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다.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2010년도 여수세계박람회가 개최되고
버스커 버스커(장범준)의 여수밤바다 노래가 흥행하면서
여수는 관광명소로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되었다.
내가 살았던 '돌산'이라는 곳은
갓김치가 유명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다.
하지만 현재 '돌산'은
숙박시설과 카페가 생기면서 도시로 변해버렸다.
네이버 위성사진으로 보았을 때
초록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온통 콘크리트로 보일 때의 기분이란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돌산에서 살 때
초등학교 한 학년에 한 개의 반밖에 없었으며
반 학생수도 20명 남짓이었다.
2학년, 3학년, 4학년이 되어도
학년만 올라갈 뿐 반친구들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사를 갔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너무나 싫었고
전학을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내가 고집을 부린다고 전학을 안 갈 수는 없었다.
5학년 1학기가 시작될 무렵 선생님이 나를 불러내어
작별인사를 시켰다.
4년 동안 같은 시간을 보내온 몇몇 시골친구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전학 간 학교는 같은 여수였으나
한 학년에 팔 반까지 있는 큰 학교였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고 곧잘 했던 터라
친구들과 금세 친해졌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장난기가 많았고
무언가를 할 때 친구들을 리드하는 경향이 있었다.
시골학교에서의 내 모습을
도시학교에서도 풍기며
친구들을 리드하려 하는데
한 남학생이 나보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전학 온 애가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좀 조용히 해."
이 말은 들은 나는 적극적인 아이에서
소극적인 아이로 변하게 되었다.
눈치를 보게 되었다.
장난기가 없어진 건 아니었으나
그 이후로 친구들을 더 이상 리드하지 않았다.
당시 그 친구가 말한 의도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으나
내가 성장하면서 변하게 된 계기 중 하나이다.
그리고 시골에 있을 때는 부모님끼리 서로 알고
친구집에 놀러 가서 작은 밥상에 같이 밥도 먹고 하였다.
그런데 도시로 와서 보니
부자인 애들이 주로 학생들을 리드했고
전보다 부모님들과의 교류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친구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가끔 있었으나
정을 크게 느끼진 못했다.
시골에 살 때 비가 오는 날이면
흙에 비가 젖어 나던 흙내음이 잊히지 않는다.
나무가 울창하여 비가 와도 아래는 젖지 않아
요리조리 비를 피해 가며 집으로 달려갔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었으나
현재는 사람들이 북적한 도시가 되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시골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