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골

by 소인


초입부터 돼지 냄새 진동했다. 정확히는 돼지 똥냄새다. 마을 사람들은 분뇨의 악취를 몸에 달고 산다. 똥냄새는 골 마을의 공기를 한껏 더럽히고 날아올랐다. 안개 낀 날이면 똥냄새는 안개의 옷을 껴입고 집안 골고루 퍼졌다. 이불장이고 찬장이고 가리지 않고 침투한 똥내가 점령군처럼 냄새를 풍기며 달라붙었다. 비 내리는 날이면 동네가 온통 돼지 냄새에 후줄근히 젖는다.

삼십 년 전 아래 마을에서 분양받은 새끼 한 마리를 불려 키우기 시작한 돼지는 줄줄이 달려오는 감자알 같은 새끼를 치며 마구 불었다. 그때도 집집마다 한두 마리의 돼지는 키우고 살았다. 살찌면 마을 행사에 추렴으로 잡거나 초상 나면 요긴하게 쓰이곤 했다. 하지만 돼지가 불고 돼지값이 오르면서 너도 나도 밭을 뭉개고 돈사를 지었다. 돼지를 키우는 사람들은 그나마 철철이 돼지를 낼 때마다 목돈을 만져서 좋았지만 고역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돼지똥 냄새가 돈 냄새인 사람들은 돼지와 한데 뒹굴며 먹고살아도 그만이었지만 아닌 사람들은 돈은 고사하고 똥내를 맡으며 살아야 했다. 소규모 돈사가 커지고 양돈업자의 명함을 쥔 사람들은 이번엔 돼지 분뇨를 돈으로 바꾸는 데 힘을 모았다. 똥과 오줌을 섞어 퇴비를 만드는 거였다. 돈육의 생산과 부산물을 돈으로 바꾸는 사업은 양돈업자의 입장에서는 가성비 높은 사업이었다. 마을은 온통 똥 천지가 되고 말았다.

일부 사람들이 돈사를 옮기라고 주장했지만 집성촌의 이점을 살린 양돈업자를 상대하기엔 턱도 없었다. 대신 사람들은 골짜기를 개간해 사과나무를 심었다. 돈사가 들어찬 동네를 벗어나잔 심산이었다. 사과나무는 해마다 몸집을 불리며 주먹 만한 붉은 알을 달았다. 어떤 사람은 돼지거름을 퇴비로 쓰기도 했다. 마을의 수입은 돼지와 사과가 책임졌다. 똥냄새는 여전했다. 마을을 휘장처럼 덮은 분뇨의 공격은 아무리 문질러 씻어도 가시지 않았다. 동네 사람끼리의 모임에선 그나마 나았다. 서로의 몸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는 연민과 연대감을 풍기기까지 했다. 문제는 다른 동네 사람의 방문이나 돈골 사람들이 읍내에 나갈 경우 종종 사달을 일으켰다.

결혼을 위해 사위 자리나 며느리 자리가 한 번 마을에 들어섰다가 갈 때까지 코를 싸쥐고 울상이 되곤 했다. 집안에 있어도 들리는 돼지의 신음과 똥냄새는 마을을 감싸고도는 바람에 섞여 밀물처럼 밀려왔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나고 자라 삼겹살과 수육을 먹을 수 있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들어와 살 게 아니라면 결혼은 그런대로 성사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전국 각지의 예식장으로 몰려가 똥내를 풍겼다. 마을 사람들이 예식이 끝나기 전 음식 접시에 코 박고 밥 먹을 때 꿀꿀대는 돼지 소리가 났다. 마치 여물통에 머리 처박고 더 먹으려고 밀치고 싸우는 돼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예전에 집집마다 한두 마리씩 구정물로 돼지를 먹이던 소박한 풍경이고 지금은 철제 칸막이에 갇혀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살찌는 일에 전념할 뿐이다. 돈골 사람들은 자신은 느끼지 못해도 옷과 몸에서 혹여 풍길지 모르는 똥냄새를 의식하여 하객들과 떨어진 자리에서 서둘러 밥을 먹었다. 눈치 빠른 사람은 돈골 사람들이 한데 모여 고개도 들지 않고 접시를 비우고 우르르 빠져나가는 풍경을 보았을 거다.

돼지치기가 대형화되자 근동의 마을에서 골골이 양돈 축사를 지었다. 때를 맞춰 우사도 여기저기 들어섰다. 죽어라고 논밭 후벼 파야 돈 되지 않는 작물 농사에 비하면 이문이 낫다는 판단에서지만 갈수록 고령화되는 농촌의 현실을 생각하면 우사의 증가는 당연한 결과였다. 소의 똥오줌 냄새는 돼지보다 덜했다. 우사는 개방형이지만 돈사는 밀폐형이다. 둘 다 구제역 발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의 형편에서 돼지의 형편 알 리 없지만 개방된 우사에서의 소들은 겨울의 찬바람을 견뎌야 했다. 주인이 제때 똥을 치우지 않으면 소들은 한 자가 넘는 소똥 위에서 먹고 잤다. 푹푹 빠지는 똥에서 사는 소나 사방이 막힌 방에서 평생을 살다 도축장 나들이 한 번으로 끝나는 돼지나 답가운 일생을 살기는 마찬가지다. 누구는 동물이 해탈한 존재라지만 제가 먹고 싼 똥을 이불 베개 삼아 사는 게 해탈의 깨달음과 무슨 관계일까.

씨돼지는 특별히 만든 방에서 살지만 죽을 때까지 그 짓을 하거나 생산이 멈출 때까지 새끼를 빼야 했다.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동굴 같은 돈사에서 일생을 마치는 돼지의 평생에 하늘 보는 날이 돼지의 제삿날이었다. 검은 장막이 걷히고 가축운반용 트럭이 돈사 출입구에 꽁무니를 대면 돼지가 줄줄이 나온다. 일렬횡대로 케이지가 열리고 영문도 모르고 나온 살찐 돼지들이 한쪽 방향으로 움직인다. 어미에게서 젖을 빨 때의 동기간일지도 모른 채 하나같이 닮은 표정이 성큼성큼한 걸음으로 세상의 바람을 맛보는 광경은 눈물겹다. 짐짝처럼 뒤엉켜 악쓰는 돼지 트럭을 보는 마음이 선득하다. 인간도 유한한 목숨이지만 사는 날까지 쾌락과 고통을 자기 의지로 겪고 산다. 동물은 의지는 고사하고 인간의 목적에 휘둘려 언제든 사육되고 도살된다. 채식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만족을 모르는 자본의 과소비를 염려함이다.

구제역은 바이러스를 병원체로 퍼지는 법정전염병이다. 두 개의 발굽을 가진 소, 돼지, 염소, 양에서 발생한다. 염소에게 감염은 드물지만 소 돼지에겐 치사율이 5~95%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며 확산 속도도 빠르다.
인체 감염은 생명에 위험을 끼칠 정도는 아니지만 증상은 나타난다. 십구 세기말의 영국에서는 채식주의자 세 명이 구제역에 감염된 사례도 있다. 동물은 발굽, 입 주변에 물집이 잡히고 거품을 내고 일어서지 못하다 수일 내에 절명한다. 백신으로 예방하는 게 방법이나 일단 발병하면 반경 2km 내의 가축은 도살, 매장하는 게 지금의 방법이다. 그러나 현실은 살처분이 아니라 생매장이다. 살아 있는 동물을 하나씩 죽일 수 없어 목숨이 붙은 산 짐승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산채로 묻는 거다.

생각해보라. 몇 년 전 파주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전국으로 퍼진 적이 있었다. 생매장에 동원된 가축 업자와 공무원의 심리가 어떠했는지. 종일 생매장 작업을 하고 숙소로 돌아온 저들의 귀엔 울부짖는 소 돼지의 절규가 밤새도록 따라다녔다고 한다. 구덩이에 빠져 살려고 발버둥 치는 돼지의 다급한 움직임과 처절한 눈빛. 소의 커다란 눈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던 굵은 눈물. 작업에 동원된 사람들은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가축 업자의 편에서도 생때같은 소 돼지를 산채로 묻어야 하는 심정은 오죽했을까.

돼지농장의 인력은 외국인 노동자가 담당한다. 3D 업종에서 내국인이 사라지고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한다. 경향은 전면적이어서 육지와 바다를 가리지 않는다. 한여름 땡볕 아래 감자를 캐거나 하우스의 고추 따는 일꾼들 거개가 중국인, 조선족 또는 동남아시아인이다. 우리 식탁을 책임지는 셈이다. 게다가 농촌 읍내의 노래방, 찻집도 외국 여성이 도우미로 일하는 형편이다. 특이한 건 돼지 사육장에 중국인과 조선족이 많다는 점이다. 혼자서 수백 마리의 돼지를 관리하거나 많게는 천 마리도 관리한다니 열악한 환경에서의 노동 강도를 짐작할 만하다. 철로 만든 케이지에 열 마리씩 가두긴 예사고 서로 싸우는 것도 감시해야 한단다. 돼지의 습성 중 상대의 귀나 꼬리를 물어뜯는데 상처가 덧나면 죽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돼지는 영리해서 호되게 혼나면 상황을 받아들이고 금세 유순해진다. 병들어 죽은 돼지는 분뇨 구덩이에 버린다. 내국인이 꺼리는 일을 참으며 고향 갈 날을 손꼽는 그들의 처지도 돼지 못하지 않다.


돼지는 인류의 단백질을 책임진 식품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한 동물이다. 인간은 대량 생산으로 식탁으로 꾸준히 고기를 나른다. 빙하기의 인류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육식을 했다. 신석기시대 들어 농경과 목축이 가능했지만 지역과 종교의 차이로 도살하는 가축의 종류도 나뉘었다. 기마족은 말을 먹지 않았고 농경족은 일하는 소를 신성시했다. 개는 집을 지키고 사람과 친밀했지만 종종 잡아먹기도 했다. 유목민은 초기엔 젖을 짜고 양을 먹지 않았다. 창세기는 땅에 번성하는 모든 것들을 취하라고 했다. 인류는 신의 말대로 모든 것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소비한다. 대량은 파국도 대량이다. 구제역을 뛰어넘는 신종 바이러스가 생기지 않는단 보장은 없다.

한 사내가 길 가운데서 삽질한다. 차에서 내렸다. 회색 액체가 길 위에 흥건히 고였다. 돼지 물똥이다. 길가의 퇴비장에서 돼지똥과 오줌으로 만든 퇴비를 싣는다. 사내는 뻘쭘한 표정으로 오물을 치우느라 당황한다. 그의 손에도 작업복에도 돼지똥이 덕지덕지다. 씨돼지를 싸리 회초리로 몰고 가는 이효석의 '돈(豚)'이 떠올랐다. 사내가 길섶의 억새를 분질러 남은 오물을 닦는다. 내 몸에도 똥내가 나는 듯하다. 바람결에도 똥내가 섞였다. 골짜기 과수원으로 길을 잡았다. 참았던 숨도 쉴 겸 차문을 활짝 열고 비탈길을 올랐다. 뒤에서 소리가 나더니 오토바이가 잽싸게 앞지른다. 중국집 배달원이다. 주말에 자식들 불러 사과 딸 거란 돈복 씨 말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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