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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Jun 07. 2021

어느 명예 교수님


몇 년이나 됐을까.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대학원 석사 과정 중이었고, 공대생의 일상이 늘 그렇듯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던 지루한 나날들이었는데, 하루는 지도교수님의 지도교수님, 즉, 은퇴한 명예 교수님이 주최하는 심포지엄이 열린다는 공지를 받았다. (당연히 행사 준비는 대학원생 몫이다)


나의 지도교수님 포함, 전국 각지에서 '큰' 교수님의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현재 무슨 일들을 하는지 학회 형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돌아가면서 하고, 서로 학문적, 기술적 교류를 한다는 취지였지만, 사실 발표는 의례 형식적인 것이고, 그냥 오랜만에 다들 얼굴이나 보는 동창회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었다. 하지만 나름 꽤 격식을 갖춘 자리였는데 (아마도 행정 처리를 하기 쉽게 하려고 그랬겠지), 행사 안내 책자도 만들고, 진행요원 (당연히 대학원생) 도 곳곳에 상주하고, 나름 꽤 우아한 분위기의 심포지엄이었다.



지도교수님의 지도교수님. 큰 교수님을 행사 도중에 멀리서 봤다. 나의 지도교수님과 같은 동창생(?) 들은 모두 40대 정도, 큰 교수님은 60, 70대 정도로 보였다. 오랜만에 실험실 밖으로 나온 터라, 진행 요원일을 하면서 (사실 행사 도중엔 크게 할 게 없다. 준비할 때가 가장 바쁘다) 사람 구경을 하는 재미가 있었다. 다들 멀끔한 양복에 넥타이에 알아듣지 못한 전문용어로 무언가 대화를 하는 40대 어른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 회식 자리에서도 어른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우리 진행요원들은 (대학원생들) 구석 자리에 앉아서 평소에 먹지 못하는 고급 한정식 그릇을 비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지도교수님의 모습은 잘 눈에 띄지 않았는데, 아마도 큰 교수님 테이블에 계속 붙어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몇 달이 흐르고 대학원생들에게 공통 메일이 왔다. 큰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밥을 사주고 싶으니, 어느 날 어느 시간에 식당으로 모이라는 공지였다. 우리는 몇 개 차에 나눠 타고 약속 장소인 소박한 한식집으로 향했다.


거기에 20명은 들어갈 기다란 테이블 정 중앙에 큰 교수님이 가운데 혼자 앉아계셨다. 다른 제자들 (그때의 40대 어른들)과 지도교수님은 보이지 않아서 살짝 당황했다. 우리는 이내 자리에 나눠 앉고 음식을 비우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박사과정 선배들이 큰 교수님께 말도 걸어주고 분위기를 띄우려고 했지만, 침묵은 매우 자주, 길게 찾아왔다. 대화는 거의 이어지지 않았다. 20대 대학원생들과, 은퇴한 교수님과의 어색한 식사자리.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큰 교수님이 우리들에게 지도교수님이 너무 괴롭힌다 싶으면 나에게 연락하라, 혼내 주겠다는 말을 했고, 우리는 모두 웃었다. (설마 진짜로 연락하는 미친 사람은 없겠지?) 식사는 빠르게 끝이 났고, 우리는 큰 교수님에게 90도 인사를 한 다음에, 다시 차에 나눠 타고 연구실로 향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가끔 어른들이 외롭다 라는 생각이 들면, 왜인지 모르겠지만 가장 먼저 그때 큰 교수님, 긴 테이블에 혼자 앉아 계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지금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은퇴한 주변 어른들 얘기를 듣는다. 아이들은 바빠 보이고, 아내는 몇십 년간 혼자 지내는 게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집에 있는 게 눈치가 보여서 다시 밖에 나오는데, 갈 데가 없다,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듣는다. 그럴 때면 또 그때 큰 교수님 생각이 난다.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교의 정교수. 그리고 정년 은퇴. 그것보다 더 큰 명예가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분명히 그때 식당에서 헤어질 때, 그 교수님은 다시 한번 우리를 뒤돌아 봤을 것 같다. 우르르 차에 타고 왁자지껄 다시 연구실로 향하는 아이들. 월급 백만 원 남짓 받는 우리들의 뒷모습을.



아직도 가끔 슬램덩크 만화책을 본다. 거기에는 강백호가 감독님에게 시합 중에 묻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냐고.


나는 지금입니다.


나는 아직도 잊고 산다. 나의 영광의 시대가 지금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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