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지(ponzi)사기란 기존투자자에게 줘야 하는 수익을 신규투자자의 투자원금으로 지급하는 투자사기법이다. 이렇듯 원리가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 괴기.
폰지사기는 그렇게 투자금 '돌려막기'를 하다가 적당한 수익이 나면 도망가게 되며, 이미 다양한 파생형태가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 코인 사태는 전형적인 폰지사기의 교과서에 실어도 될 정도이다.
폰지사기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 최우선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조건은 바로 '신규투자자의 유입'이다. 세상 모든 폰지사기는 신규유입자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세제도는 이러한 폰지사기가 어떤 식으로 '일반화' 되어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갭투자, 그러니깐 기본적으로 전세를 끼고 집을 산 '무늬만' 집주인들은 사실 가진 돈이 많지 않다. (애초에 그러니깐 전세를 끼고 산 것이다) 지금 세입자의 만기가 다가오면, 다음 세입자로부터 전세계약 체결을 하고 받은 돈을 이전 세입자에게 돌려준다. 카드 돌려막기와 비슷한 전세금 돌려막기 이다.
신규임차인의 전세금으로, 기존임차인의 전세금 채권을 상환한다.
이게 바로 폰지사기다. 지금의 전세제도는 신규전세수요가 없으면 원활히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 계약이 끝나면 세입자는 계약서에 적힌 대로 전세금을 돌려받으면 되는데, 꼭 (일부)집주인들은 다음 세입자를 구해오라고 한다. 그래야 돈을 돌려줄 수 있다면서.
깡통전세 사기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큰 목돈을 '돈 없는' 집주인에게 믿고 맡긴 사람들은 2년 후 보증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과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제도권에서 여러 가지 대책을 내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우리나라 수도권 거주 주택 전세 계약에 있어서 대부분 전세가율(매매값 대비 전셋값 비율)은 대략 80~9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물론 최근 들어 전셋값이 낮아져서 더 밑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2~3년 전에는 90% 이상, 심지어 100% 가 넘는 역전세 계약도 드물지 않았다. 호칭만 집주인이지 실상은 돈 한 푼 없는 '깡통'이다.
깡통전세 문제는 전세 계약이 체결되고 2년 뒤, 만기에 실체를 알게 된다. 워렌버핏이 말했듯이 '썰물이 빠지면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전세사기 비극은 2년 전, 최고가로 체결된 전셋값과 깡통 갭투자 현상, 즉 부동산 광풍으로부터 잉태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집값이 여기서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세입자의 전세금으로 빚을 내서 집을 구매한 빚투족의 '통큰 베팅'에서 비롯된 깡통이다.
만약에 그게 성공했다면 과감하고 공격적인 투자가 되었겠지만, 막상 2023년 현실은 원금을 다 날리고 전세 세입자의 채권을 갚아주지 못하는 상태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그들은 돌려줄 돈이 없다고 버티는 중이며, 애꿎은 세입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전세보증금을 갖고 있으면서 세입자가 나갈 때 돌려줘야지, 하는 집주인이 어디 있어요?"라는 말을 갭투자자들이 하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할 문장이다.
"금리가 높아서 전세 안 들어오려고 하는데요?"
"그건 모르겠고 어떻게든 새로 전세 구해와. 안 그러면 나 돈 못 줘."
"계약서에는 2년 후에 반환한다고 되어 있는데요?"
"시장 상황이 이래서..."
사실 전셋값이 계속해서 오르는 시기에는 적어도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다른 걱정이 늘어난다) 만약에 전 세입자에게 돌려줄 돈이 1억 5천이고, 신규 세입자가 2억을 갖고 오면, 전세금을 돌려주고도 5천이 남는다. 그 5천을 가지고 또 다른 곳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금리가 높아져서 전세대출이자가 월세랑 비슷해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차피 대출이자를 내나, 월세를 내나 금액이 비슷하다면 전세를 선택하는 바보는 없다. 보증금의 안정성이 월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금리가 높아지면 전세 수요는 줄어들고, 전셋값은 하락하게 된다.
세상 모든 자산이 그렇듯 전셋값도 무한정 상승만 할 수는 없다. 가격이 올라가면 언젠가는 꺾이게 되어있다. 그게 바로 순환이고 싸이클이니깐. 새로 전세를 들어올 사람들이 없으니 기존 전세 만기가 찾아온 집주인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경쟁적으로 전셋값을 낮춰서 신규 전세임차인을 모집하는 수밖에.
어찌어찌 새로 전세임차인을 들인다고 해도 2년 전에 체결한 전세 만기 반환금에 비해 한참이 부족하게 되고, 설령 집을 팔더라도 2년 전 전셋값보다 매매 금액이 낮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역전세) 이래라저래나 돈이 부족한 건 매한가지다.
투자는 실패했고, 돈은 없고, 손해는 또 보기 싫고, 그러면 그들이 하는 일은 결국 정해져 있다. "몰라, 나 돈 없어. 전세금 못 돌려줘." 드러누워 버리는 것이다. 이게 바로 깡통전세 사기다. 정말로 절망적이고, 끔찍한 이기주의의 표본이다.
전세제도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목돈을 빌린 것인데, 들어올 사람이 없다고 못 돌려준다, 갚을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한 황당한 이야기가 몇십 년째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게 더 황당한 이야기이다.
전세제도를 없애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바로 '주거사다리 이론' '월세 폭등' 이다. 그것 역시 황당한 이야기이다. 애초에 전세 제도가, 갭투자가 없었으면, 지금 전셋값보다 적은 돈으로 집을 살 수도 있었다. 사다리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전세 제도가 없어지면 월세가 폭등한다는 말은 시장에 월세 매물은 고정인데, 월세 수요만 늘어난다는 생각이다. 상식적으로 전세 제도가 없어지면 지금 전세 매물은 어디로 갈까? 하늘로 솟을까 땅으로 꺼질까? 부동산은 어디로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부동산'이다. (전세였던)매물은 매매로 가든 월세로 가든 어디로든 가게 되어있다.
주거사다리 이론과 월세 폭등은 그냥 핑계일 뿐, 실상은 지금처럼 남의 전세금 가지고 레버리지 일으켜서 계속 빚투(갭투자)하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집값 오르면 투자 성공, 집값 떨어지면 임차인이 다 뒤집어쓰면 되니깐.
개인적으로 이런 전세사기, 폰지사기는 철학의 부재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든 말든 나는 내 돈만 벌면 돼, 이러한 극단적 자본주의와 극단적 이기주의가 결합해서 괴물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그 괴물은 우리 사회에 한 가지 커다란 질문을 남겼다.
"전세, 과연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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