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감시원 9

by 소인



산에 핀 진달래는 분홍 물든 습자지를 구겨놓은 것 같다. 분홍 색지를 뜯어서 여기저기 던져놓은 것처럼 진달래가 피었다. 참꽃인 진달래는 개꽃인 철쭉과 구별하지만 먼저 피고 나중에 핀다는 차이만 있을 뿐 누렇게 생기를 잃은 요즘 봄의 전령이다. 물가에 피는 수달래, 연달래는 참꽃과 철쭉을 아울러 부르는 방언이다.

진달래는 두견(杜鵑)ㆍ두견화(杜鵑花)ㆍ산척촉(山躑蠋) 등으로 부르는데, 철쭉의 한자어는 산객(山客)이다. 아직 초록 불붙지 않은 삭막한 산등 오르다 이마에 땀 맺힐 무렵 걸음 멈추고 돌아본 시선에 꽂히는 하얀 연분홍의 철쭉꽃. 오래전부터 여기 있었소 하고 봐 달라는 듯 고즈넉한 모습으로 핀 꽃. 산객 산 나그네. 얼마나 멋스러운 이름인가. 반면 진달래는 삭막한 갈색으로 덮인 초봄의 산야에 진한 분홍꽃이 농염 그 자체다. 여인의 치마 색깔 닮은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산기슭에 피었다. 봄산은 진달래와 철쭉의 영토다.

참꽃을 먹으며 자랐다. 찰떡에 꽃누름을 해 먹었다. 이즈음의 산야초와 꽃은 믿을 게 못 된다. 대기오염 탓이다. 산성비 운운하던 시절은 애교로 봐줄 만하다. 요즘엔 황사와 미세먼지가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니 보송하게 말린 빨래조차 탁탁 털어내도 맨살에 닿는 게 께름칙하다. 대륙의 바람과 공업지대의 부산물을 반도의 작은 나라가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꼴이다. 경제 대국을 넘보고 달려오는 대륙의 백만 대군의 기세를 무슨 수로 되돌린단 말인가.

지구의 나이와 변화 과정을 가늠하면 현재의 지구온난화나 해수면 상승은 걱정이다. 자원의 남획과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도 문제다. 태평양 한가운데엔 해류에 밀려 만들어진 쓰레기가 한반도 면적만큼이나 되잖은가. 인류의 미래, 지구의 미래는 화석연료 사용과 쓰레기가 좌우한다고 하면 딱 들어맞을 얘기다.

후투티 한 마리가 사과나무 가지에 앉아 머리를 쫑긋거린다. 늦은 오후의 봄볕이 가지에 걸려 비닐처럼 반짝인다. 미세먼지가 섞인 바람이지만 따사롭다. 남 노인과 토방에 앉아 후투티를 바라보았다. 후투티는 머리 깃털을 바짝 세우면 멋지고 우스꽝스럽다. 추장의 장식 모자를 닮은 깃털은 공작의 수컷처럼 치명적인 유혹이다. 몸집에 비해 큰 날개를 휘저으며 나무 사이를 날 때면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빙빙 도는 것 같다. 긴 주둥이로 땅을 파고 지렁이와 땅강아지를 잡는다. 후투티는 동남아시아, 호주에서 날아오는 여름 철새다. 본능적으로 입력된 회로를 몸으로 읽고 항로를 탄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어미의 어미가 날았던 공간을 날아간다. 후투티의 기억에는 한반도의 산과 강, 숲과 나무와 부드런 땅이 각인되어 있다. 짝을 짓고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울 톳나무 둥치의 빈 구멍에 마른풀을 깔고 먹이를 구하는 유리한 지형이 어디쯤인가는 경험의 안테나로 꿰고 있다.

더운 날이다.
두 시 기온이 이십팔 도까지 올랐다. 이마에 송글하게 땀 맺힌다. 점심때 지나 오수처리장 생태공원에서 잠자리를 보았다. 이런... 사월에 잠자리라니. 두 마리가 풀풀 날아다닌다. 시궁 내 진동하는 물에도 골짜기에도 날것들 찾아온다. 남방에서 겨울 난 그것들은 용케 바람의 온기 감지하고 북쪽으로 날개를 펼친다. 제비, 후투티, 원앙을 보았고 실개울의 중태기 노리는 물총새도 만났다. 반갑다. 산꿩은 짝 지어 모심기 전의 논바닥을 수색한다. 목마른 고라니 겁 없이 들판 쏘다닌다. 땅 풀리고 공기 더워지는 동안 꽃이란 꽃 앞다퉈 죄다 핀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 사람과도 닮았다. 집 안팎으로 박태기나무 박 터지게 꽃 달고 성급한 버들개지 솜털 천변에 날린다.

총생한 자두나무 꽃 얼마 후 농약 맞게 생겼다. 삼 년 전 상처한 충선 씨 아내 돌보듯 자두나무 돌본다. 그는 칠십 년대 중반 파독 광부로 독일에 다녀왔다. 당시 과장 월급의 열 배를 받는 월급이라 학교 선생도 지원했단다. 물 설고 낯선 땅 알래스카 들러 기름으로 배 채운 비행기는 시베리아 상공을 지나 스물두 시간을 날아 서독 땅에 내렸다. 이미 결혼한 몸 삼 년 후 귀국 비행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충선 씨 사전 뒤지며 배웠던 아베체데 굿텐 모르겐 추억으로 남았단다. 그때 벌어 산 땅 아내와 일궈 모 심고 자두 키웠는데 아내의 빈자리 그늘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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