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지인과 취미 얘기를 하는데, 그녀가 요즘 하고 있는 춤 동아리(?) 영상을 보여줬다. 남녀가 커플로 춤을 추는데 마치 대본이 있는 듯 호흡이 딱딱 맞아 보였다. 음, 역시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박자 타이밍이 딱딱 맞는군, 생각하며 말했다.
"와, 이거 노래 따라서 춤 동작 외우는데 꽤 오래 걸리겠는데요?"
"이거 대본 없는 거예요. 프리 스타일."
"?? 그럼 이걸 어떻게 해요?"
"자세히 보시면 남자가 동작이 미세하게 조금 빨라요. 여자는 거기에 맞춰서 따라 가는 거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 통념은 남자가 적극적으로 리드하고, 여자는 거기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문화로 정착이 되어있다. 당연히 대시(구애)도 남자의 몫이고, 한번 거절당했다고 바로 포기하면 남자 취급도 못 받는다. '보통'의 남자들은 살면서 한 두 번은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저 그냥 한번 찔러본 거였나요? 겨우 그 정도 마음이었나요?"
이 단계를 건너서, 데이트 약속을 잡을 때나, 코스를 예약할 때, 길을 찾을 때도 남자가 제대로 하지 못하면 여자에게 당연히 욕을 먹게 된다.
"남자가 되어가지고 이거 하나 제대로 못해?"
언제 어디서나 남자는 여자를 책임감 있게 리드해야 하고, 일을 할 때나, 스킨십을 할지 말지 여부 (물어보고 하면 분위기 깬다고 욕먹는다), 심지어는 침대(?)에서도 남자가 리드해야 제대로 된 남자라고 인정받는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무언가를 할 때 남자가 리더가 되는 것, 이것은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이유도 있다. 일단 남자는 상황의 통제권을 갖는 리더가 되고 싶어 한다. 반면에 여자는 남자가 결정해주고 리드해주길 원한다.
또한, 여자가 리드를 하면 많은 남자들이 오히려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여자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흔한 표현으로 '쉬운 여자'로 오해받을까 봐 걱정하게 되는 것. (이 여자, 설마 다른 남자 앞에서도 이렇게 적극적인가?라는 남자의 생각이 눈에 훤히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세상 어딜 가나 여성 리더는 참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고려+조선시대 천년 동안 여왕이 없었다.
남자보다 여자가 힘이 약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리 타당한 이유는 아니다. 리더가 되는 것과 무력(힘)은 별개의 얘기다. 그 옛날 무관 장수들조차도 글 쓰는 문관들의 오랜 지배를 받았다.
남자와 여자의 행동 양식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을 때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보면 대부분 답이 나온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염색체의 차이, 생식 능력에서 유래되기 때문이다.
왜 사회적으로 남자는 리더가 많고, 여자는 그렇지 못할까에 대해서 유전자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문제가 간단해진다. 일명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후손의 여부' 이론이다. 다큐멘터리에 흔히 나오는 많은 포유류 동물 집단, 침팬지 같은 영장류 뿐만 아니라 고양잇과 집단 사회에서도 흔히 보이는 행동 양식이다.
여자 입장에서 자신이 직접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무조건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다. 여자의 난자는 절대로 몸 밖으로 나가지 않으며, 다른 여자들의 난자와 경쟁하지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대리모가 아니라면) 자신의 아이는 오직 자신만이 낳을 수 있고, 다른 여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절대로 낳을 수 없다.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후손'이 있을 리가 없다. 이럴 경우, 자연스레 '확실한' 자신의 아이를 가장 먼저 챙기는 개인주의가 발달하게 된다.
반면에 남자는 자신의 몸 밖으로 정자를 내보냄으로써 상대방 여자의 난자와 수정시킨다. 여기서 상대방 여자가 꼭 자신하고만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을 때, 즉 다른 남자들의 정자와 경쟁해야 할 때는 아이의 족보(?)도 확신할 수 없다. 실제로 많은 사례에서 부성불일치가 일어나게 되며, 이것은 꼭 인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정확한 통계를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해보면 이러한 부성불일치가 꼭 자신에게만 일어나라는 법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남자가 평생 관계를 가지는 여자가 몇 명이냐에 따라 어디선가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후손'이 마찬가지의 확률로 있을 수 있다. 즉, 사회 어딘가에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나가는 후손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와 함께 집단주의 역시 발전하게 된다. 이렇듯 집단주의를 이끌어가는 리더는 자연스레 남자의 몫이 된다.
남자들끼리 어떤 사회적 집단을 형성하면 자연스레 집단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리더로 추대가 된다. (물론 상황에 따라 쿠데타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듯 수직적인 남자 집단의 위계 특성은, 근본적으로 수평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여자 집단과 큰 차이를 보인다.
남자 집단에서 수직적 의사결정권을 가진 리더가 있다는 말은 지휘체계가 일원화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예를 들어, 보통 남자들끼리 식당에 가서 메뉴를 고르고 밥 먹고 나오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관찰해보자. (메뉴 고르는데 밍기적거리면 곧바로 친구들의 응징이 날아온다)
인류가 과거 원시 부족 체제에서 점점 중앙 집권화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로 '리더'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강력한 리더는 중앙화가 덜된 다른 부족, 다른 국가들의 재산과 인적 자원을 약탈함으로써 자신의 집단을 번성시킬 수 있었고, 이러한 중앙 집권적 독재 체제는 아직까지도 많은 국가들의 통치 이념이 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은 국가는 현재에도 세계에 얼마 되지 않는다.
즉, 리더=독재=남성중심=고효율 이라는 공식으로 사회가 자연선택이 되어 왔으며, 진화론에 따르면 이러한 특성을 가진 집단만 살아남게 된 셈이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게 강한 놈이다) 즉, 여태까지 남자가 리드하는 사회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적응하고 진화했다.
21세기가 시작된지도 꽤 흘렀다. 사실 진화론이라는 건 옳고 그름이 없다. 현재까지는 남자가 리드하는 세상이 생존에 유리했지만, 앞으로도 꼭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예를 들어, 꿀벌이나 하이에나 사회는 암컷이 리더로 잘 돌아간다)
최근에는 많은 여성들이 기존의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진취적이고 리더십을 보이는 자리에 오른 것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견고해 보이던 투명한 벽과, 투명한 천장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비록 이번 2022년 월드컵에 처음으로 여성 심판이 자리한 것이 연일 뉴스에 나오고 화제가 되었지만, 앞으로는 그런 빈도수가 더욱더 많아지면서 나중엔 아무도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고, 늘상 그래 왔듯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여성 리더를 다시 볼 수 있길 희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