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orest Green
Feb 15. 2020
결혼 후 처음으로 작은 정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 얼마 만에 느끼는 향기인가.
자연이 나에게 기를 불어넣는 것인지
매일매일의 아침 기상과
지친 몸이 눕는 저녁 시간이
예전보다 행복하다.
아련한 어린 시절의 기억.
그 바람 냄새와 햇빛의 촉감과
멋모를 막연한 기대의 초록빛 꿈들.
이사 후 난, 나무와 꽃과 하늘과 바람 그리고
발끝에 밟히는 흙으로부터 이것들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편한 만큼 시든 내 영혼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짐짝처럼 늘어진 치치고 부담스러운 육체와
패스트 라이프에 길들여진
게으른 습성만 남아있을 뿐
나 자신을 위해 심은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마당 쓸기, 화단에 물 주기, 떨어진 꽃잎과 낙엽 줍기, 거름주기 등
작은 마당을 위한 내 양 손에 덤처럼 얹힌 적지 않은 일들은
시든 내 영혼에 물도 주고 더불어
늘어진 육체의 태엽도 조여주리라 기대한다.
때때로 스산한 바람 불면
도시의 아파트에서 누렸던 것들이 아쉽고
출퇴근 거리의 교통체증으로
남편의 늦은 귀가에 지친 몸은
더 애가 타기도 하겠지만
뒤뜰에 달려있는 사과, 복숭아, 살구 등의 과일과
각각이 슬프거나 기쁜 전설을 갖고 있을
이름 모를 꽃들 그리고
바람 쫒아 산책할 수 있는 근처의 산책길은
얼얼한 파스 향으로 이 같은 모든 통증들을
치료해 줄 것만 같다.
또한, 푸른 향기와 풀벌레 소리로
사랑이 주는 고독의 달콤한 속박도 이해하고
변화하는 우주의 섭리를 꿰뚫은
어제와 다른 내일을 사는
원숙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섣부른 기대가 출렁인다 .
작은 정원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이
나에게 속삭인다.
감당 못할 이슬비를 침처럼 삼켜며
가슴의 멍울로 달래야 될 때마다
겨울을 견뎌낸 앙상한 가지에서
돋아난 눈부신 복사꽃을 보듯.
빛나는 눈으로 하늘을 읽고,
겸손한 마음으로 땅을 느끼라고.
그렇게 미소 한 조각 편하게 띄운,
착한 마음으로 살라고.
행복이란
군살 하나 없는 날씬한 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붙은 세월의 둔중한 살집을 갖고도
어디서, 어떻게, 무엇이 아닌
감사하며 사는 마음의 태도에 있다고.
2005-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