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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Jan 17. 2023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하면 가격이 올라간다

물가를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



1. 몇 해 전 여름, 임대차 3법이 시행이 되었다. 여러 가지 조항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건, 2년 전세 계약이 만기 될 때 기존 임차인은 임대료 5% 상한선 이내로 추가 2년 임대 갱신이 가능한 것이다.


"음.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전세가가 안정이 되겠군."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향후 4년간 임대료 인상을 할 수 없게 된 임대인들은 그만큼 초기 임대료를 높게 받았으니깐. 덕분에 전세가는 폭등에 폭등을 거듭했다. 전세가가 너무 비싸다고 툴툴대는 임차인들에게 임대인들은 이런 말을 남겼다.


"너 말고도 여기 들어올 사람 많아. 전세금 안 올려줄 거면 나가든가. 확 내가 들어와 살아버린다?"




2. 고물가와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에게 주택 및 상가 월세 지원금을 주는 지자체가 있다. 청년들은 숨통이 트인다고 좋아했지만, 임대인들은 그 지원금을 반영해서 빠르게 월세를 올렸다. 너희들 돈 생겼잖아?


"너희들 국가에서 지원받고 있지? 그거 감안해서 임대료 올려야겠어. 너 말고도 여기서 장사하고 싶은 사람 많아. 임대료 안 올려줄 거면 나가든가."




3. 몇 해 전부터 청년층의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선 전세대출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목돈이 없어서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전세대출을 해주면 주거비 안정에 이바지할 수 있겠지.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청년들의 전세금 마련이 쉬워지자 임대인들은 그만큼 전세금을 높게 받았으니깐.


"너희들 국가에서 저렴한 이자로 전세대출받고 있지? 그거 반영해서 전세금 올려야겠어. 전세금 더 올려도 가지고 올 수 있잖아? 너 말고도 여기 들어올 사람 많아. 전세금 안 올려줄 거면 나가든가."


예상치 못한 일은 또 있었다. 사람들이 청년들의 전세대출을 지렛대 삼아서 마구잡이로 주택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 덕분에 (전세 낀) 주택 가격은 폭등에 폭등을 거듭했다. 그 유명한 '갭투자'의 시초가 전세대출제도에 있는 건 지금 와선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는 '깡통 전세'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차마 몰랐다.




4. 해마다 정부에서는 세금을 어떻게 걷을 것인가에 대해 난상토론 및 육탄전이 벌어지곤 한다. 특히 부자들의 세금을 얼마나 더 걷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소속 정당의 이념에 따라 합의가 정말 쉽지 않다. 임대업을 하는 다주택자들의 보유세를 높게 걷으면 임대인들은 이렇게 대응하곤 한다.


"보유세 올린다고? 그래 마음껏 올려봐. 어차피 우리는 그거 임차인들한테서 메꿀 거야. 세금 반영해서 임대료 더 올려야겠어. 너 말고도 여기 들어올 사람 많아. 임대료 안 올려줄 거면 나가든가."




비록 우수한 경제발전을 이루어냈고 세계 최정상급 선진국인 우리나라이지만, 막상 그 안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내기엔 정말 쉽지 않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니깐.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물가'다. 물가가 너무 높아서 사는 게 너무 힘들다. 무슨 김밥 하나에 5천원이야? 서울에 원룸 월세가 100만원? 왜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거지? 이런 의문점이 끊이질 않는다. 도대체 정부는 뭐 하는 거야?


청년들은 안정된 직장과 꿈을 찾아 서울/수도권으로 몰린다. 하지만 주거형편은 정말 형편없다. 서울 중심부는 언감생심이고 점점 더 외곽으로, 오피스텔에서 빌라로 고시원으로, 지상에서 지하층으로 밀려난다. 비가 올 때마다 불안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돈을 모을 수 없다.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이 너무 크다.


어떻게 하면 임대료가 낮아질 수 있을까? 고민은 비단 우리나라만 하는 게 아니다. 저 멀리 태평양 건너 미국도 같은 고민을 한다. 그러니깐 우리나라에서 살기 힘들다고 영어 배워서 외국 나가봤자 똑같다는 소리다. 실리콘밸리에선 우리 돈으로 300만원이 넘는 월세도 흔하다.




임대료도 결국 수요/공급 법칙을 따른다. 임대료가 올라가는 건 임대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토의 70%가 산지이고, 나머지 30% 평지 중에서 괜찮은 직장, 풍요로운 삶의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지역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임대 수요가 몰리는 건 당연하다.


그럼 답은 간단하네? 임대주택을 많이 지으면 되잖아? 초등학생도 생각할 수 있는 답이다. 임대주택을 더 지으면 임차인 입장에서 선택지가 넓어지게 되고, 임대인들은 경쟁적으로 임대료를 낮춰서라도 임차인을 모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연히 지역주민들은 임대주택(청년주택)을 반대한다. 기숙사도 반대한다. 자연파괴라며 동네에 산이라는 산에는 전부다 그린벨트로 묶어버린다. 그런 거 없어도 이미 국토의 70%가 산지인 나라에서... 이런 코미디를 하고 있다. 전부 다 돈 때문이다.


청년들 힘든 건 알바 아니고, 나 돈(임대료) 벌어야 되니깐 임대주택 짓지마, 이런 식이다. 임대주택 공사 현장에서 드러눕는 건 기본이다. 정치인 입장에선 재선을 해야 하는데, 지역 주민들의 협박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임대 주택 수를 늘리는 간단한 일이 이렇게나 힘들다. 한정된 예산 하에서 임대주택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도 난관이 따른다.




임대 수요층이 자가(자기보유주택)를 가지게 되면 해결되지 않을까? 집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면 그만큼 임대 수요에서 빠지게 되니깐. 실제로 2020년에서 2022년까지 많은 2030 청년들이 영끌로 주택을 마련했기 때문에, 현재 2023년에 전세 임대 수요가 많이 줄었다. 전세 수요가 줄어드니 당연히 전세 가격은 하락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코 지속적이거나 안정적이지 않다. 주담대 갚느라 허리 휘어지는 청년들 앞에서 이딴 걸 해결책이라고 내놨다간 두들겨 맞기 딱 좋다.


결국 본질적으로는 주택 가격이 내려야 한다. 주택 가격이 내려야 사람들이 자가를 많이 가지게 되고, 임대 수요가 그만큼 줄어든다. 그래야 임대료가 내려간다.


그럼 똑같이 답은 간단하네? 주택을 많이 지으면 되잖아? 맞다. 공급에는 답이 없다. 정부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재건축 기준을 완화하고 주택 총량을 늘리려고 애쓰는 것이다. 원래 10층 짜리 아파트를 허물고, 20층, 30층짜리를 지으면 전체 주택량이 늘어난다. 그러면 주택 가격이 떨어진다.


물론 30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를 왜 허무냐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화유산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레트로 감성이 충만한 사람들은 재건축을 불쾌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막상 30년 된 아파트 안에 들어와서 살펴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이딴 걸 보존할 가치가 있나?)


(비록 끔찍한 가정이지만) 만약에 택시처럼 주택 총량제가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안 그래도 좁아터진 땅덩어리에서 아파트의 희소가치는 하늘을 치솟을 것이고, 강남 아파트는 부르는 게 값이 되었을 거고, 100억은 쉽게 넘었을 것이다. 그만큼 공급량의 힘은 크다.






주택 총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주택을 가지게 하는 것도 큰 문제가 있다. 지난 몇 년간 저금리와 전세제도가 합쳐진 '갭투자'로 인해서 수많은 깡통주택이 양산이 되었고, 집주인은 빚을 갚지 못하면 그냥 드러누워 버렸다. 피해는 고스란히 임차인들의 몫이다. 


또한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양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면, 그만큼 시장에 공급량이 줄어든다. 당연히 집값이 올라가는 건 뻔한 일이다. 어떻게 하면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시장에 나올 수 있을까?


다주택자들의 보유세를 늘리면 효과야 가장 좋긴 하겠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물건을 거래할 때가 아닌 보유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 과세를 하는 게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온다. (자동차 기름값이랑 차량 보유세의 느낌 차이를 생각해 보자) 결국 양도세를 줄여야 팔고 싶은 사람들이 제 때 판다. 양도세는 결국 소득세의 하위 개념인데 이렇게까지 무지막지하게(?) 과세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집을 팔 때 양도차익을 너무 공짜로 먹는 게 아니냐고? 다주택자 매물이 시장에 나와서 집값이 안정된다면 애초에 양도차익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양도차익은 집값이 폭등할 '때'만 발생하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잊곤 한다.


결국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기 쉽게 해 줘야 전체 공급량이 늘어나고 집값이 안정화가 된다. 현재 2023년에야 고금리 때문에 이자 부담으로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고 있지만, 이런 금리 상황은 특수한 경우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다주택자들이 많은 주택을 보유하지 못하게 하려면, 양도세를 낮추고 취득세를 올리는 것 밖에 답이 없다. 시차를 두고 발생하는 양도세와 달리, 취득세는 주택을 매매할 때 즉시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정책 적용 효과가 매우 빠르다.


또한 재정건전성이 떨어지는(돈 없는) 사람이 다주택자 신분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저금리와 전세대출제도(사금융)에 있다. 금리는 언젠가 다시 낮아질 것이고, 전세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깡통주택 문제는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다시 일어날 일이다. 결국 이런 일들은 취득세로 막을 수밖에 없다. 


1주택 보유자가 신규주택을 추가로 매수할 때 취득 가격의 5%, 2주택자는 10%, 3주택자는 15%... 10주택자는 50% 를 취득세로 내라고 하면, 당장 우리나라의 모든 깡통주택을 전멸시킬 수 있다. 빌라왕이니 오피스텔왕이니 모두 씨를 말릴 수 있다. 취득세는 그 특성상 남이 대신 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엔 돈 없는 사람이 남의 돈(전세금) 무이자로 빌려서 집 사는 걸 막아야 집값이 안정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가 일일이 물건의 가격을 정해줄 수 없다. 결국 구매자와 판매자의 이해관계, 시장이 결정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하면, 가격은 올라갈 것이다. 물가를 잡으려고 하면, 물가는 더 많이 올라갈 것이다. 


물가가 올라서 힘들다고 소비자들에게 무슨무슨 지원금을 마구마구 뿌려댈수록, 물가는 계속 상승할 것이다. 전세자금대출로 인해 전세 가격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다.


물가를 잡고 싶으면 그냥 판매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된다.


비싸게 팔고 싶으면 비싸게 팔아. 김밥 한 줄에 3만원, 짜장면 한 그릇에 10만원, 치킨 한 마리에 30만원에 판다고 해라. 자동차 한 대에 10억, 아파트 하나에 50억씩 불러. 마음대로 해.

어차피 안 사주면 그만이야. 너 말고도 딴 데서 살데 많아. 


많은 사람들이 판매자가 되는 사회가 되면, 소비자의 선택지가 많아지고 거래가격은 떨어지게 된다. 즉, 공급이 많아야 물가가 안정된다. 닥치는 대로 국영화하고 독과점을 허락하는 몇몇 국가들의 미래는 뻔하다. 


최근에 무슨 ~리단길, 명동이나 이대 상권의 공실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는 것, 새 아파트가 대거 미분양이 나는 것, 도시가 텅텅 비어 가는 모습은 절대로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다. 임대료와 물가가 정상화되어가는 바람직한 사회의 단면이다. 가격이 비싸면 안 사면 되고, 임대료가 높으면 거기서 장사를 안 하면 된다. 그렇게 콧대 높던 테x라도 최근에 자동차 가격을 대폭 인하했다. (안 팔리는데 별수 없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주식시장 부양도 아니고 부동산시장 활성화도 아니다. 바로 '물가 안정'에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화폐 가치의 보존'이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받은 월급(돈)의 가치가 유지되지 않으면 사회는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열심히 일해서 돈 받으면 뭐해? 어차피 휴지조각인데? 10년, 20년 일하면 뭐해? 서울에 집 하나 가질 수 없는데?


그러면 결국 사람들은 노동에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도박, 투기, 한탕주의에 빠지게 된다. 어느덧 익숙한 지금, 2023년의 모습이다.



서로 자기가 힘이 세다고 우기는 햇살과 바람이 어느 날 내기를 했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코트를 누가 먼저 벗게 할 수 있겠냐고.

바람은 온 힘을 다해 나그네에게 불어왔지만 나그네는 몸을 웅크리고 옷깃을 더욱 단단히 감싸 쥐었다. 반면에 햇살은 그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자신을 드러내었다. 따듯해진 온도에 나그네는 스스로 코트를 벗었다.

물가를 잡으려면 판매자들을 억압하는 바람을 불게 하는 게 아니다. 공급이라는 따듯한 햇살을 드리우면, 판매자들은 알아서 가격을 낮출 것이다.



https://brunch.co.kr/@forest-writer/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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