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文 (245)
나흘째 풀 베니 중앙로 및 눈에 띄는 곳은 얼추 깨끗해졌다. 흐린 날이나 햇볕이 쨍쨍한 날이나 땀에 푹푹 젖기는 마찬가지. 붕붕 돌아가는 날에 댕겅댕겅 나가떨어지는 풀 보니 나의 예초기 경력이 이십 년이 된 걸 실감한다. 낭자한 풀들의 선혈이 비릿하게 풍긴다. 시골 생활하면서부터 예초기를 멨으니 어지간한 세월이다. 강원도서 수목 관리할 때는 여름철이면 예초기를 등에 붙이고 살다시피 했다. 전체 이 만여 평의 관리구역 중 잔디밭은 잔디 기계로 깎고 나머지 소나무 식재지나 공터는 예초기로 베었다. 거기서 십오 년을 살았다.
풀은 인간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초제 세례를 당하거나 낫질을 당한다. 풀의 자원 효용성은 이제 와서 새삼 연구 대상이 되었지만 풀씨가 날아와 농작지에서 둥지를 틀기란 녹록잖다. 풀과 작물의 탄소 가용 능력은 풀 쪽이 강해서 같은 땅에 자라도 풀이 월등하게 잘 자란다. 요즘 들어 모종을 키워 밭에 심는 농법이 일반화된 것도 풀보다 앞서 달리기 위함이다. 잡초라 부르는 풀의 유용성은 토양침식 방지, 유전자원의 활용, 토양의 습도 유지, 천연 염색, 동물의 먹이, 약용 식물의 이용 등 무한하다. 지구에 풀이 없다면 기상재해로부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풀은 잡초로 불리며 어느 때부턴가 제거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식품으로 이용하는 콩이나 쌀, 채소는 야생으로부터 인간의 마을로 찾아온 것이다. 종자 개량과 유전자 조작 등으로 인간에 맞게 대량 생산과 품종 개발이 이어졌다. 그것이 결국 인간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간과된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유기농을 한다고 해도 농약은 바람을 타고 날아오며 유전자가 조작된 작물의 꽃가루도 바람을 타고 전반되니 국지적으로 제한된 장소가 아니면 그마저도 녹록지 않다.
경작지에 스며든 풀이라는 불청객을 쫓기 위해 인간은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숲을 태워 화전을 일구고 제초제를 뿌리고 농사를 시작한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논이나 밭둑의 손바닥만 한 빈 땅이라도 함부로 놀리지 않았다. 콩을 심거나 들깨를 심어 기름을 짰다. 대우 판다 거나 부룩 심는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런 수고를 하지 않고 작물을 심기 전에 제초제를 뿌려 아예 풀은 자리잡기 어렵게 만든다. 꼴을 베어 마소에게 먹이거나 퇴비를 만드는 전통의 농법이 사라지고 화학비료와 사료가 나오면서 시골의 들판엔 꼴 풀이 지천으로 치렁하게 자란다. 아카시나무를 베어 한겨울 군불 땔 요량으로 뒤란에 줄 맞춰 차곡차곡 쌓아놓는 풍경은 옛 것이 되었다.
잔디밭에 올라오는 잡초는 손으로 뽑거나 제초제를 쓰는데, 식물의 생장점의 위치를 이용하여 광엽 잡초만 죽이는 선택형 제초제가 발달했다. 또한 광합성을 억제하여 식물의 숨통을 끊는 파라쿼트 디클로라이드 계통의 제초제는 비선택성으로 모든 식물을 죽인다. 월남전쟁 때 밀림에 숨은 월맹군을 찾아내기 위해 미군이 공중에서 퍼부은 오렌지 에이전트는 악명 높은 파라쿼트 계통의 그라목손이다. 고엽제를 덮어쓴 밀림은 원자폭탄이 쓸고 간 히로시마 시내처럼 앙상한 나무만 남은 처참한 몰골이었다. 고엽제를 살포한 작전지역에 한국군을 투입해 베트콩을 섬멸했으나, 고향으로 돌아온 파월장병의 몸에는 고엽제의 후유증이 나타났다. 제초제 중 맹독성인 글리포세이트 계통의 근사미(상품명)는 식물의 뿌리에 침투해 생장점을 죽이는 기능이다. 그라목손이 잎만 죽여 뿌리에서 새 움이 돋아나는 반면, 근사미는 뿌리째 죽여 식물의 숨통을 끊는다. 주로 등칡이나 아카시나무를 벤 자리에 바른다. 이삼 년 근사미 작업을 한 곳의 등칡은 살아남지 못한다. 제초제는 세분화되어 한참 생육기인 콩밭에 뿌려도 잡초만 죽는 농약도 개발되었다. 예전에는 뜨물 약이라고 해서 분말형 살충제가 인기였다. 그런데 모스피란(상품명)은 적용 해충의 범위가 넓어 익충까지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자 해독이 어려운 촌로들에게 한 번 치면 모든 벌레가 해결되는 농약은 그만이었다. 요즘은 생태를 고려해 해당 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만 구제하는 농약이 시판된다. 그만큼 농사 비용은 올라간다. 일체의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풀과 벌레가 공생하는 '풍년 농법'은 생산성과 효율에 밀려 실천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때 세상을 비관한 사람들이 제초제를 마시고 죽는 사태가 빈발하자 외국계 농약회사 대표가 사과하는 일까지 있었다. 결국 농약회사에서 큰 개 이상의 체중이 나가는 동물이 농약을 마시면 토하게 하는 성분을 섞어 만들기도 했다. 자신의 목숨을 끊는 건 개인의 의지겠으나 농약의 엉뚱한 사용으로 세상을 버린다는 건 어쨌든 난망한 일이겠다.
땀이 많은 체질이라 풀을 벨 때는 수건을 머리에 쓴다. 그래도 안경알로 뚝뚝 육수처럼 떨어지는 땀을 주체하지 못해 급기야는 안경을 벗어던진다. 예초작업은 위험한 작업 종이다.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예리한 칼날에 돌이나 나무가 튀어 몸에 맞을 수 있다. 영림단 시절 조림지에서 예초작업하던 동료가 부러진 잡목에 눈을 맞아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난 바위의 충격에 예초기 날이 떨어져 나갔는데 찾아보니 십 미터 떨어진 나무둥치에 박혀 있었다. 날카로운 쇠붙이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면 아찔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작업 중 날에 걸린 녹슨 철사가 안전화를 뚫고 발등에 꽂혔다. 어이쿠! 하는 외마디와 함께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팀장이 읍내 병원에 데려가 파상풍 주사를 맞았지만 발등은 밤새도록 통증과 함께 부어올랐다. 결국 타지의 병원에서 일주일만에 퇴원했다. 일반인도 성묘 때 벌초하는 일이 잦아 줄로 된 날이나 안전하게 고안된 삼각으로 접히는 날이 만들어져 나오기도 한다. 아무튼 한여름의 예초작업은 돌과 나무, 벌의 공격을 받기 십상이다. 구급약과 에프킬라 등 살충제를 휴대하고 작업하는 게 낫다.
숙소 주변 잔디밭 등은 손님이 뜸한 평일에 베기로 하고 안내실 앞까지 깔끔하게 풀을 베었다. 상의는 물론이고 조끼마저 땀국에 젖었다. 고단하지만 사우나에서 땀을 뺀 것처럼 개운한 느낌이다. 당뇨약 처방을 받으러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찾는데 지난달과 이번 달에 당 수치가 평소의 반으로 줄었다. 안경 너머로 눈을 크게 굴리며 의사는 놀람과 반가움을 드러냈다. 새로운 일거리를 산에서 찾았다고 했다. 아내는 부쩍 낮아진 당 수치에 반가워하며 일터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연말까지는 버티란다. 분위기는 미꾸리 한두 마리 때문이다. 어디인들 흙탕 휘젓는 인사 없겠냐만 추어탕에도 넣지 못하는 미꾸라지는 두들겨 내던지는 게 낫다. 모두를 힘들게 하면서 멀쩡하게 사는 족속은 역사 이래 차고 넘친다. 능참봉도 벼슬이라고 유세 떠는 청맹과니보다 땀 씻고 올려다보는 파란 하늘이 호방하게 느껴진다. 올해 장마는 참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