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orest Writer Oct 10. 2021

오후 10시를 생각하며


가끔씩 오후 10시에 퇴근을 한다. 늦게까지 일 하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밤 풍경이 아름다운 건 언제나 사실이다. 아름다움의 보존 법칙에 맞게, 고된 하루에는 항상 보상이 따른다.


대학교, 대학원 때는 10시면 초저녁이었다. 그 당시 워낙 새벽형 인간이기도 했고, 허윤희 MC의 라디오를 즐겨 들으며 늦게까지 남아 공부를 했던 시절이다. (지금도 가끔씩 듣는다) 아무리 서울 한복판이라도 주택가는 밤 10시면 한밤중이지만, 캠퍼스의 10시는 활기로 가득했고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도서관 앞 기다란 의자에 앉아서 삼삼오오 떠들다가 하나 둘 다시 흩어지곤 했다.


약속이 있는 날, 신촌의 밤 10시는 자리가 완전히 무르익은 시간이었다. 너도나도 둥글게, 네모나게 둘러앉아서 앞의 잔을 비우고 별거 아닌 일에 하하호호 깔깔거리곤 했다. 10시를 기점으로 집이 먼 사람과 가까운 사람으로 그룹이 나뉜다. 나는 항상 가까웠기에 평소 공부를 마치는 시간과 거의 비슷하게 자리를 나오곤 했다. 지금도 서울의 대학가 앞에 살고 있고, 그때의 내 모습을 퇴근길 10시에 자주 본다. 아기 고양이가 세상을 궁금해하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깨물어보는 것을, 그 풍경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어른 고양이가 된 느낌이다. 


과외 알바를 마치고 나오는 10시는 이어폰 속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서울의 지하철의 10시 유동인구는 많지 않고, 자리는 꽤나 넉넉하다. 남은 지하철 정거장 개수는 노래 곡 수로 세곤 했다. 눈을 뜨지 않아도 계산은 거의 정확했고, 한 번도 역을 지나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음악을 머릿속으로 따라 부르는 상상을 하다가 어느새 내려서 다시 마을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대학 선배를 지하철역 입구에서 만나서 30분 넘게 무슨 얘기를 그리 길게 떠들었는지 지금은 하나도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루가 두 시간 남은 시간, 밤 10시. 사람들은 저마다의 설렘과 아쉬움을 남긴 채 여기저기서 작별인사를 하거나, 때론 자리가 무르익는다. 내리는 비에 도로 가장자리가 퐁당퐁당 검은색 빗물 점이 반복되는 것을 버스를 기다리며 멍하게 바라보곤 했다. 시원하게 뚫린 간선도로를 오래간만에 내달리는 택시 아저씨의 소확행의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도 거리엔 사람들이 활기차게 가득하다. 그때와 다른 건 마스크뿐이다. 잠시 이별의 아쉬움을 포옹으로 나누는 연인들이 있고, 간간히 길거리에 앉아 울고 좌절하고 있는 청춘들이 있다. 내일 보자, 손 흔들며 버스에 오르는 친구들이 있다. 유니폼을 입은 채로 퇴근하는 카페 직원의 힘 빠진 뒷모습이 있다.  


그 거리, 음악, 빗물 냄새, 떠드는 소리, 흔들리는 불빛, 마을버스 아저씨. 그들이 발산했던 진동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지, 어디에 있을지 때론 궁금해진다. 앞으로의 오후 10시는 어떻게 변해갈까.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상사들은 왜 회식을 하고 싶어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