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文 (244)
길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있는 것처럼 희망도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길은 가는 사람의 의지와 확신이 다져진 것이고 희망은 품는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쓸모없음의 소용(無用之用)과 천지는 어질지 않다(天地不仁)는 장자의 말은 생산성과 효율을 찾고 생태를 자신의 휘하에 두고 주무르는 문명의 오만에 대한 경고다.
아침에 일어나 외국어 회화를 듣고 밖에 나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소읍을 관통하는 물길을 살피고 이른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한껏 호흡하고 들어오는 거다. 천변을 따라 공원과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걷거나 정자에 앉아 얘기를 나눈다. 읍의 외곽을 따라 흐르는 물길은 영주로 내려가고 그 길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도 많다. 큰 물이 쓸고 간 천변에는 백로들이 어른대며 물고기를 노린다. 어제보다 한층 낮아진 수위로 잠수교가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간밤 지독하게 깔린 안개 더듬어 귀가했는데 아침 답에도 안개의 끄트머리가 포성이 멈춘 전쟁터처럼 자욱하다. 자재를 싣고 동네로 들어가는 트럭, 얼굴을 친친 가리고 가로수에 약치는 사람, 다리 절며 이른 외출하는 노인, 편의점 야외 탁자에 앉아 커피 마시는 사람 아침의 풍경은 잔잔한 소란스러움이 묻어난다.
도서관 앞의 보관함에 책을 넣고 천변으로 나갔다. 물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보에 걸린 풀이 초록 머리카락처럼 수북하다. 물 위에 뜬 수초 섬에서 왜가리가 아침을 먹느라 주둥이를 움직인다. 살찐 개구리라도 잡았는지 위아래로 부리를 흔들며 식사 중이다.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안개 걷히면 무척 더운 하루가 될 것 같다. 오후 근무하면서 풀베기를 시작했다. 긴 장마로 풀은 자랄 대로 자랐다. 객실 청소가 바쁜 오전 근무자나 당직실에서 지내는 야간 근무자는 예초작업이 불가능하다. 오후 근무자가 매일 조금씩 풀을 베는데 면적이 넓고 작업의 숙련도가 사람마다 달라서 능률을 기대하긴 어렵다. 내게 전 지역의 조경을 맡긴다면 하겠는데, 담당은 그럴 깜냥도 의지도 없다.
어제는 땀 푹푹 쏟으며 풀 베다 소나기를 만나 사무실로 뛰어갔다. 잠깐 사이에 온몸이 국에 빠진 닭(落汤鸡)이 되었다.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래층에선 방문객의 체온을 재고 숙소를 안내했다. 인원과 차량 번호를 적고 객실과 야영 데크로 안내하는 거다. 방문객의 표정은 밝고 기대에 차 보인다. 하루나 이틀 밤을 숲 속에서 지내는 일정은 설레고 흥분될 거다. 계곡의 물소리, 비릿한 풀냄새와 쾌적한 공기는 도시와 다른 별천지다. 숲의 나무와 꽃이 다양하고 밤하늘의 별과 어둠 속에 빛나는 반딧불이 등 만나는 것들이 풍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휴양림 계곡의 임상(林相)은 소나무와 잣나무, 낙엽송으로 단순한 식생이다. 관목과 야생초, 그리고 시설 내에 식재한 수종이 전부다. 별다른 부대시설이라곤 없으니 다양한 숲 체험을 기대하는 방문객에겐 난망한 공간일 수도 있다. 계곡을 빙 둘러 산책로를 만들 계획이라 경사진 계곡의 중앙로를 따라 위아래로 걷는 게 산책의 전부다. 그래도 방문객들은 떠들며 짐을 풀고 방마다 불을 켜고 연기를 피우며 고기를 굽느라 즐겁다. 텐트를 친 사람들은 코펠을 들고 오르내리며 신난 표정이다. 텐트의 형태와 기능도 가지가지. 텐트 바깥에 반짝이 불을 달아놓은 것도 여럿 보았다. 등받이 의자에 기대 음악을 듣거나 차를 마시는 사람, 고기를 뒤집으며 술을 마시는 여자, 아이와 함께 숲의 냄새를 맡으며 나뭇잎을 관찰하는 아빠 등 사람들의 움직임은 소읍의 아침 풍경처럼 잔잔하면서도 소란스럽다.
일상에서나 휴가지에서나 사람들의 움직임은 일정한 지향을 향했는데, 그건 목적이 있거나 없거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위임이 분명하다. 생명현상이다. 살아내기 위해서나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무가 흙을 더듬어 뿌리로 물을 빨아올려 위로 보내는 것처럼 삶을 삶이게 하는 행위다. 밤새 불빛을 찾아 헤매다 당직실 바닥에 떨어진 딱정벌레 한 마리조차 삶을 살다 딱딱한 죽음을 맞는 거다. 호흡하는 생물만이 아니라 무생물도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단단한 바위도 비바람과 온도, 햇빛 시간에 따라 풍화를 겪는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펄펄 끓는 용암이 바위가 되고 자갈이 되었다가, 모래나 흙이 되고 바람에 날린다. 바위의 입장에서는 바위의 삶을 사는 것다. 생물도 태어나서 갖은 생명현상을 겪으며 살아가다 우주의 먼지로 돌아간다. 유물론적인 사유 같지만 틈입하는 생각으로 인해 우주는 각자 해석하는 대로 흘러간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번식하고 이루다 종내는 숨을 다하는 것. 그것이 생물이거나 무생물이거나 삶을 살아가는 것들의 순환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문객을 대하면서 때론 즐겁고 괴롭다.
직원들은 나름 소쇄 응대(掃灑應對)하듯 마당 쓸고 물을 뿌려 공손히 손님을 맞지만 상대 역시 다 그런 건 아니다. 내 돈 내고 왔으니 손님 대접하란 태도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청소 상태가 엉망이라는 등 호텔에 가보지 않았냐고 따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숙소가 깨끗하고 공기가 맑아서 참 좋은 곳이에요 하며 환하게 웃는 분도 있다. 손님은 일상에서 중요한 사람이요, 만남은 자체로 소중한 이치인데 자신만의 잣대로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는 것들을 보면 그것의 천한 바닥이 보일 정도다. 난 손님과 가볍게 나무에 대해 대화하는 게 즐겁다. 최대한 손님의 입장을 배려해 숲과 자연의 지식을 나누는 걸 즐긴다. 얼마 전 모터사이클 타고 전국을 여행 중이라는 캠핑 아가씨와도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울릉도를 일주했다는 그녀에게 나의 울릉도 라이딩 경험담을 들려줬더니 눈이 커지며 반가워했다. 공간과 경험을 함께 한 사람은 공유하는 감각도 특별하다. 공감은 경계를 허물고 사람과의 관계를 트이게 한다. 산새 소리 들으며 이른 아침의 비 젖은 숲 속에서 그녀와 대화하는 장면이 새뜻한 풍경으로 떠오른다.
길 위의 안개가 걷힌다.
구름 너머 도사린 해를 보니 오늘 하루도 무척 더울 것 같다. 대구는 오늘 최고기온이 37도란다. 사람의 체온과 같은 기온이라니 지구는 점점 더워지는 게 맞다. 오후의 출근과 풀베기. 땀 푹푹 쏟으며 풀 베야지. 댕겅댕겅 잘려나가는 야생초의 모가지처럼 내 안의 번잡한 사념도 말끔하게 잘라내야지. 오던 길에 가로수에 약 치던 남자가 길 턱에 앉아 땀 씻으며 숨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