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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May 01. 2023

딱따구리는 사격장을 좋아해!

왕솔나무와 딱따구리의 슬픈 이야기

미국의 남동부에는 붉은 벼슬 딱따구리(red cockaded woodpecker)라는 새가 있습니다. 한때는 미국의 남동부에 넓게 퍼져 살던 이 새는 1970년부터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미국 정부는 이 종을 보호하기 위해서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원래의 성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작은 수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새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산림생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박사 후 과정을 하던 중이었는데 이 새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연구와 삶에 대해서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새죠.

 

(Source: https://www.allaboutbirds.org/guide/Red-cockaded_Woodpecker/overview#

이 종의 보호를 위해 새의 발에 표식을 달아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새들은 인간의 그릇된 믿음과 애정으로 자신의 집을 잃어버린 꽤 불쌍한 새랍니다.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산불’을 위험인자로 규정하고 이 환경 안에서 불이 안 나게 하고 또 자신들이 사랑하는 나무를 불로부터 보호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했습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썼듯이, 환경이란 보통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지칭하는 말인데, 인간은 자신의 환경에 있는 다른 생물들 역시 자신들과 똑같은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가정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무서워하고 피하고 싶은 것을 피하게 해주는 것이 그들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방법이라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정착했던 이 숲은 산불에 의해서 보호받고 산불과 함께 공존하던 숲이었죠. 또한 이 숲은 자신의 집으로 삼고 살아가던 많은 종들 역시도 산불과 함께 행복하게 (?) 살아가던 산불에 의존하는 생명체였습니다. 원래 이 숲의 주인이었던 왕솔나무 (longleaf pine)는 산불의 보호를 받지 못하자, 곧 자기의 집을 다른 나무들에게 빼앗겨 버렸고, 왕솔나무와 함께 살던 붉은 벼슬 딱따구리 역시 먹이를 구하기도 어려워지고, 자신이 날아다닐 수 있는 공간도 없게 되자 더 이상 이 숲에서 살아가기가 어렵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보호’라는 인간의 선의에 의해 살아갈 곳을 잃은 왕솔나무와 붉은 벼슬 딱따구리는 점차 그 수가 줄어갔고, 또한 이 생태계의 ‘평형’ 또한 깨어져 버렸죠.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 하나의 생태계는 다시 다른 ‘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데, 새로 도달한 평형상태 역시 붉은 벼슬 딱따구리가 살기엔 그리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의 평형을 유지하게 했던 핵심 인자인 ‘산불’이란 요인이 인간의 막대한 노력으로 더 이상 원래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새로운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산불’은 더 이상 이곳의 생명들이 의지해 왔던 ‘산불’이 아닌 탓도 있었죠.


이러한 과정에 의해 붉은 벼슬 딱따구리는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새로운 곳을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찾아낸 곳이 군부대였습니다. 이러한 큰 조직은 정말 많은 건물과 장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장소 중 붉은 벼슬 딱따구리는 가장 선호한 곳이 어디인지 짐작하실 수 있나요? 정말 놀랍게도 붉은 벼슬 딱따구리는 사격장 옆에서 사는 것을 그리고 사격장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거꾸로 이는 군인들에게는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었는데, 사격연습 시 깃발을 든 군인들이 따로 배치되어 딱따구리가 날기 시작하면 깃발을 들어 수신호를 하여야만 했고, 이 수신호에 따라 모든 사격 훈련은 중지되게 되었죠. 이 딱따구리가 어딘가에 앉을 때까지 군인들은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집을 지을 곳을 선택할 수 있다면, 군부대에 들어와서 그것도 집 옆에서 총알이 날아다니고 때때로 수백 수천발의 총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살고 싶을까? 제가 야생 동물이라면 총에 맞을까 봐 또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이 두려워서 절대로 그곳에서는 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듯 현실에서도 군 사격장 주변의 주택은 가격이 다른 곳보다 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이 딱따구리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자, 일견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야생동물과 마찬가지로, 이 딱따구리는 숲과 평지의 경계에서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시야도 넓고 먹이 찾기도 쉽고 위험이 닥치면 바로 옆의 숲으로 들어가서 천적으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산불이 만든 평원처럼 나무가 없이 넓게 펼쳐진 사격장이 이 새에게 매력적으로 보인 이유일 것입니다. 총소리야 천둥소리인 양하면 될 것이고, 아무리 총탄이 빗발치게 날려도 그 총알들이 자신들을 겨냥하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는 딱따구리에게는 총알이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을 것이고요. 부대 밖이라면 밀렵꾼들과 그 외에 많은 인간들의 위험에서 몸을 숨겨야 하지만, 거꾸로 군부대는 밀렵꾼들과 기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고, 또한 택지개발과 같은 인간의 파괴행위도 일어나지 않는 천혜의 요새라고 생각되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 새가 사격장에 자신을 집터를 짓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참된 종보전은 다른 종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의 편에서 삶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선의가 이 종에게 끼친 피해를 보면서, 정말 자연을 보호하고 싶다면 인간에게 유익한 환경을 위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단지 이 지구의 많은 인자 중에 하나임을, 우리가 마음대로 자연의 어떤 것이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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