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댐

by 소인


영주댐이 생기면서 평은면이 사라졌다.
충주댐이 생기면서 단양읍이 수몰되고 신단양이 건설된 것과 같이 신평은이 생겼다. 도담 산봉 등 관광지의 모습을 갖춘 신단양과 달리 신평은은 새로 지은 주택단지 외 슈퍼 하나가 달랑 있을 뿐이었다. 자전거로 안동 가다 들렀다 낭패를 본 듯했다. 식사는 물론 볼 일도 볼 수 없었다. 번듯한 양옥 주택이 들어섰지만 예전 시골의 분위기는 전무했다. 마치 휴전선은 유령마을 같았다. 실제론 미국의 정돈된 주택가 같았는데 겨우 길 물어 빠져나갔다.

산업이 확장되고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두드러진 변화 중의 하나가 새로운 도로의 건설이다. 예전 마을을 통과하던 옛길은 외곽도로가 생기면서 주민들만의 이동 통로가 되었다. 자연히 오며 가며 들르던 상권은 갈앉았다. 마을과 마을을 잇던 옛길은 4차선 이상으로 확장되고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기기도 했다. 굽은 길은 펴고 산이 막아서면 굴을 뚫고 물길은 다리를 놓아 건너게 했다. 속담에 '신작로 놓으니 문둥이가 먼저 지나간다'는 말이 있다. 새 도로가 생기면서 차량의 속도가 빨라졌고 새길에 적응하지 못한 주민은 늘어난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되었다. 농번기 때 경운기와의 충돌이 빈번하고 특히 노인들이 길을 건너면서 사고가 잇따랐다. 사고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 외지차량은 낯선 길에 익숙지 않아 속도를 늦춰야 할 데서 늦추지 못해 논에 처박히거나 전신주를 들이받기도 한다. 길은 사람과 물류의 이동 통로다. 빠르고 신속한 이동에는 안전이 우선돼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데 사람, 특히 보행자와 자전거, 농업 장비 등을 위한 길의 배려는 빈약하다. 갓길이 없는 도로를 지날 때 이십오 톤 트럭이나 버스가 아슬하게 스쳐가면 등골이 서늘하다. 조금만 옆으로 기울어도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쉽다.

길에도 성격이 있다.
산길의 경우 호젓한 숲 속을 걸으면 사색과 상상의 샘이 솟는다. 산새 소리, 흰 구름이 산정에 걸려 있는 풍경, 목덜미를 간질이는 시원한 바람, 어디선가 졸졸 물소리라도 들리면 보따리 던지고 내려가고 싶다. 반 세기 전만 해도 시골에선 시집오는 새색시가 가마 타고 고개를 넘기도 했다. 전설 같은 얘기가 되었다. 요즘은 어연간한 농로는 콘크리트 포장이 되었다. 점차 아스팔트 까는 곳이 생겨난다. 우마차보다 경운기나 트랙터가 대세이기 때문이다. 꼴을 베어 지게 지고 논틀 밭틀 걸어오는 농부의 모습은 일찌감치 사라졌다. 초봄 퇴비공장에서 나온 발효퇴비나 축사에서 묵힌 소똥 거름, 돼지 분뇨가 논밭에 뿌려진다. 논두렁 밭두렁엔 풀 싹이 돋기도 전 제초제로 누렇게 다져놓는다. 마을길, 지방도로는 툭하면 아스콘을 덧깔아 길바닥이 불룩한 배처럼 높아진다. 내비게이션은 빠르고 편한 길을 정확하게 일러준다. 상냥한 아가씨의 말만 들으면 길을 헤맬 것도 없다.

봉화읍에서 영주댐 가는 길로 접어든다. 네비 아가씨는 빠르고 곧은길을 안내한다. 시간과 비용을 고려한 최단 거리다. 난 자전거 위에 앉아 있다. 자전거 네비는 나의 방향과 생각을 읽지 못한다. 위성이 알려주는 나의 위치만을 복습해 읽어줄 뿐. 봉화읍에서 네 방위에 따른 길은 북으로 영월, 동으로 울진, 남으로 안동 그리고 서로 풍기 부석사와 죽령으로 이어진다. 영주댐은 안동 쪽의 남향이다. 그 길로 내려간다. 물줄기는 상류에서 하류로 모아진다. 골골이 지천이 모여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만나 영주댐으로 향한다. 내성천 물길은 태백서 발원한 낙동강 물길과 만나 용틀임하듯 오란비(장맛비)의 붉덩물과 몸을 섞어 예천 삼강주막에서 만난다. 그 사이 능라 비단 같은 은모래가 달빛을 휘감고 무섬 마을을 핥았다가 평은 문수리 왕버들 그늘 아래 숨죽여 가쁜 걸음을 쉬기도 하고 물길 오르내리는 것들의 목숨을 품어준다. 생명이란 내치거나 품어주되 차별을 두지 않는 균형에 힘준다. 모두 그렇게 살았다. 의지인 듯 의지 아닌 것에 진리가 숨었다. 쓸모없이 보여도 어느 하나 무용(無用)한 건 없다. 천지 불인(天地不仁)과 무용지용(無用之用)은 그래서 맥락이 닮았다.

야트막한 경사의 라이딩은 고갯길보다 꾸준한 페달링으로 허벅지의 근력을 키우기엔 안성맞춤이다. 가파른 고개를 자주 만나면 피로가 쌓인다. 이후의 라이딩에서도 체력 소모가 심해 영향을 받음은 물론이다. 봉화를 중심으로 네 방향을 더듬은 결과 평지 라이딩은 영주댐 방향이었다. 봉화읍에서 내성천 따라 적덕리, 신암리, 구월리로 이어지는 코스는 거리와 풍경으로도 손색이 없다. 산불감시원을 하면서 일대의 사정을 아는 형편에선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마냥 취할 순 없음도 물론. 나날이 변하는 산하의 모습을 응시하며 달리는 느낌은 즐거움보다 참혹한 심정이다. 하지만 어쩌랴. 삶을 삶이게 하는 건 생각보다 몸으로 부딪는 생존의 문제인 것을. 먹고삶에 휩쓸리는 인생을 두고 준열한 사상을 들이대는 건 모자란 견자(見者)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춘추필법으로 섭세의 궁리를 재단한다고 오류가 없을까.

봉화읍에서 적덕 신암까지는 왕복 이십 킬로, 영주댐 못 미처 돌아와도 사십 키로다. 평일의 가벼운 산책의 라이딩은 신암리까지 이십 킬로가 적당하다. 영주댐을 돌아오면 오십 키로가 넘는데 다녀오면 피로감이 다르다. 몸이 더 나아가는 피로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육이 처지고 주름이 늘어간다. 장자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면 무엇이든 피하라고 했다. 부자연스러운 일이면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 그러나 에고는 자연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연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곧 문명이며, 모든 문명은 병과 같다. 인간은 문명화될수록 더 위험한 인간이 된다. 조락하는 인생의 시간을 관조하는 외에 무슨 노력을 기울일 건가. 노력은 인간의 의지지만 완벽해지려는 인간의 의지는 깊은 병처럼 차도가 없다.

애초에 산과 물을 피해 난 길은 오르막이거나 에움길이면서 사람을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었다. 완성을 향해 가려는 인간의 노력은 산으로 막히면 산을 뚫고 강이 있으면 다리를 놓아 건넜다. 사통팔달. 영주댐에 새로 난 길은 수몰지역을 벗어난 산허리께 만들었다. 물을 채우지 않아 아래쪽에 예전의 길과 밭이 묵은 채로 보인다. 농토는 물길 양 켠에 있었지만 댐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산 정상부의 나무를 캐고 사과를 심고 성에 차지 않는 작은 밭을 일구고 산다. 그것도 아닌 사람들은 조상의 묘를 물 밖으로 옮기고 보상금을 쥐고 타처로 떠났다. 댐 주변도로를 달리면 새로 생긴 마을이 종종 나타난다. 농토는 없는 번듯한 주택단지가 많이 보인다. 낮에 직장에 나가고 밤에 들어와 잠자는 베드타운을 닮았다. 수변 풍치를 예상하고 펜션을 지었으나 물을 가두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녹조가 밀려와 도로 물을 뺀 지금, 기껏 돈 들여 지은 숙박시설은 하루하루 앙상한 몰골로 텅 빈 물 바닥을 내려다본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
댐은 물을 가두지 못하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농토가 사라진 산 중턱에 매끈하게 다듬어놓은 길엔 한여름 불더위가 쏟아진다. 몇 개의 다리가 산과 산을 이어 놓았다. 웃자고 한 일이 슬픔을 낳은 결과가 되었다. 어처구니없는 개인의 영웅적 작태가 성과주의의 환상으로 강의 물길을 막더니 똥물을 가둬 물을 살린다는 저지레를 벌였다. 정책 입안, 세금, 시민의 의사를 무시한 공사 강행. 국가주의는 비판적 사고를 외면할 때 폭력적인 결과로 시민을 고통에 빠뜨린다. 길바닥에 자전거도로 표지가 선명하다. 홀쭉한 늙은이의 볼우물 같은 물 바닥을 내려다보며 달리는 길 위에서 헛헛한 바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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