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orest Writer Jul 24. 2022

나이의 해방일지

나이 말고 나를 추앙하기


2022년, 어느덧 삼십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만 나이를 강조하고 싶어지는 시기가 온 것이다. (생일도 느려서 만 나이를 하면 꽤 이득을 본다) 물론 세상 사람 누구나 다 거치는 일이다.


이십대 청년들이 보기엔 나의 나이가 엄청나게 많게 느껴지겠지. 내가 대학생 때 9X 학번들을 보며 느낀 기분일 것이다. 반대로 사십대 오십대들이 보면 아직 갓난아기(?) 시절이라고 귀여워할지도 모르겠다.


현대 과학에 따르면 시간은 조금 빠르게 가거나 느리게 갈 수는 있어도 뒤로 가지는 못한다. 즉,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이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그와 연관된 수많은 인과관계들이 다 무너지게 될 테니.


즉, 세상 사람 모두는 공평하게 늙어간다. 탄생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화살표가 정방향이라면, 역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전 우주를 통틀어 아무도 없다. 이 순간에도 1초, 1분, 1시간씩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지금 2022년에 태어난 아이가 학교에 가고, 취업을 하고, 가정을 꾸릴 날도 언젠가는 올 것이다.




시간, 나이, 세월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알게 모를 우울감을 주기도 한다. 처지는 뱃살, 탄력 잃은 피부, 푸석한 머릿결, 잘 먹지 않는(?) 화장 등등. 아무리 운동을 해도 체력은 예전만 못하다.


나이가 든다는 건 사회적으로 성취해야 하는 퀘스트(임무)가 많아진다는 의미도 된다. 스무살엔 대학 가야 하고, 이십대 후반엔 취업해야 하고, 삼십대엔 늦기 전에 결혼해서 가정 꾸려야 하고, 사십에는 얼마큼 모아서 아파트 대출 갚아야 하고, 오십에는 연금저축 자산관리 잘해야 하고, 육십부터는 집에만 있지 말고 대인관계 잘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정석'에서 벗어나면 루저로 불리게 된다.


전 세계에 유례없는 오지라퍼 국가인 우리나라 사회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아가려면, 이러한 나이에 따른 임무들을 달성하는 것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부담감이 가끔은 우리를 많이 옥죄어 온다.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이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해방일지.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주인공인 기정은 싱글대디 태훈과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태훈의 어린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면 자신의 나이가 오십이 된다. 오십은 되기 싫지만, 오십이 되어야 그와 결혼을 할 수 있는 것.


[기정친구] 야 우리 사십 금방 오지 않았니? 오십도 금방 오지 않을까?

[기정] 안돼! 야, 오십은 그렇게 빨리 오면 안 돼.

[기정친구] 태훈씨랑 오십에 결혼한다며?

[기정] 그러니깐, 빨리 오면 안 되는데, 빨리 와야 돼. 

(기정이 한숨을 내쉬며) 아, 오십, 오십에도 무슨 감정이라는 게 있을까? 그 나이 되면 그냥 동물 아닐까 싶다. 응? 살아있으니깐 사는, 우물우물 여물 먹듯이 먹고 그러는.


(기정과 친구가 자신들의 얘기를 빤히 듣고 있던 옆테이블 오십대 여자들을 보고 정적에 빠진다)


[옆테이블 여자] 살아있으니깐 산다 싶은 우물우물 여물 먹는 동물인 오십인 여자가 말해줄게. 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는데, 음, 서른이면 멋질 줄 알았는데 꽝이었고, 마흔은 어떻게 살지, 오십은 살아 뭐하나, 죽어야지, 그랬는데.

오십? 똑같아.

오십은 그렇게 갑자기 진짜로 와. 난 열세 살 때 잠깐 낮잠 자고 탁 눈뜬 거 같애. (친구들을 보며) 니들도 그러지?

팔십도, 나랑 똑같을걸?


옆테이블 여자의 말처럼, 우리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면 나이를 먹는 걸지도 모른다. 한숨 자고 나면 스무 살, 또 자고 나면 서른, 잠깐 딴생각하고 일어났더니 마흔... 오십...


나라는 인간은 계속 그대로인데 나이만 먹는다. 어릴 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


출처: JTBC 공식 홈페이지



나이에 상관없이 나라는 인간은 늘 그대로라는 것이, 가끔은 허망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만큼 안심을 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이 생각이 나이에서 '해방'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으니깐. 


나이는 나의 자아와 상관없어.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그냥 나야. 몇 살이든, 그냥 나로 존재하는 것. 


그러니 시기와 속도를 따지지 말자. 나이 말고 나를 추앙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