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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Aug 28. 2022

전세는 미친짓이다

집값은 전세가 떠받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부동산의 최악의 제도는 전세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전세의 장점도 분명하니깐. 하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듯이 단점 역시 수두룩 하다. 그것들은 가끔 복합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세의 원리는 간단하다. 전세 계약을 시작할 때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전세보증금을 지불하고, 시간이 흘러 임대차 계약이 끝나면 임대인은 받은 전세보증금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임차인에게 그대~로 돌려주면 된다. (임차인은 다달이 관리비와 공과금 정도만 부담한다) 원리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초등학생도 이해할 만한 수준이다.


이야~ 전세 제도 좋네. 당장 목돈이 없는 사람이 거주할 집을 구하는데 이만한 방법이 또 없다. 어차피 1년 뒤에 돌려받을 돈이니 그것을 직접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사람들은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는다. 1억을 빌리는데 이자가 200만원이라면, 전세 1억 집에 1년 거주하는데 드는 비용은 단 200만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회초년생들, 대학생들은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해서 거주를 해결한다.


일단 임차인 입장에선 좋네. 그럼 임대인은 뭐가 좋지? 바보가 아닌 이상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보증금 1억을 1년 동안 가만히 계좌에 넣어두는 임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식을 하든 뭘 하든, 어떤 식으로든 굴리고 굴려서 1억 플러스알파를 확보하고, 세입자에게 돌려줄 1억을 제외한 금액을 자기가 먹는다. 오케이. 임대인 입장에서도 목돈을 굴릴 수 있으니 좋네.


하지만 사회는 그리 만만하지 않고, 야생이고, 정글이고, 전쟁터이다. 우리나라 같은 사기 공화국에서 법의 허점이 있다면 누구든 그걸 통해 이익을 얻고 싶어 할 것이다. 세상 모든 제도가 그렇듯, 맹점은 존재하고, 그를 통해 모든 사람이 가지는 숨겨진 욕망이 탐욕으로 바뀔 때가 있다. 전세도 마찬가지다.




 


썰물이 오면 해변의 모습이 드러나듯이, 전세의 진짜 모습은 만기에 찾아온다. 늘 그렇듯, 경제는 사이클이 있고 돈이 잘 벌리는 시기 또는 불황은 예측할 수 없다. 세입자에게 받은 1억을 임대인은 만기에 돌려줘야 하는데, 만약에 1억을 투자하다가 날려먹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은행에서 빌려서라도 세입자에게 1억을 곧이곧대로 돌려줄까? 이런 낭만적인 생각을 아직까지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찬물로 세수하고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두가 착한 이상 사회가 절대 아니다.


일단 임대인은 시간을 질질 끌 것이다. "아, 내가 지금 묶인 돈이 많아서, 당장 회전이 잘 안돼. 학생 조금만 기다려 줄래요? 여러군데서 돈이 들어오는 대로 줄게." 당장 임차인은 급하다. 이직을 하거나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서 빨리 주거 이전을 완료해야 정상적인 생활이 되는데, 이전 집이 안 빠지면 새집 계약 잔금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전 집의 전입을 뺄 수도 없다. 우선순위가 밀리면 최악의 재앙을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임대인은 묘안을 낸다. 새 임차인을 구해서, 그가 들어오면서 내는 전세보증금을 이전 임차인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세금 돌려막기. 전세금은 잠깐 임대인의 계좌에 스쳤다가, 곧바로 이전 임차인으로 향한다. 이 정도로도 상황이 정리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에 새 임차인이 구해지지 않는다면? 여기까지 오면 정말 방법이 없다. 소송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임차인은 새로운 지역에서 일도 해야 하고 여유도 없다. 그래서 이전 집에 대해 대항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 유명한 '임차권등기 명령' 을 걸어두고 나온다. 등기부등본에 '여기 주인 XX 세입자 등쳐먹는 나쁜 XX' 라고 박제시켜 두는 것이다.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올 리가 만무하다. 






그러면 만기에 전세금을 잘 돌려줄 수 있는 집에 들어가면 되지 않나요? 처음부터 꼼꼼히 확인해야죠, 라고 할 수도 있다. 맞다. 보통은 그래서 부동산 임대차 계약을 할 때 등기부등본을 우선적으로 확인한다. 물론 이것도 완벽하진 않다.


집에 대한 우선 권리 순위를 따질 때 임대인의 대출(근저당)은 등기부등본에 보이기 때문에, 임차인 입장에서 제때 대응을 할 수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세금 미납(체납)이다. 만약에 임대인이 체납을 심하게 해서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고 했을 때, 세금의 종류에 따라 임차인의 보증금보다 세금 추징이 우선일 수도 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임대인이 채무초과 상태일 때는 임차인의 우선변제금보다도 더 우선으로 권리를 갖는다. 잘못은 임대인이 했는데, 피해는 임차인이 보는 태생적인 구조이다.  


그러면 임대차계약을 할 때 임대인의 세금 체납을 확인하면 되지 않나요?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임대인 입장에선 개인정보니 뭐니 해서 당연히 반대한다. 계약하기 싫으면 관두던가, 라고 나올 수도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수십 명의 공인중개사를 만나봤지만 집주인의 세금 문제에 대해서 개인정보 열람을 받아주겠다는 중개사를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사실상 불가능이다. 


나와 계약하는 임대인이 빌라왕인지 오피스텔왕인지 탈세왕인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전세 계약을 하는 순간 임차인은 러시안룰렛 게임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 운 좋게 살아남을 수도, 전재산을 잃고 쓰러질 수도 있다. 그저 전부 다 운에 달려있을 뿐이다. (보통 경매에 들어가면 임차인 10명 중에 4명 정도는 보증금 일부를, 10명 중 1명은 전부를 잃는다)


참고로 필자는 아직까지 전세에 들어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월세를 내더라도 전세금을 줄이는 반전세가 더 안정적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소액임차인 우선변제금 이내로 해결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만약에 큰 금액의 전세로 들어간다면, 전세보증보험은 필수적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은 더욱더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전세금 돌려막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예 주택을 구입(취득) 하는 순간부터 전세를 놓는 것이다. 그러니깐 자기가 가진 소액에다가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합쳐서 신규 주택을 구매하는 것. 그러면 나중에 몇 년 뒤에는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지금 당장은 적은 돈으로 집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이건 그냥 처음부터 임차인에게 "나 이렇게 대놓고 전세금 돌려막기 할 거야. 그러니깐 전세 만기라고 바로 못 돌려줘. 다음 세입자 구해주고 나가요." 라는 말과 같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집값이 올라서 시세차익이 난다 싶으면 '세안고 매매' 형식으로 다음 소유자에게 집을 넘긴다. 이것이 그 유명한 '갭투자' 이다. 집을 사놓고 한 번도 들어와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하지 어차피 값 오르면 다시 되팔건데 봐서 뭐해?


부동산 갭투기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는 강도 높은 세금 대책과 주담대 비율(LTV) 를 강화하는 정책을 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실패했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연하지 갭투자는 원래 대출을 받아서 하는 게 아니라서 대출 규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전세라는 존재가 있는 한, 갭투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부의 욕망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그래서 주택 매매 역시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매도자는 호가를 높게, 매수자는 호가를 낮게 설정해놓고 줄다리기를 한다. 만약에 매도자가 매수자의 호가를 따라가면 거래가(집값)는 내려가는 것이고, 매수자가 매도자의 호가를 쫓아가면 집값은 올라간다.


갭투자를 하면 자기 자본을 거의 들이지 않기 때문에 집을 구매하는 것이 매우 쉬워진다. 무슨 말이냐면 매수자가 매도자의 호가를 따라가는 게 너무 쉽다. 이 정도에 팔리면 안 되는데 팔리게 되는 마법이 일어난다. 그래서 집값이 오른다. 임차인 입장에서 싸고 편하게 일정기간 거주를 하게 만들었던 '전세' 라는 제도가 갭투자를 만들었고, 그것이 집값 폭등을 유발한 것이다. 


주택 개인 거래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예 시행사에서 처음부터 팔 때조차 분양가 자체를 높게 불러놓고 시작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전세 끼고와서 사 주니깐. 그래서 비싸진 집을 사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물론 요즘은 이것 때문에 줄줄이 미분양이 나기도 한다. 그러면 결국 가격은 떨어지게 되어있다)


사는 것이 어려워져야 가격이 내려간다. 가격이 내려가야 사는 것이 쉬워진다. 즉, 집을 구매하기가 너무 쉬워졌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집을 구매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졌다. 돈 없는 사람도 갭투자를 하면 누구나 집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집값이 올라서 집을 사는 게 어려워졌다. 지금 서울 평균 아파트값이 10억이다. 갭투자가 만들어낸 기이한 결론이다. 


지난 5년간 아파트 가격 추이. 서울에서 임의로 두 군데를 찍었는데, 다른 곳도 경향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 (네이버 부동산)



전세제도가 있으면 사람들이 집을 잘 팔지 않으려고 한다. 집이 안 팔린다? 그럼 전세 주지 뭐. 집이 안 팔려도 자금을 충당할 전세라는 마법이 있기 때문에 매수자의 (낮은) 호가를 따라가면서 팔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시장 가격이 안 떨어진다. 


전세는 집을 구매하려는 의지는 올리고, 팔려는 의지는 떨어트린다. 즉, 집값은 사실상 전세가 떠받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집값이 올라도 1주택자는 세금만 많아지지 좋지도 않다. 다른 곳도 다 올랐으니깐 이사도 쉽게 가지 못한다. 결국 집값이 올라서 행복한 사람은 갭투자자밖에 없다.



음. 이상한데? 그러면 요즘 2022년 집값은 왜 떨어지는 건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금리가 오르는 건 대출에 영향을 준다는 건데, 갭투자는 대출이랑은 상관없다며?


물론 갭투자자가 대출을 받지 않는 것은 똑같다. 다른 점은 임차인이 전세대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은 전세대출 금리도 올라서 월세 내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졌다. 즉, 임차인 입장에선 전세나 월세나 비슷한 돈이 든다. 그러면 임차인은 전세를 선호할까? 월세를 선호할까? 


지극히 당연히 임차인은 월세를 선호하게 되어있다. 전세는 떼일 위험이 있지만, 월세는 떼이는 위험이 없다. 같은 금액이면 무조건 월세다. 그래서 요즘은 전세로 들어가려는 세입자가 줄어들었다. 집주인들이 전세 들어올 사람을 구하지 못하니, 갭투자를 하기 힘들고, 당연히 집값은 하락한다. 결국 집값은 갭투자 그리고 전세와 운명 공동체이다. 그렇게 셋은, 금리의 힘 앞에서 무너지게 되어있다.






얼마 전 뉴스 기사를 보는데, 집주인이 분양을 받는데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서 잔금을 치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아니, 너희 집 사는데 잔금을 왜 남이 내줘야 하는건데? 라는 실소를 막을 수 없다. 자기가 당장 들어가 살 것도 아니고, 분양가를 지불할 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집은 구매하고 싶어 한다. 누가 등기권리증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걸까.


개인적으로 전세는 인간 욕망을 탐욕으로 만든, 집값을 폭등시킨 주범이고 있어서는 안 될 제도라고 생각한다. 세상 어딜 가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좁아터진 원룸 투룸 가격이 이렇게 높은 곳이 없다. (있다면 홍콩 정도?) 


당장은 사탕처럼, 초콜릿처럼 달콤하지만, 전세는 결국 우리의 속을 쓰리게 하는 부동산 폭등을 유발하고, 출산율을 떨어트린다. 그러고 보면 정말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말이 참 실감이 난다.



전세보증금의 원래 취지는 임차인이 월세를 미납했을 경우 거기서 제하기 위한 용도로 확보하는 것이다. 만약에 전세제도가 없어지고 보증금 상한제가 생긴다면 월세가 폭등할 거라는 예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한번도 그런 세상을 겪은 적이 없어서 결론을 쉽게 예상할 순 없다. 다만 이 한가지는 확실하다.


'달콤한' 전세제도는 결국 오늘날 가계부채 2000조 빚더미 시대를 낳았고, 장기적으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말 그대로 지금 우리 주변의 모든 게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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