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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Dec 31. 2021

수학 잘하는 남자들만 살아남았다


자취를 한지 어느덧 5년째, 집이란 것이 원래 수시로 유지 보수가 필요한 터라, 그동안 참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고 해결되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조명 나가는 건 기본이고, 녹슨 문고리 교체, 침대 프레임 자가 수리, 방범용 창틀 고정, 주방/화장실 곰팡이 처리까지. 사람을 부른 적은 거의 없다. (5년 동안 한 두 번 있나?) 대부분 셀프 정비를 하는데, 어느 날은 매뉴얼도 없는 변기 수리를 마치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거 고치는 걸 왜 알고 있는 거지?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는데.




보통 가장 흔히 듣는 클리셰로, 남자는 수학, 여자는 언어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확실히 체감이 되는 부분은, 친구들 중에 유학을 다녀오거나 혹은 다녀오지 않고 그냥 공부를 해도 여자애들은 외국어를 정말 빨리 배운다. 이건 팩트다.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인데, 필자는 처음에 걸그룹 트와이스의 사나가 한국인인 줄 알았다. (이름이 좀 특이하네...) 이에 반해 남자애들은 미국 다녀와도 똑같다. 아니, 오히려 그나마 한국말이 늘어서 온 것 같기도.


가끔은 능수능란하게 현란하게 말 잘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남자 하면 곧바로 말바보가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말을 참 못 한다. 아예 사람 많은 자리에 별로 가지도 않는다. (요즘 시국에 최적화된 사람)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해 경계를 푸는 것도 엄청나게 오래 걸려서, 몇 년째 경계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뭐, 그래도 사기는 한 번도 안 당해봤네.


한 가지 신기한 건, 남여의 수학/영어 성적 차이가 크냐? 그것도 아니다. 여러 통계 자료를 봐도 크게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사실 이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애초에 잘하지 못하는 부분은 시도조차 안 해서 그렇다. 남자들이 문과 대학에 잘 가지 않는 것처럼, 여자들이 공대에 진학하지 않는 것. 애초에 모집단 크기의 차이가 너무 커서, 평균을 내는 것이 의미가 없다. (참고로 필자의 전공은 남여 성비가 9대1 정도 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인류의 과거는, 어느 순간부터 남여의 역할이 나뉘었다는 것. 고양이 같은 육식동물이 사냥만 하고, 얼룩말 같은 초식동물이 풀만 뜯는 것에 반해, 인류는 한 가지에 몰빵하지 않고 다각도로 생존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럼 사냥은 누가 하고, 토마토는 누가 딸래? 이런 질문에서 인류의 생활양식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사내들은 매머드나 호랑이 사냥하러 나가고, 여인들은 밭에서 허리를 굽히며 작물 수확을 했다. 반대의 선택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사회였을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종종 사냥을 하던 여인의 유물이 나오면 뉴스에 대서특필 되는 것처럼. 사실, 남자 사냥꾼의 유물은 뉴스에 나오지도 않는다. 너무 당연해서 보도할 가치도 없으니깐. 그것이 모집단의 크기 차이.


한 가지 재미난 가설이 있는데, 남자가 오랜 시간 쇼핑을 괴로워하는 것이 사냥 본능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사냥은 본질적으로 위험의 한복판에 있는 거라 재빨리 타겟을 잡아서 무사히 집으로 복귀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 그래서 대부분 남자들은 백화점이나 아울렛에서 살 거만 사고 곧바로 나오며, 한 시간 넘게 머물면 공포증이 생긴다. 반면 작물을 수확하는 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여러 가지 종류를 맛볼 수 있어서 느긋하게 갖고 싶은 것을 쇼핑할 수 있다. (혹시 이 글을 보는 여성분들 중에서, 남자친구(남편)가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쇼핑을 동행하는 것은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는 겁니다.)



사냥은 수학이자 생존이다. 해가 어느 지점에 위치하면 몇 시 정도 되고, 주변 지형지물의 거리는 어느 정도 되고, 위험에 빠졌을 때 회피할 수 있는 경로, 사냥감과의 거리와 방향, 여기서 화살을 쏘면 대충 어느 정도까지 가겠다는 계산, 이 모든 게 입에서 입으로, 글에서 글로 이어져 내려왔을 것이다. 수학을 못하면 들어갈 용기를 가질 수 없고, 사냥에 실패하여 역공을 당하거나, 굶주려서 위험해질 수밖에. 결국 700만 년 동안, 수학 잘하는 남자들만 살아남았다.


참고로 여성분들께 데이트 상대 남자에 대한 설문을 했을 때, 최악의 남자로 '길 못 찾고 여기저기 헤매서 나를 오래 걷게 만드는 남자'가 항상 상위권에 있다. (여성분들은 길 찾기 잘하는 남자를 좋아하니, 이 글을 읽고 있는 예비 소개팅남 분들은 약속 장소 주변 지도를 달달 외워서 준비하세요.) 




인공지능의 학습의 특징은, 가장 최신의 경험의 가중치가 가장 많이 반영된다는 점에 있다. (optimizing 이라고 한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700만 년 동안 성역할이 갈라진 채 생존했지만, 앞으로의 생존법이 이와 같다고는 절대 볼 수 없다. 당장의 우리나라의 산업혁명에서도, 수많은 위험을 무릅쓴 여공들의 헌신적인 역할이 있었다. 4차 산업혁명 이후로는 경계가 무너지거나, 새롭게 개편될 수도 있다. 최신이면서 급격한 변화의 경험이 우리의 700만 년의 학습 결과를 상당 부분 바꿔 놓을 수 있다.


하지만, 몇 차 산업혁명이건, 남여 상관없이 공통적인 중요성이 있다. 바로 수학이다.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건 수학은 자신을 지켜줄 소중한 용기와 무기가 된다. 앞으로의 미래는 수학 잘하는 '사람' 들이 절대적 우위를 가질 것이다. 수학 시간에 확률과 통계를 제대로 배운 사람들은 이 시국에 클럽이나 헌팅포차에 가지 않고, 도박이나 희박한 가능성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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