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초 고창 빅버드레이스 이후
네 달 만에 다시 찾은 구시포.
마흔을 곧 앞둔 오랜 벗들과 오랜 약속을 지키러 모였다.
마음 급한 일들이 많지만 선약은 꼭 지키자는 신념으로
왕복 10시간의 운전과 당장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감을 견딘다.
지난 오월, 그쯤 이후 이런 저런 이유로
쉴틈 없는 주말, 야근이 이어졌다.
고향 마을에 같이 살던 외삼촌을 보내드리고
가족들, 친구들과의 오랜 약속의 날들을 지키는 노력
틈틈히 해야 할 일들의 실천.
그렇게 네 달이 바쁘게 지나갔다.
오랜만에 쉼의 시간이라 여기던 새보는 틈이 주어진다.
아마도 떠났겠지만
오월에 못본 뿔제비갈매기가 혹시나 있을까 싶어
두리번 두리번.
못본거겠지,
없다.
아이들과 친구들이 기대하는
노을이나 파도소리에 나는 이제 감흥이 없어졌음을 느끼며
나이든건지 무뎌진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나를 살피고 싶지만 그럴 겨를은 없다.
시인이 꿈이었는데 이럴 감성이었다면
안하길 잘했지.
그보다 가장들의 이야기가 와닿는다.
삶의 이야기.
잠깐 차에 짐을 가지러 간 그 사이
잠시 시간이 나 요즘 새롭게 시작한 풀벌레 소리를 녹음하려지만
챙겨야할 소리들이 함께 들려 녹음 버튼은 누르지도 못한다.
오랜 벗들과의 오랜만인 즐기고 싶지만
또 내일 귀경을 위한 책임감이 떠올라 몰래 잠을 청하고.
일곱시간 가까운 귀경길
참 많은 삶에 대한 이야기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아내와 나누다가
모자란 시간은 잠을 깨는 껌으로
버티고 견뎌 서울 집에 도착했다.
아내도 들어주느라 애썼겠지.
삶은 무엇일까?
먼 바다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저 너머 무엇인가를 찾는 목마름으로
그러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자는
때로는 견디자는 책임감으로
웃으며 해내는 시간 아닐까.
일년에 한번씩 이사를 겪은 딸이
잠자는 집이 바뀔때마다
‘우리 여기 살꺼야?’ 하는 말에
언제쯤 책임감 있는 가장이 될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