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orest Writer May 15. 2022

또 다른 나의 생일

브런치 1주년


새로운 사이트나 앱에 회원가입을 하면 종종 생년월일을 기입할 때가 있다. 물론 친절하게 숫자만 입력하면 되는 곳도 있고, 굳이굳이 달력을 펼쳐서 해당 날짜를 직접 눌러야 하는 불편한(?) 곳도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알게 된 신기한 일상의 단상이 있다. 나, 월요일에 태어났구나. 평소에는 전혀 생각조차 않던 마음속 샛길을 발견하고 조금 더 나아가 보기로 했다. 분명 이것도 여행이니깐.


나는 생일을 의미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흔한 얘기로 세상 모든 것은 위치 이동일뿐이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지만, 분자나 원자 같은 실체가 아닌, '의미'라면 어떨까? 생일을 기점으로 없던 물질이 생겨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나'라는 의미는 새로운 게 맞다. 생일 이전에는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으니깐. 오늘은 좋아하는 케익과 함께 의미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의미 있는 날.




2021년 5월 13일. 브런치에 가입했다. 계획하지 않았고, 그저 즉흥적인 신청이었다. "이거 뭐지, 재밌을까? 한 번 해봐야지." 필명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정했고, 아직까지 바꾸지 않고 있다. 그날 이전에는 아무도 나에게 브런치 작가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물론 아직도 민망하지만) 나를 브런치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이 생겼으니, 나에게 또 다른 의미가 새롭게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또 다른 나의 생일.


그날 이전에는 평범한 서울의 30대 직장인이자, 틈틈이 소설을 쓰는 습작생이었다. 물론 그것은 아직도 유효하다. 현실의 나는 현실에 집중하고, 브런치 작가의 나는 현실을 통해 얻은 생각들을 웹에 녹여내고 있다. 서로 공생하는 관계이면서 분리된 자아이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브런치를 하는지 모르고, 앞으로도 밝힐 생각이 없다.


글 쓰는 생활을 지속하면서 좋은 글도 있겠지만 분명히 이불킥이 될만한 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발행한 글은 지운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 그 모든 과정도 '나'이니깐. 남겨두기로 한다. 물론 그것 때문에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아니다. 그냥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렇다.




쉴 때는 뭐하냐요?라고 처음 만나는 사람이 물으면, 예전에는 그냥 예능, 드라마, 소설책을 보거나 운동과 게임을 한다고 대답을 많이 했었다. 요즘도 물론 비슷하지만, 산책과 글쓰기의 비중이 늘었다.


이상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히 생각을 많이 하는 일이고 뇌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활동이다. 그런데 그것이 휴식이 될 수가 있나? 음.. 그게 가능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기 때문이다. 햇살 좋은 날, 내 방 창가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서 음악을 틀어놓고 키워드 하나 던져놓고 그냥 막 쓴다. 당연히 초고는 엉망이고, 쓰레기, 누더기이고, 대부분은 지운다. 그러면 글 쓰는 일이 휴식이 될 수 있다. (물론 '진짜' 휴식을 할 때는 피드를 눌러서 이웃 작가님 글을 읽거나, 새로운 에세이를 찾아본다. 세상엔 숨은 고수가 많고, 그만큼 좋은 글도 참 많다.)



얼마 전에 상위 10% 안에 드는 법에 대한 글을 하나 봤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꾸준히 하는 것.


건방진 소리 같지만 나는 시장의 90% 는 애초에 우리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90% 보다 잘하는 건 일도 아니다.

방법도 아주 간단하다. 그냥 꾸준히 버티기만 하면 된다. 이게 전부다. 신규 팟캐스트의 80% 가 반년을 못 버틴다. 이게 연 단위로 넘어가면 훨씬 심해진다. 그때 깨달은 건, 뭔가 꾸준히 하는 건 그 자체로 특별한 것이고 이렇게 성실할 수 있는 타입은 10% 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글쓴이 미상



당장 글 써서 돈 벌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취미로 하는 일에서 상위 몇 퍼센트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얼마나 성실한지 중간평가 해보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내가 1년 동안 발행한 글이 105개, 약 3일에 한 번꼴로 발행을 했고, 발행 공백은 한 번도 2주를 넘긴 적이 없다.


이 모든 게 그냥 재미있어서, 막 써서 가능한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엔 즐기는 사람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했던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막 쓸 생각이다. 물론 퇴고와 발행은 에너지를 많이 써서 신중하게 한다. (작년에 쓴 초고가 아직도 남아있는 게 있다) 재미있는 것도 좋지만 결국 퀄리티가 가치를 결정해주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애써 걷어내고, 또 다른 나의 성적표, 즉 조회수를 공개해본다. 다들 이런 거 하던데.


1년 동안 36만 9699번의 눈길이 여기에 머물렀다고 생각하니, 다시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아무것도 안 올린 날에도 하루 100명씩 들어온다는 게 신기하면서 행복하다.




-부기.

매년 5월, 브런치 생일마다 (방문자 숫자만 다른) 같은 글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많이 봐주시고, 읽어주시고, 의견 남겨주시고, 좋아요 눌러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5월 되세요 :)




https://brunch.co.kr/@forest-writer/1



매거진의 이전글 오후 10시를 생각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