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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Sep 11. 2021

인생 최고의 석양 사진


나에겐 노트북이 2대가 있다. 하나는 구형 HDD, 다른 하나는 신형 SSD. 아무대로 신형이 빠르기 때문에 거의 이것을 쓰고, 구형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용도로 쓴다. HDD 가 느려도 보존성만큼은 탁월하다.


어느 날 심심해서 구형 노트북의 폴더를 의미 없이 클릭해보다가 예전에 디카로 찍었던 사진 모음을 발견했다. 2011년 8월 24일. 한참 디카에 빠져서 혼자서 출사를 다녔던 시절. 혼자 버스 여행을 하며 여기저기 예쁜 곳을 걸어 다녔던 기억이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이 사진. 바로 학교 뒷산의 석양.



사실 밤 풍경 사진을 잘 찍지 못해서 어떻게 하나 헤매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마침 같은 장소에 나처럼 혼자 출사를 오신 분이 사진 찍는 것을 도와주셨다. 능숙한 솜씨로 사용법을 알려주시면서 나에게 말하기를, 괜히 주제넘게 오지랖 부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네이버 카페에 무슨 사진 동호회 같은 곳에서 활동하고 계시다던데, 메모할 데도 없고, 산을 내려오면서 카페 주소를 잊어버렸다.


그로부터 3년 정도 지난 후, 일상에 집중하며 출사의 의욕도 점차 떨어졌다. 서랍장 속 수북이 먼지가 쌓여가던 디카는 중고로 팔아버렸고, 대신에 그동안 찍은 사진 모음집만이 이렇게 노트북에 남았다.


그때 생각이 났다. 분명히 사진을 찍는 당시에는 이 사진이 인생샷이다, 하며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그때의 느낌만큼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냥, 지금, 오늘 창밖으로 보이는 석양이 더 아름답다. 


이제 여행을 가도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최소한의 기억, 느낌만 담으려 인증샷 정도에 그칠 뿐. 대부분의 시간은 내 안에 직접 담으려 그 순간, 온전한 그 분위기에 집중한다. 그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인생 사진'은 사진을 찍는 모든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제의 인생샷은 어제, 오늘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인생샷은 내일.


지금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하루를 무사히 잘 보냈기 때문이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쉽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습관 같은 일상의 힘겨움을 겪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늘의 순간에 집중하고, 노력하려 발걸음을 옮기고, 땀을 흘리고, 그리고 저녁 하늘을 본다. 인생 최고의 석양 사진은 고개만 들면 바로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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