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뜨겁다. 추석이 지나도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뜨겁다. 과일과 알곡이 익기 좋은 기온과 습도다. 모든 익은 것은 죽음을 욕망한다는 니체의 아포리즘을 한낮의 습하고 후텁한 햇살 아래 실감한다. 익어 떨어지는 결실이 지나면 들판은 죽음의 색깔로 변한다.
송이 철이 왔다. 얼마 후면 소읍이 들썩하도록 송이축제가 열린다. 불볕더위가 기승이던 한여름의 은어축제는 탈출한 은어떼를 모는 투망질에 쫓겨 과거가 되었다. 일 년에 두 차례. 은어와 송이를 주제로 천변에서 열리는 축제는 주민들의 구경거리고 놀이다. 읍을 관통하는 내성천을 끼고 펑펑 폭죽을 터뜨리며 신명 나게 벌어진다. 상인과 구경꾼, 주민이 밤낮으로 왁자하다.
거개의 하천이 그렇지만 홍수예방과 정비를 위해 바닥을 긁어내고 석축을 쌓았다. 오염 방지를 위해 분류하수관을 설치하고 분뇨처리장을 돌린다. 논밭에 퇴비와 비료를 해마다 쏟아붓고 농사를 짓는다. 농약과 제초제도 필수다. 골마다 갈래천은 이삼 년 주기로 굴삭기가 바닥을 긁어낸다. 산에서 쓸려온 모래와 흙을 퍼내고 버드나무와 수생식물을 베고 뿌리째 걷어낸다. 물기와 친한 수목과 들풀은 없애고 없애도 끈질기게 다시 돋아난다. 실개천이 없어진 땅에도 버드나무는 싹을 틔운다. 나무가 물길의 흔적을 더듬어 복원한다. 자연의 복원 본능이다. 물새는 쓸려온 모래 위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물가의 나무나 갈대숲에 물고기가 숨어든다. 드물게 수달과 너구리가 갈대를 엄폐물로 삼아 살아간다. 하천 정비는 생태계를 긁어내는 거친 손길이다.
축제 전후로 대대적인 하천 정비가 이루어진다. 나무가 뽑히고 물풀이 사라진다. 벗겨낸 물 바닥에서 백로 몇 마리 먹이를 노리느라 서성댄다. 벌겋게 드러난 개울의 맨살은 봄이 되면 파릇하게 덮이지만 축제를 위해 다시 벗겨낸다. 하천을 생명 품은 물길로 관리하는 방법은 없을까. 축제를 위해 주민의 놀이를 위해 물길은 참혹한 모습으로 찢기고 드러난다. 바닥이 드러난 내성천을 보면 인간의 시커먼 내장과 만족을 모르는 욕심 주머니를 보는 것 같다.
명절 연휴 때 동양 최대 규모라는 수목원에 가서 크게 실망했다. 뱃바닥 뒤집고 널브러진 물길에 다시 낙망 천만이다. 오륙십 년 전에 조림된 낙엽송 숲에 외래의 화초를 들여다 심은 수목원은 넓은 꽃밭 같은 느낌이었다. 차라리 지하 육십 미터 깊이에 지은 종자 보관소의 기능이 합당하리란 생각이다. 관광객은 수목원에 가둔 호랑이를 보려고 언덕을 올라간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야생성이 사라진 호랑이는 초점 잃은 시선으로 울 밖의 구경꾼을 멀거니 바라본다. 황금 들판에서 떼로 몰려다니던 참새를 보기 힘든 건 농약 때문이다. 질퍽한 논바닥에서 자라는 수서곤충과 벌레가 사라지니 먹이가 부족한 때문이다. 예부터 농부는 제비를 귀히 여기고 뱀은 잡아 죽였다. 제비는 봄을 알리고 벌레를 잡아먹지 알곡은 먹지 않는다. 또한 개구리는 수서곤충과 날벌레를 잡아먹는데 반해 뱀은 개구리를 통째로 삼키기 때문에 농부들은 뱀을 싫어했다.
제프리 힐은 「자연 자본」에서 '문명의 발전에서 같이 나누고 지켜야 할 환경이라는 공유가치는 협애한 경제이익 앞에 무너지기 일쑤다. 이런 경제이익이 조직화되면 경제권력이 되고, 수십 년 동안 힘들게 싸워서 이룬 정책들은 그런 경제권력의 손쉬운 희생양이 된다. 결국 경제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환경이라는 공유자산을 지키기 힘들어진다.'라고 했다. 인간과 자연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자본으로서의 자연'을 인식할 때 가능한 일이다. 댐을 부수고 본래의 물길을 되찾은 독일의 라인강이나 울산의 태화강, 서울의 양재천 같은 생태 복원의 노력은 여기 시골에서는 요원한 것일까. 인간은 무엇이든 만들어 상품화하는데 혈안이다. 막힌 물길에 사라진 은어를 양식장에서 키워 축제를 연다. 살찐 은어가 사나운 손길을 피해 뒤뚱대며 달아난다. 읍내의 하나뿐인 패스트푸드 점은 축제 때 불티가 난다. 도시의 아이들이 햄버거를 물고 다리를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