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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Jul 18. 2021

수동차 모는 인공지능 연구원


수동차를 몬다고 하면 인공지능 연구하는 사람이 그러면 되겠냐고, 친구들이 장난스럽게 놀릴 때가 있다. 그래서 나를 쉽게 놀릴 수 없는 업무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내 차를 잘 안 보여주려고 한다. 이 사람 좀 올드한데?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도 썩 유쾌하진 않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수동이 좋다.


아날로그 감성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3G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온 것도 상당히 오래 걸렸고 (사실 지금도 스마트폰으로는 카카오톡과 유튜브밖에 안 본다), 은행 업무도 여전히 공인인증서 (공동인증서) 를 쓴다. 헬스장에 잘 가지 않고 자연 속에서 숲 향기를 맡으며 러닝 하는 걸 좋아한다. 편한 전자책 대신에 여전히 종이책을 고수한다. 에어컨보다 선풍기가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동 자동차를 몬다.


'수동'과 '자동'이라는 단어가 서로 반대 개념이기 때문에 '수동 자동차'라는 말이 좀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흑백 컬러 텔레비전??) 물론 여기서 앞에 수동은 수동변속기를 의미한다. 엔진에서 바퀴로 이어지는 동력 전달을 사람이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수동변속기의 원리는 자전거와 완전히 같다.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동일하다) 따릉이를 빌리면 기어 단수를 1,2,3단까지 조절할 수 있는데, 1단은 힘이 (견인력이) 세지만 같은 거리를 달릴 때 페달을 많이 굴려야 한다. 3단은 힘이 약하지만 페달을 조금만 굴려도 자전거가 나가는 거리가 길다. 그래서 정지상태에서 출발하거나 언덕길을 올라갈 때는 1단을 쓰고, 운동 관성이 붙거나 내리막길에서는 3단을 쓴다. (2단은 딱 그 중간이다)


수동 자동차도 마찬가지이다. 차가 정지상태에서 관성을 이기고 앞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특히 언덕 출발) 높은 견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저단 기어를 쓴다. (비행기도 이륙할 때 기름 소모가 가장 많다) 하지만 일단 속도가 붙고 나면 운동 관성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해도 차는 계속 앞으로 간다. 그럴 때는 엑셀만 살살 밟아서 툭툭 앞으로 밀어주면 차는 계속 속도를 유지한다. 즉, 운동 상태의 차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리 많은 힘이 들지 않기 때문에 고단 기어를 쓰는 게 효율적이다.


쉽게 생각하면 위의 그림과 같다. 저단 기어에서는 엔진 (파란색 원) 이 한 바퀴 돌면 휠축 (녹색 원) 도 한 바퀴 돈다. 휠축이랑 휠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휠도 한 바퀴 돈다. 하지만 고단 기어에서는 엔진이 한 바퀴 돌면 (반경이 절반인) 휠축은 두 바퀴를 돈다. 즉, 같은 엔진 회전수에서 많은 거리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연료 소모는 엔진이 빨리 돌수록 많아지므로, 같은 거리를 달린다면 연비와 소음에는 고단 기어가 유리하다.  


하지만 고단 기어는 휠축의 반경이 작기 때문에 토크 (견인력) 도 작다. 우리가 문을 열 때 문 끝을 잡고 미는 것보다 축에 더 가까운 곳을 잡고 밀면 더 힘이 드는 이유이다. 자동차가 고단 기어 상태로 있을 때 엔진의 힘이 차를 계속 밀어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운동 관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특히 정지 상태에서는 고단 기어에서 출발할 수 없다. (문이 안 밀리는 이유와 같다)



수동 자동차의 장점을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급발진 (의심상황)으로부터 안전하다.

수동 자동차는 엔진의 동력을 얼마나 바퀴에 전달할 건지 100% 수동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급발진이 원리적으로 있을 수 없고, 애초에 수동 급발진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의되지 않는다. 최신 전자장치의 오류로 인해 가끔씩 급발진 사건이 뉴스에 나오지만, 수동차는 그것에 여전히 무풍지대이다. 만약에 엔진이 고장 나서 rpm 이 폭주하더라도 평소 제동 할 때처럼 클러치만 밟으면 동력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차가 나아가지 않는다.


또한 자동변속기는 운전 실수로 인해 제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차가 급 돌진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수동은 그것에도 마찬가지로 안전하다. 페달이 좌우로 넓게 분리되어 있고, 제동 할 때 클러치 중립을 주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서 엑셀을 밟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엑셀과 브레이크는 왼발에서 떨어진 정도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클러치-브레이크를 밟으면 두 다리가 다소곳이 모인다)


2. 재밌다. 

수동 자동차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불편함이라고 할 수 있다. 도로 흐름에 따라 기어를 바꿔줘야 하고, 언덕 출발을 자주 할 경우에 상당한 피로감이 온다. 그래서 운전을 직업으로 한다면 수동은 적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하루에 많아야 운전이 1~2시간이라면 큰 부담이 없는 편이다. 이럴 경우 수동의 불편함은 재미로 완전히 상쇄된다. 기어가 척척 들어가는 소리도 좋고 (특히 창문 열고 주차할 때), 저단 가속이랑 엑셀 반응이 빨라서 코너링 탈출할 때나, 뻥 뚫린 직진 도로를 주행할 때, 또는 가속도가 필요한 순간에 치고 나가는 재미가 있다. 동력 전달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차의 컨디션을 실시간으로 알 수도 있다.


3. 가오(?)를 잡을 수 있다.

누구나 특별한 사람이 되길 원한다. 남이 쉽게 할 수 없는 걸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알게 모를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수동은 그런 면에서 멋을 부리거나 자기만족을 취하기에 참 좋은 선택지이다. 옆자리에 누굴 태우고 운전을 할 때는 크게 변속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도 굳이 할 때가 있다. (옆에 앉은 사람은 아무 관심도 없다는 게 함정) 주유를 하러 가면 가끔 직원들이 수동이네요, 알아보기도 한다. 차 정말 좋아하시는 분이란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괜히 뿌듯해진다.


4. 연비가 좋고, 가격이 싸다. 수리비도 적게 든다.

수동은 변속기 구조가 너무 간단해서 가볍고, 저렴하다. 고장도 잘 안 날뿐더러, 고장이 나도 수리비가 매우 적다. 수동 미션 나갔다는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대신에 클러치 디스크가 나갈 때는 있지만 그건 어차피 소모품)


5. 풋 브레이크를 거의 쓰지 않는다.

환경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브레이크 패드 분진으로 인한 미세먼지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수동차는 속도를 줄일 때나 언덕을 내려올 때 저단으로 엔진브레이크를 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어서, 완전히 멈추는 게 아니면 풋 브레이크를 잘 쓰지 않는다. (엑셀에서 발만 떼어도 슬슬 멈춘다) 풋 브레이크를 잘 쓰지 않으니 급제동도 안 하게 되어 흐름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


6. 차를 쉽게 팔 수가 없다.

수동은 수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중고차 가격이 매우 낮다. 따라서 질린다고 쉽게 팔 수가 없어서 차에 대해 더욱 애정이 생기게 된다. (좋은 거 맞지?) 다른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온전한 나만의 차, 오랫동안 함께할 동반자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관리도 더 신경 쓰게 된다. 






내연기관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는 전기, 수소, 가스 등과 같은 연료를 쓰는 자동차로 전체적 변화가 있을 것이다. 차세대 자동차들은 변속기가 크게 필요치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단수가 적더라도 (2단이라도) 기존의 기계식 변속기는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있으면 어쨌든 도움은 되니깐)


많은 유럽 사람들, 그리고 우리나라에 나처럼 수동 마니아들은 페달이 두 개인 차는 사지 않는다. 애초에 고민도 하지 않는다. 진라면 순한맛이 여전히 판매되고 있듯이, 수동변속기도 단종되지 않고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안 나온다면? 나올 때까지 지금 차 타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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