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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Green Feb 14. 2020

나이란 무기력해진 열정이 아닌 넉넉한 여유다.

가을날

아침에 눈을 뜨니 어두웠다. 가을이 성큼 나 곁에

다가와 있음이 살갗으로 느껴졌다. 또한 일찍 저물 해는

또 다는 계절의 그림자를 실감케 할 것이다.

계절은 가고 또 온다. 돌다 지쳐버린 것은

계절을 타고 흘러온 세월이 아닌 세월을 타고

살아온 나 자신의 무기력해진 삶에 대한 열정이다.

한 여름 흘린 땀을 씻고 적당한 나무 그늘에 앉아

삶을 관조하고 싶은 가을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가을을 핑계 삼은 의욕을 상실한 내 삶에 대한 변명일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어느덧 나도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인생의 어느 길목까지 온 것일까.

때때로 쉰다는 것은 사람의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어줌이 확실하지만 만만치 않은 생존은

가끔 작은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곤 한다.

내가 쉬고 싶다는 것은

가을의 깊은 나락으로 빠지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발전을 확신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결여된 자신감임이 분명하다.

떨어지는 낙엽은 이제 더 이상 피상적인 서정이 아닌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나의 인생이

분명 어딘 가로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시곗바늘이다.

이제껏 그래 왔듯

또 그렇게 바쁘게 살다가

나의 또 하나의 가을은 그럭저럭 지나가겠지만

그래도 이번 가을에는

정겨운 책들 속에 있는 아름다운 언어들과

풀벌레 소리와 스치는 가을바람, 그리고 따뜻한 눈빛들을

할 수만 있다면 고이 간직하고 싶은 바람이다.

그러면서

반가운 사람을 기다리는 듯한 설렘으로

새로운 시간을 맞고 싶다.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사람은 결코 늙지 않으리라.

쉼이 없다고 푸념하지도 않을 것이고 주저앉은 열정을

나이 탓으로 돌리지도 않을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눈가에 자리 잡은 주름살이나 성겨지는 머리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닌

견뎌온 시간만큼 넉넉해진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피 끓는 젊음 대신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깊어 가는 가을날

나의 지금이 청춘을 잃어버린 가을이라 생각지 말자

원숙한 시야와 함께 할 수 있는 내 영혼의 평화를

마음껏 새로움을 추구하는 열정으로 끊임없이 시도하고 또 소모해 보자.  


200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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