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겨니
물길이야 제 길 간다고 내려가는데 허허롭다. 뭐 한다고 세월 끌고 왔나 싶은 것이. 가만히 들여다보면 뭔가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뭔가 이루려고 하면 무의미하고 공허로운 거다. 숲과 하늘을 받치는 땅은 자체로 뭔가의 의미다. 존재도 의미가 목적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의미인 것이다. 사멸도 우주의 순환이다. 말을 배우고 표현하고 사유하고 '행해지는 것'만으로 충일한 우주의 의미이다. 조금 전 마을을 떠나 물길이 돌아가는 배나들 다리를 건넌 게 만족스레 느껴진다. 둥글한 강돌이 깔린 강변을 걷는다. 물살에 씻긴 호박돌이 로마 병사의 신작로처럼 반드레하고 편편하다. 돌은 제가끔의 무늬로 솟아 있기도 난짝 엎어지기도 했다. 소음을 떠나 숲에 든다는 건 행복의 한 얼굴이다. 오늘따라 미세먼지도 없고 투명하고 상큼한 공기에 마음이 열려 바람이 숭숭 통한다.
풍경 너머로 초록숲이 새뜻한 기운을 뿜는 게 왕성한 청년의 근육 같다. 가만히 바라만 봐도 좋다. 햇살만큼 투명한 갈겨니 떼가 반짝이는 여울에 비늘을 비벼대며 오르내리고 물가에 선 버드나무 첫눈 같은 솜털을 마지막으로 털어낸다. 드러난 물 바닥에 등 돌린 산하 푸른 멍 가시지 않는데 나들이 나온 일행 자리 펴고 담소가 한창이다. 장년의 여자 셋이 소녀처럼 떠드는 모습을 병풍 삼아 다리 위에서 낚시를 던졌다. 잘게 동심원을 그리는 파문에 놀란 고기들이 부챗살처럼 흩어졌다 다시 모인다.
오던 길에 피라미낚시채비와 떡밥을 샀다. 오륙십 년 전에는 골골이 사람도 많아 장이 섰던 면 소재지는 길 뚫리고 시간 흐르자 인적이 드물어졌다. 그나마 우회도로가 생기자 마을을 관통하는 건 길 잘못 든 나그네 거나 철물점이나 치킨집, 슈퍼에 들르는 골짜기 사람들뿐이다. 식구들과 이삿짐 탈방이며 내려온 곳이다. 삼 년을 골짜기서 살다 아이들 크면서 벗어났다. 도시 무지렁이가 땅의 습성에 익숙한 본바닥 사람을 따라가기란 애초에 수월치 않았다. 모래를 씹어먹는 나이를 믿고 덤벼든 시골살이는 먹고사는 현실의 문제를 가르쳐준 학습장이었다. 겨울은 혹독했고 초록으로 덮인 여름은 이상의 '권태'만큼이나 권태로웠다. 기계톱 들고 산등 넘으며 밥을 벌었다. 광산의 막장에서 광차를 밀고 숯가마에서 숯을 구웠다. 골짜기서 면소재지로, 다시 읍내로 나가 살았다.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벌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도시로 나가게 되었다. 강원도 바닷가서 십오 년을 살았다. 아이들 크고 난 뒤 아내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동안 삶의 주름도 좀씩 늘었다.
굵직한 갈겨니 네 마리 올라온 이후 감감소식이다. 눈알을 데룩거리며 가쁜 호흡으로 물 튀기던 고기를 양파 주머니에 넣어 물에 던졌다. 아가미를 할딱이던 물고기는 물에 들어가자 잠잠해졌다. 피라미, 갈겨니는 밑밥 주변에서 맴돌기만 할 뿐, 좀처럼 바늘엔 무관심이다. 욕심을 눈치챈 걸까 쉽게 바늘의 유혹을 물지 않는다.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면소재지로 차를 몰았다. 근 이십 년 만에 본 가게 주인은 많이 늙었다. 처음 시골 내려왔을 땐 젊었는데 그는 날 몰라본다. 요즘 나오지 않는 유리 어항을 사고 감자과자 한 봉지 샀다. 바지를 걷고 돌을 모아 어항을 놓았다. 고기가 들기를 기다리며 일행과 강 건너 비탈의 소수력발전소 구경을 갔다. 나무와 꽃서껀 조경을 잘 꾸며놓았다. 주인의 마음결이 느껴졌다. 바로 옆 한옥 펜션도 함께 운영하는 모양인데 독채의 뒤란 벽마다 예전에 쓰던 농기구를 걸어 전시했다. 마치 민속박물관에 온 느낌이었다. 홀태질하는 농기구며 와랑와랑 소리 난다고 와랑기란 이름 붙인 탈곡기는 녹슨 채 세월을 견디고 있다. 숯불 다리미, 인두, 물푸레나무로 만든 도리깨, 팽나무를 파서 만든 나무절구며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이 오종종 모였다. 동선을 따라 구석구석 심어둔 야생화가 눈을 맞춘다.
돌아와 보니 넣어둔 물고기가 몽땅 사라졌다. 양파 주머니 주둥이를 묶지 않아 제사날로 풀어져 달아난 거였다. 잘 됐단 생각이 들었다. 유리 어항도 공장에서 나온 그대로 말끔했다. 요새는 물고기도 약아빠졌다고 일행이 웃는다. 뾰족한 봉우리에서 산꼬대가 강변으로 몰아치자 낙엽송 이파리가 물결친다. 운동장만 한 그늘에서 한참을 더 놀았다. 집 나와 숲에 드니 화제도 자연히 생태로 기울었지만 결말은 먹고사니즘이다. 요점은 여하히 생존의 터널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거다. 발터 벤야민은 "밤중에 계속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다"라고 했다. 위대한 이들의 발소리가 없었다면 세상은 한 발짝도 나가기 어려웠을 거다. 그러나 인간종의 득세를 인류세라고 부르는 현대에 와서 문명은 제어장치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질주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변동, 바이러스의 창궐, 멈출 줄 모르는 전쟁과 범죄는 일상이 되었다. 욕망은 밑 빠진 독이 되어 채울수록 공허하다. 저물도록 천변에서 고개 떨군 중 백로가 깃들 곳 찾을 무렵 강변을 떠났다. 물 건너는 발길을 건너편 산 그림자가 아쉬운 듯 잡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