 없어져서 죽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이죠. 자신을 먹는 동물이 죽으면 그 식물이 더 번성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화합물은 호주에 사는 양의 몸속에 들어가서 여성호르몬으로 작용해 정자의 수를 감소시켰던 것이죠. 그리고 이 조사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유럽에 있던 동물들은 이 식물과 함께 진화를 해서 이 식물에서 만들어 내는 화합물을 여성호르몬으로 인식하지 않던 것이었죠. 그래서 유럽의 학자들은 이 식물이 이러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종의 이동이 늘 부정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얼룩무니 마합류(zebra mussels)의 경우 배의 바닥짐(ballast)을 통해서 유라시아에서 오대호로 유입되었습니다. 바닥짐이란 배에 실을 짐이 없는 경우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짐을 말하는 것으로, 과거 물을 담아서 바닥짐으로 사용했는데요. 지금은 필터가 달려있지만 옛날에는 필터가 없는 통에 물을 넣었기 때문에 이 물에 석여 들어왔던 얼룩무니 마합류가 유라시아에서 오대호로 유입되어서 오대호를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마합류는 죽은 후에 모든 껍질이 칼처럼 잘라지기 때문에 오대호에서 사람들이 수영을 못하게 되어서 사람들이 상당히 싫어하죠. 하지만 이 사실 이면에는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혹시 이리호(Lake Erie)의 화재사건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1969년 6월 22일 오대호의 하나인 이리호에서 불이 났었습니다. 네, 이리호 주변이 아니라 이리호 자체가 불에 탔습니다. 이리호의 물 위에 인간이 만들어 내고 버린 폐기물이 너무나 많아서 이들이 약 30분 동안 탔고, 이는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줬습니다. 저나 여러분과 마찬가지고 호수가 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이는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오염된 호수는 쉽게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더러워진 호수에는 생명이 살 수도 없었죠. 어떤 면에서 얼룩무니 마합류가 이리호를 비롯한 많은 호수를 점령할 수 있었던 데는 인간의 오염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얼룩무니 마합류는 오염된 물에서 매우 잘 자랄 수 있는 폐류이고 원래 오대호에서 살던 어폐류들은 맑은 물에서 살던 종들이었으니까요. 어쨌든 전쟁을 하지도 누군가를 침략하지도 않았던 이 얼룩무니 마합류는 침입종(invasive specie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많은 이들의 미움을 받았고 또한 정부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이들을 없애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한편으로 이 호수의 오염을 정화하려는 일련의 노력도 행해졌습니다. 하지만 한번 정착한 이 마합류를 없애는 건 매우 어려웠고 또한 한번 오염된 호수를 되돌리는 일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특히 이리호 주변은 자동차 공업을 비롯해서 많은 중공업이 활성화되어있기 때문에 이러한 공장지대와 거주지로부터의 오염물질의 유입을 관리하는 것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이리호의 오염이 매우 크게 감소하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들은 모든 이들의 미움을 받았던 이 얼룩무니 마합류가 오염물질을 자신의 몸 안에 축적시켜서 이리호의 오염물질이 줄어든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런 이유로 생태학자들은 조개류를 물의 “폐”라고 부릅니다. 사람이 담배를 피워도 몸에 나쁜 물질들이 폐에 쌓이게 되는 것처럼요). 저는 과거에 어쩠을지는 모르지만 현재는 이 얼룩무니 마합류가 이리호의 생태적 평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인자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과거의 균형이 인간에 의해서 깨어지고 나서, 이 생태계는 다른 균형을 찾은 것이지요. 회전초(tumbleweed)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과거 유럽의 정착민들이 목축업을 하면서 미국 서남부 지역에 초본류가 급격하게 감소가 일어났고 ‘침입종’인 회전초가 이렇게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응하여 이 지역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죠. 아이러니하게도 서부영화에서 많이 보시던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식물이 실제로는 이 지역의 식물이 아닌 것입니다. 

*저자 주: 개인적으로 종이 침략했다는 의미의 침입종이라는 용어를 좋아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지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라 사용했습니다.


회전초

(Source: https://namu.wiki/w/%ED%9A%8C%EC%A0%84%EC%B4%88) 




그렇다면 새롭게 찾아낸 균형이 과거와 다르다고 다시 과거의 균형으로 되돌려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누구도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쌓아 온 저희의 경험과 지식은 그러한 인위적인 ‘힘’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해줍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듯이 자연은 거기에 그냥 있습니다. 인간의 강제한 변화를 감내하고 극복하면서, 그리고 새로운 평형을 찾아가면서요. 인간이 자연의 모습을 규정짓기보다는 장자의 소요유처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자세가 더욱더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가 얇은 지식으로 자연에 저희의 잣대를 가져다 대고 더 망가뜨리기 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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