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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Sep 19. 2022

치킨 한 마리에 3만원 주고 사 먹는 게 맞아?

치킨과 아파트의 공통점


코로나가 슬슬 풀려가는 날에 오랜만에 들어선 치킨집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일행들과 간신히 자리에 앉아서 양념치킨, 마늘치킨을 열심히 뜯고 맛보고 즐기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물론 가격은 여전히 비쌌다.


우리가 이렇게 좋아하는 치킨의 가격은 도대체 어떻게 무슨 원리로 정해지는 걸까. 쉬워 보이면서도 무척 어려운 질문이다. 최근에 마트치킨 논쟁이 아직까지 쉽게 꺼지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어발이라며 십여 년 전에 퇴출되었던 마트치킨이 다시 나타났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고, 상인들의 반발 또한 여전하다. 치킨 한 마리에 3만원은 받아야 한다는 당당한 소신을 밝힌 생산자도 있다. 3만원은 폭리다 vs 7천원은 시장 교란자다. 도대체 누가 맞는 걸까?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의하면 자유 시장경제에서는 누가 상품의 가격에 대해 뭐라고 강제하지 않아도 시장 참여자 모두에 의해 알아서 적정 가격이 정해진다고 한다. 그 원동력은 바로 개인의 적극적인 이익 추구이다.


"파는 사람은 비싸게 팔고 싶고, 사는 사람은 싸게 사고 싶다." 


파는 사람이 비싸게 팔고 싶은 이유는 간단하다. 싸게 팔면 일단 남는 게 없다. 많이 팔리겠지만, 팔수록 손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싸게 팔아야 이익이 올라간다. 마찬가지로 사는 사람은 싸게 사야 이익이다.


그래서 생산자(매도자)와 구매자(매수자)는 각자의 호가를 불러놓고 줄다리기를 한다. 주식 거래에서처럼 생산자의 호가(매도호가)는 위에, 구매자의 호가(매수호가)는 아래에 있고, 매도호가의 최하단과 매수호가의 최상단이 만나는 곳이 바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지점, 즉 시세이다.


만약에 생산자와 구매자의 호가 차이가 너무 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산자는 5만원에 팔고 싶고, 구매자는 5천원에 사 먹고 싶다면 거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주식시장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거래량이 적은 주식을 잘 살펴보면 호가 갭이 너무 커서 주문을 넣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이다. 어차피 주문 넣어놔도 다음날엔 자동으로 없어진다.


이렇게 자본주의 시장에서 거래가 잘 일어나지 않는 경우, 생산과 소비가 둔화되는 것을 경기침체라고 한다. 트레이더들은 이것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게 되고, 특히 이렇듯 호가 갭을 줄이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도 있다. 경매인이나 중재인, 증권시장에 스페셜리스트 같은 사람들이다.



반면에 활발하게 거래가 일어나는 상품의 시세는 계속해서 변한다. 치킨 사업이 돈이 되니깐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면 생산자가 늘어나고 가격 경쟁이 생기고, 가격이 내려간다. 그렇게 경쟁에서 패배한 생산자들은 하나 둘 시장에서 아웃되고, 다시 소수 생산자만 남게 되는데, 그들은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이윤 추구를 위해 또 가격을 올린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치킨 사업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뛰어들어 생산자가 늘어나고 가격 경쟁이 생기고 가격이 내려가고... 무한반복.


장기적으로 볼 때 상품 가격은 우상향 하는 것이 맞지만, 구간구간을 살펴보면 이런 식으로 가격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치킨도 예외일 수 없다. 덕분에 우리는 7천원짜리 치킨을 2022년에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자유 시장경제라고 해서 국가가 하는 일 없이 무한정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균형, 노사갈등, 여러 가지 불합리한 일들이 생기게 될 테니. 이런 관점에서 기존의 3만원 치킨 생산자들은 7천원 마트치킨이 시장을 교란하는 약탈자이며,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할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많은 사람들이 3만원 치킨을 비싸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상품의 가격은 사람들 개개인의 이익 추구, 즉 시장 참여자 전체의 '의지'로 인해 시세가 결정된다고 애덤스미스가 말했다. 치킨이 왜 만원이야? 왜 2만원이야? 왜 3만원이야? 라는 질문의 대답은 사실 모두 똑같다. 사람들이 '현재의 가치' 를 그렇게 정했으니깐. 매도호가와 매수호가의 줄다리기의 결과니깐.


S전자가 왜 5만5천원이야? 작년에는 8만원에 샀는데 왜 지금은 가격이 이따위야? 라는 질문의 대답도 사실 같다. 작년에 S전자의 가치는 8만원이었고, 지금의 가치는 5만5천원이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정했다. 8만원은 비싸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이렇듯 상품의 가치는 상품의 퀄리티와 더불어 사람들의 적극성, 의지에 달려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해서 변한다. 운이든 정책이든 뭐든, 갑자기 S전자에 어마어마한 호재가 생겨서 갑자기 가격이 10만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도 있긴 하다. 바로 화폐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보증하는 게 아니라, 국가에서 보증을 하기 때문에 거래의 수단인 지폐를 중앙은행에 갖고 가면 무조건 그에 비례한 양의 금(gold)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암호화폐는 시세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화폐가 아니다. 즉, 암호화폐와 치킨은 본질적인 속성이 같다. 배추도 같고, 마늘도 같고, 석유도 같고, 티셔츠도 같고, 자동차도 같다. 모두가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파트' 도 같다.





사람들이 치킨 3만원을 비싸다고 느끼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중간에서 '누군가' '지나치게' '많이' 남겨먹고 있다는 것이다. 치킨 생산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유통과정의 문제라고, 7천원 치킨 생산자는 그 유통과정에 드는 비용을 절감했기 때문에 같은 퀄리티의 치킨을 싸게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우리 모두는 유통과정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파트에 똑같이 적용이 된다. 누군가가 중간에서 너무 많이 남겨먹고 있다고, 어느 시점에선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금리상승으로 인한 이자부담이 큰 역할을 했다)


"아니, 이 콘크리트 덩어리를 10억을 빌려서 30년 동안 이자 내고 원금 갚아가며 사는 게 맞아?"


이 질문은 치킨에 대해 사람들이 품는 의문과 정확히 일치한다.


"치킨 한 마리에 3만원 주고 사 먹는 게 맞아?"



아파트 원가에 대해 정확한 정보는 알기 힘들지만, 업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에 의해 대략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지금은 원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다는 사실 까지도. 사람들이 아파트 가격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게 당연하다. 요즘은 급매, 급급매로도 아파트가 팔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치킨도 마찬가지이다. 생닭 가격은 포털 사이트에 검색만 해도 쉽게 알 수 있고, 조리, 운송, 인건비 등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2만원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도, 3만원 치킨은 자비가 없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품 가격이 떨어지면 가장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상품을 이미 구매한 사람들이다. (S전자를 8만원에 산 사람처럼)


만약에 연간 치킨 자유이용권이 있다고 해보자. 치킨이 3만원이라면 일 년에 100마리를 먹는다고 가정했을 때 자유이용권 시세는 300만원 언저리에서 형성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해서 중고 거래가 될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신규 생산자가 치킨 자유이용권을 70만원에 팔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기존에 300만원에 산 사람들은 어차피 먹는 치킨 양은 똑같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할까? 


전혀 아니다. 치킨 자유이용권은 판매가 되는 '상품' 이기 때문에 혹시 나중에 치킨이 물린다든지 알레르기가 생긴다든지 해서 팔아야 할 경우 70만원 시세에 맞춰 팔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도 안 사주니깐.


현재 아파트를 산 사람들이 화가 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도대체 OO 아파트 헐값에 팔아버린 사람 누구입니까?" OO 의 가치를 파괴하고, 이웃 재산 다 깎아먹는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욕하는 이유도 마음으로 공감이 된다. 자기는 8만원에 산 주식을 누군가 5만5천원에 팔아버린다면 당연히 원망스럽겠지.



하지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상품의 가치와 가격은 계속해서 변한다. 


마트치킨이 예전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고 치킨 시세가 오르듯이, 지금 7천원 치킨 가격이 영원하리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박보영 주연의 영화 '너의 결혼식' 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치킨도, 아파트도, 주식도 가치는 계속 변하고 시세도 계속 변한다. 그래서 치킨도, 아파트도, 주식도 타이밍이다. 


싸게 샀으면 행복함을 느끼면 되고, 비싸게 샀으면 자신이 그 가격에 샀던 '가치'를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봐 주길 기다리면 된다. 분명히 그 가격에 사게 된 이유와 믿음이 있을 것이다. (만약 믿음이 없다면 실수를 인정하고 빨리 털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결론.

치킨이 7천원일 때 많이 먹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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