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퍼부었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기세는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당직실 창문으로 비에 젖은 사시나무 이파리가 흔들렸다. 개울에서는 콰르릉 소리를 내며 흙탕물이 콸콸 흘렀다. 한 달 넘는 장마로 전국은 물 먹은 스펀지가 되었다. 과포화 상태의 숲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내리는 빗물을 그대로 쏟아내는 것뿐이다. 빗물이 단단히 흙을 움켜쥔 뿌리를 적시자 나무는 질탕이 된 흙을 쥔 손을 놓아 버리고 옆으로 쓰러졌다. 곳곳에서 산사태가 벌어졌다. 쓰러진 나무는 도미노 현상으로 옆의 나무를 안아 함께 넘어지고 흙 무더기는 얼음판 같은 사면을 미끄러져 집을 덮쳤다. 흙더미에 사람이 묻히고 집은 형체 없이 부서진다. 한강 수계의 댐들은 밀려드는 빗물을 감당하지 못해 차례로 수문을 열어 물을 토하고 하류의 저지대 마을은 물에 갇히기 시작한다.
휴양림에도 산사태가 났다.
폭우가 묵상의 집(3개실) 옆을 흐르던 개울의 석축을 무너뜨리고 주차장으로 토사와 물이 빠르게 내려왔다. 빗속을 뚫고 꾸역꾸역 모여든 숙박객의 차량이 바퀴 반쯤 물에 잠겼다. 관리인이 급하게 문을 두드려 차량 이동을 유도했다. 다행히 침수된 차는 없었고 장비를 동원하여 계곡의 바위와 흙더미를 치워냈다. 하루만 예약 손님을 취소한 다음날부터 손님을 받았다. 현장을 취재한 지역 방송국에서 뉴스로 내보냈다. 한 마디 인터뷰한 기간제가 자랑스레 유튜브를 보여준다. 달라진 건 좆도 없다. 또한 주차장 사면이 두 군데가 무너져 임시 복구를 한 상태다. 위험하기는 캠프장 쪽이 더 위험하다. 가파른 경사면에 만든 12개소의 야영데크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였지만 물 먹은 솜이 된 지반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코로나 여파로 답답하던 사람들은 국내 여행으로 몰려 바다와 계곡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몰려다닌다.
관내의 정자 문화관은 지난번 폭우 때 일층과 지하실에 침수 피해가 났다. 불어난 물은 일층 계단을 타고 시뻘건 흙물이 줄줄 유입되었다. 올해 개장한 곳인데 폭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설계가 한심하다. 폭우, 폭설, 지진 등 천재지변에 대비한 설계와 시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안일한 행정이 더 큰 피해를 부를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담당자는 산사태가 나면 객실의 손님, 야영객과 차량을 대피시키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장소로 이동시키라는 매뉴얼이 없다. 한밤중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장소와 비상 물품 조달은 어쩌는지 도통 무대책이니 만일의 사태가 나면 혼란을 키울 것은 뻔한 일이다. 장마와 태풍의 영향이 겹치는 전국적인 물난리의 상황에서 휴양림을 당분간이라도 닫을 생각은 없는 듯하다.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제안을 할 분위기가 아닌 것이 현실임을 생각할 때 앞으로의 전망이 우울하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두 개소의 산사태 피해가 난 이상 앞으로 가을까지 태풍과 폭우가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와 재난 매뉴얼의 준비가 시급하다.
휴양림에서 오 분 거리에 모텔이 있고, 소방서는 십오 분 거리다. 비상시 대피 인원을 모텔에 투숙하게 하고 인명 구조 등의 제반 조치가 필요하다. 다행히 야영데크 예약이 눈에 띄게 줄었다. 태풍이 몰고 온 수증기가 큰 비를 뿌린단 예보에 캠핑 계획을 취소한 것 같다. 객실은 꾸준히 예약이 접수되었다. 퇴실 시간은 오전 열한 시고 입실 시간은 오후 두 시부터다. 숙박 손님이 빠져나가는 열한 시부터 기간제 관리인과 공공근로자가 바빠지기 시작한다. 방을 나가는 손님들이 일정치 않으니 청소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썰물처럼 한꺼번에 비운다면 위쪽 객실부터 차례대로 청소할 텐데 순서는 오늘 입실할 객실을 우선순위에 두고 청소가 바쁘게 돌아간다.
카드를 꽂고 에어컨부터 세게 틀어 놓는다. 간밤에 난방을 돌렸던 객실 안은 더운 김이 끼쳐 물큰한 습기로 땀이 솟는다. 이불을 털고 바닥의 머리카락을 점검한다. 욕실과 주방을 닦고 그릇을 챙긴다. 테라스를 점검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청소 후 휴지통을 비우고 욕실의 화장지, 비누 등을 점검해 보충한다. 2인, 3인이 손발을 맞춰 16개 객실을 청소하면 점심은 건너뛰는 경우도 있다. 오후 두 시 입실이라도 손님에 따라 일찍 들어올 수 있으니 청소는 되도록 빨리 끝낸다. 휴가철이라 휴양림 아래 동네의 아주머니 네 사람을 알바로 써도 청소는 바쁘다. 시원하게 비 맞으며 예초기로 풀 베다 청소가 밀린다는 전갈에 합류했다.
아침을 가볍게 먹은 터라 허기가 몰려오고 손이 떨린다. 트렁크에서 초코파이 꺼내 아줌마랑 나눠 먹었다. 허위허위 청소를 마치니 오후 교대자가 올라와 반갑게 손을 흔든다. 얼굴은 온통 땀범벅이다. 교대자는 편하게 생겼다. 가는 빗발이 끈질기게 추적이며 내린다. 청소도구를 창고에 넣고 점심 도시락이 기다리는 당직실로 내려간다. 건너편 산자락에 비구름이 부옇게 감겼다. 새벽 여섯 시에 출근했으니 밥 먹고 집으로 간다. 허리가 뻐근하다.
의암댐에서 실종된 사람들은 어찌 되었을까. 모두 시청 기간제 근로자라는데 나도 기간제다. 이 땅에서 비정규직, 하청, 기간제 노동자는 급여나 대우에서 바닥을 긴다. 실제 산재사망률에서 원청보다 하청 노동자의 사망률이 7배나 높다. '위험의 외주화'는 약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며 사회를 굴린다. 지난 5년간 30개 기업에서 209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한 사망자는 245명이었다. 산재 사망자 중 하청노동자는 212명(86.5%)으로 집계됐다. 원청 노동자는 33명(13.5%)이었다. 중대재해에 따른 부상자도 하청노동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최근 5년간 부상자 76명 중 하청노동자는 65명(85.5%)이었다. 중대재해 발생 시 원청 현장 책임자는 집행유예를 받고 원청 경영진은 혐의 없음으로 빠져나가고 법인은 크지 않은 벌금을 부과받는 게 현실이다.
좆같은 새끼들이 사람을 위계로 나누어 죽음으로 내몬다. 푼돈이 아쉬운 약자는 항상 위험에 노출된 작업을 어쩔 수 없이 계속한다. 매년 발생하는 산재 사망자가 코로나 19 사망자보다 많다. 코로나 19 사망자를 모범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던 건 정부가 코로나 19로 인한 사망자를 내지 않겠다는 목표로 적극 행정을 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왜 산재 사망자를 줄이는 데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매일 산재 발생 현황과 피해에 대해 국민에게 보고하고 예방 조치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산재사망률이 크게 줄지 않겠는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는 2020명이고, 그중 사고 사망자는 855명, 질병 사망자는 1165명이었다. 평균으로 따지면 매일 6명의 노동자가 직장에서 일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산업 현장의 안전 규제를 강화한, 이른바 ‘김용균 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사고 사망자는 오히려 늘었다. 1분기 사고 사망자는 25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명(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사망자 절반이 건설업에서 발생하는 상황도 여전하다. 1분기 건설 현장에서 131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시체로 이루어진 나라다. 엊그제 산태 난 계곡에 들어가 삽질하란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교대자의 말을 들었다. 장비가 들어낸 바위가 구르면 꼼짝없이 깔릴 목숨이다. 원청은 그런 지시를 예사로 한다. 기간제를 마징가제트나 그것의 부속품쯤으로 안다. 나한테 걸리면 목을 안고 함께 들어가 삽질하자고 할 참이다.
창평저수지 둑길이 공사로 통제 중이다. 우회하란다. 산에서 토사가 쏟아졌나. 물그릇 가득 찬 저수지 풍경 보며 귀가하려던 계획을 바꿔 전용도로를 탄다. 후드득 빗물이 유리창을 때린다. 작업복을 갈아입지 않고 퇴근하는 몸에서 젖은 땀내가 몰칵 끼친다. 하루일 마치니 따듯한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