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맛 같은 휴무일.
다디단 게 좋은 거라면 세상사람들은 벌통을 안고 살았을 거다. 고통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다. 슬픔이 상존한다 해도 인간에게 고통이나 슬픔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행복한 순간은 있어도 행복한 결말은 없다. 인간은 완벽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신적인 존재에 대한 희구의 발로일지도 모르겠으나, 유일신 여호와나 해탈의 존재인 부처는 인간과는 떨어진 거리에 있다. 질투하고 사랑하는 그리스 로마의 신들이 외려 인간과 가깝다. 지바 마사야(千葉雅也)는 「공부의 철학」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절대 '최후의 공부'를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근거'를 추구하지 말라는 소리다. 이것을 '궁극의 자아를 찾기 위한 공부는 그만두라'는 말로 바꿔도 좋다. 자신을 진정한 모습으로 만들어줄 최고의 공부 따위는, 없다."고 말했다. 절대적인 가치로 삶 위에 군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신이나 예술조차도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없다. 인간은 인식에 관한 한 자의적이기 때문에 사고의 확장은 인식의 확장과 함께 오류도 동반한다. 그것을 예방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책읽기다. 아이작 뉴턴은 '독서란 거인의 어깨에 앉아 세상을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선대의 작가가 남긴 글을 읽는다는 건 시대를 초월해 그들의 삶과 사상을 톺아보는 행위다. 과거로부터의 흔적을 쓰다듬지 않고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독서로부터 얻는 인식의 확장은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맞는 충격이며 잠든 자아를 흔들어 깨우는 행위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모든 지식과 정보를 한꺼번에 저장할 수 없다. 정보의 홍수는 물살을 골라 제 물길을 타는 지혜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거센 정보의 물살에 휩쓸려 허우적대다 익사하고 만다.
일찍 깨는 버릇은 몸이 무거워도 여전하다. 라디오를 켜고 커피물을 올린다. 어제 말다툼으로 안방에서 자는 아내는 여적지 꿈속이다. 안쳐논 밥통의 스위치를 눌렀다. 빗소리는 낡은 스크린처럼 잘게 부서지며 텅빈 집안을 채운다 아침부터 굵은 빗줄기가 노드리듯 긋는다. 창문에서 내려다보니 아파트 텃밭의 옥수수가 따닥대며 빗물을 튀겨내고 있다. 우산을 들고 학교가는 아이, 트럭에서 자재를 내리는 지게차, 비좁은 골목의 차를 피해 일터로 가는 아줌마. 쉬는 날 빗속의 아침은 소음으로 버무려져 수선스럽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미국이 삼백만을 넘었고 브라질 러시아 순으로 확산 중이다. 처음 발원지인 중국은 순위에서 한참 밀려났고 K방역으로 다른 나라의 모범 사례인 우리 나라는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소규모 확진이 끊이지 않는다. 변종 바이러스의 소멸과 확산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회적 약자인 빈곤 계층과 일용직 노동자, 알바 생활자 등의 경제적 궁핍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기업 리조트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트럭을 모는 충청도 사는 동생은 오월에만 삼 일 일했단다. 예상대로 리조트를 관리하는 인력의 식품 재료다. 동생은 전직을 고민하는 중이다. 재난지원금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소고기를 먼저 사먹었다. 평소 비싼 소고기를 자주 먹지 못하는 서민에겐 공돈처럼 얻은 돈을 떼어 몸보신이라도 할 요량이었을 게다. 우리 집도 장모 몫으로 나온 걸로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치매 초기인 장모는 텔레비전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외국에 나간 딸은 일개월 이상 건강보험료 체불 조항에 들어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오도가도 못하고 낯선 땅에 머물러 있는 딸에게 위로차 용돈을 보내주었다. 청바지를 사고 식료품 등을 사는 동안 재난지원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내는 꾸준히 일을 하고 나도 산불감시원을 하던 참이라 재난 지원금이 없어도 생활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공평하게 나눠주는 공돈을 마다할 이가 있겠는가. 미안한 마음으로 감사히 썼다. 인간은 가난에 저항하기보다 불공정에 반발하는 존재다. 부자에게도 재난 지원금을 골고루 주고 세금으로 걷으면 된다. 세금의 공평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원리다. 많이 번 사람은 번만큼 내면 되는데 납세를 회피하거나 장부를 속이는 행위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다.
자가 격리 7 일째.
멀리 사는 지인에게서 축하 문자가 왔다. 딸의 격리 사실을 아는 지인들의 관심을 받고 우리 가족은 잘 버티는 중이다. 군청과 질대본에서는 꾸준히 거리두기와 소모임 자제, 손 소독 철저의 예방수칙을 문자로 퍼나른다. 야외 운동, 종교 행사, 다중 밀집 시설 이용 시 이 미터 이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손 소독은 필수다. 올해 은어축제는 취소와 연기를 밀당 중이다. 이 월초 섬진강 양식장에서 부화한 은어 치어를 사다 오 개월간 기르면 축제용 은어가 된다. 회유성 어종인 은어를 수조 안에서 인공부화한 육봉 은어다. 코로나 이후 축제로 먹고사는 축제꾼들은 죽을 맛이다. 연중 크고 작은 축제가 끊이지 않는 마쓰리(祭り)의 나라 일본도 올림픽이 취소된 이후 어려운 일상이다. 각종 축제가 사라지고 온라인 예배로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신도들. 코로나가 몰고온 달라진 풍속은 삶의 방식을 뒤바꿀 태세다. 어제는 휴무고 오늘은 야간조다. 주말 휴양림 숙소는 만실이다. 밤 아홉 시 반에 출근해서 다음날 여섯 시 반 퇴근이다. 해외여행 못 가는 통에 휴가와 피서철이 가까워지면서 전국의 휴양림이 예약 만석 상태다. 도시와 떨어진 숙소에서 숲의 기운을 마시며 휴식을 즐기는 것도 적당한 피서법이리라.
간밤의 소나기술로 종일 부대끼는 속을 붙안고 지냈다.
점심 때가 지나서 콩나물 넣은 라면으로 해장했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술과 노래로 질탕하게 놀았다. 못 본 사이 모친이 돌아가셨고 자식이 결혼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람들은 염소를 몰고 장에 가고 결혼식 피로연을 치르며 강으로 낚시를 떠나고 사랑하고 이별하리라. 사시키 아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380만 년의 영원 속에서 자신의 삶은 아주 작은 좁쌀 같은 것이어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말하겠습니다. 아니, 그것은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면 400만 년이라는 인류의 삶조차 우주의 방대한 생성 안에서는 무의미해져버립니다.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한순간의 섬광이라고 해도 불꽃처럼 덧없는 한여름밤의 꿈이었다는 게 됩니다. 하지만 ㅡ 역시 이럴 때는 니체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고뇌하면서 말한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자신의 인생에 의미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고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뭔가의 원인이고 행위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사고의 오류에서 오는 거짓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뭔가를 하고 그것이 의미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행해지는 것'이다. "당신은 행해진다! 어떤 때라도!"라고 노래하듯이 그는 말합니다. 즉 우리는 우주의 거대한 생성의 '일부이고' 그 '의미'인 것입니다. 이 방대한 우주의 생성 안에서 이리하여 우리가 말을 얻을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을 자아내가는 것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미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의미입니다." 그렇다. 행해지는 존재인 인간의 하루는 의미와 무의미를 덧칠하며 저문다. 출근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