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찐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징검다리처럼 떴는데 정작 해는 비치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다. 오전 여덟 시 반 정시 출근자가 오자마자 예초기 메고 얼음물 담아 정문으로 내려왔다. 산밤나무 아래 실하지 못한 밤송이가 수북하게 떨어졌다. 수목의 자정 능력이다. 지난번 벤 곳인데 잦은 비로 물 먹은 풀들이 껑충하게 자랐다. 사람은 머리 모양새고 집은 대문 앞을 깨끗이 쓸어야 보기 좋다. 정문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기로 한다. 예초기 메고 내려왔을 뿐인데 얼굴에서 방울방울 솟은 땀이 목덜미로 흐른다. 흐린 데다 바람 불지 않으니 습기가 더해 가마솥 같은 날씨다. 이런 날은 땀을 참기보다 줄줄 흐르는 대로 움직여야 오히려 개운하다. 연료 마개 열어 휘발유를 잔뜩 먹인 예초기 시동을 걸고 석축 위로 올라갔다. 개망초, 쑥 대궁, 칡덩굴서껀 폐가의 마당처럼 수북한 풀 위로 붕붕 돌아가는 칼날을 휘두른다. 댕겅댕겅 잘려 나가는 풀에서 비릿한 냄새가 풍긴다.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풀은 각도를 잘 맞춰 베면 시원스레 잘려 나간다. 상의는 이미 젖었고 조끼까지 후줄근하게 젖기 시작한다.
덤불이 우거진 곳은 예초기로 두들기듯 베면 날에 덩굴이 감기지 않고 잘린다. 한 번 눌러주고 수평으로 베는 동작인데, 마치 검객이 칼을 휘두르는 동작이다. 덤불을 아래서부터 한꺼번에 베려고 하면 십중팔구 길게 자란 풀이 예초기 날에 친친 감기기 일쑤다. 예초기 사용 요령은 경험에서 나오지만 일정 정도의 정석은 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수평으로 휘두르는데 다시 오른쪽으로 날을 움직일 때는 풀에 칼날을 대지 않는 게 낫다. 양쪽으로 마구 베면 빨리 벨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양발을 조금씩 앞으로 내디디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베어 나가야 효율면에서도 낫다. 줄 날이든 칼날이든 처삼촌 묘 벌초하듯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면 벤 자리도 울퉁불퉁 깔끔하지 않아 땀 흘려 일하고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 돌과 전선 등 지장물을 조심하면서 벤다. 풀 속에는 감춰진 장애물이 많다. 도로공사나 수목 식재 후 버리고 간 지주대나 철사 등은 특히 위험하다. 사전에 답사가 어려운 장소는 조금씩 베어나가며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요즘엔 안전을 위해 다양한 예초기 날이 시판된다. 꼬인 줄로 된 줄날, 돌 등에 부딪치면 접히는 안전 칼날, 삼각 날 등 작업자의 안전을 고려한 날이 많다. 예초작업 시의 안전 장구로는 보안경, 망사 안면 보호구, 무릎과 종아리까지 덮는 보호구 등 다양하다. 땀이 많이 나서 벗고 작업하다가는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기 힘들다. 더워도 안전 장구를 착용하고 임하는 게 좋다. 또한 풀 속에는 벌이나 뱀 등 독충을 만나기 쉽기 때문에 에프킬러 등 살충제를 휴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풀을 베다 한 마리라도 벌이 눈에 뜨이면 작업을 중지하고 주변을 살펴야 한다. 바위 아래나 하단부가 무성한 나무 아래쪽엔 벌집이 있을 수 있다. 올여름엔 전정작업과 풀 뽑기 하다 스무 방이나 벌에 쏘였다. 다행히 말벌 같은 맹독은 아니지만 벌에 쏘이면 통증은 엄청나다. 벌을 타는 예민한 체질이라면 더욱 위험하다. 속성으로 자라는 잡목은 예초기 날을 어슷하게 내리쳐서 자른다. 보안경을 쓰지 않은 상태로 작업하다 나무토막을 눈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간 동료도 있었다. 또한 장시간 작업 시엔 땀을 흘린 만큼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그리고 간식을 준비하면 고된 노동에 따른 허기를 어느 정도 면할 수 있다. 산판의 조림지나 과수원 등은 전문 일꾼을 써야 비용과 능률면에서 효과적이다. 산림작업단에 들어가 예초작업을 한 첫날 모두들 저녁밥 먹을 때 수저를 못 들 거라고 했다. 그만큼 예초작업은 중노동이다. 초보자는 아픈 팔로 숟가락을 못 들고 입을 댄다고 했다. 다행히 난 느릿느릿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산림작업단 시절에는 주로 조림지에서 예초작업을 했다. 소나무 식재지 등은 조림 후 3~5 년은 연속해서 풀베기를 해줘야 어린 묘목의 수직 생장을 도울 수 있다. 풀베기를 게을리하면 일 년 사이에도 수북한 풀에 잠긴 묘목은 자랄 수 없다. 야생초는 작물보다 질소 흡수력이 강해서 같은 조건이라면 풀 쪽이 훨씬 빨리 자란다. 인간의 간섭으로 작물의 생육 촉진을 도모해 주어야 한다. 경북 영양에서 예초작업할 때다. 조림지의 특성상 솔개그늘 한 점 없는 임지에서 새벽부터 풀을 베었다. 한낮엔 점심 후 세 시까지 휴식하고 오후 일곱 시까지 뜨거운 시간을 피해 작업하는 일과였다. 점심을 위해 산에서 내려와 길가의 풀을 벨 무렵이었다. 짧은 구간을 마저 베고 점심을 먹을 요량으로 예초기 시동을 걸었다. 낮은 풀의 발치에 칼날을 대는 순간 무언가 쇠꽂이 안전화 등을 찔렀다. 욱! 하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녹슨 철사가 안전화를 뚫고 발등에 꽂혔다. 철사를 뽑았다. 두어 방울 피가 나왔다. 통증보다 파상풍이 염려되었다. 릴케 시인은 장미 가시에 찔린 상처가 파상풍으로 도져 죽었다. 후대 사람들이 낭만적인 시인의 죽음으로 미화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뒤탈이 걱정이었다. 병원으로 달려가니 의사는 일단 주사를 맞고 하룻밤 경과를 보자고 했다. 절룩거리며 임업 사장과 술을 마시고 노래방엘 갔다. 밤늦게 숙소에 들어와 곯아떨어졌다. 통증은 만취에도 통하지 않았다. 부어오르는 발의 통증에 밤새 잠을 설치고 날이 밝기 무섭게 입원했다. 타지에서의 부상 소식을 들은 아내는 눈물을 찍고 방학 중인 아들 녀석이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달려왔다. 병실의 에어컨은 시원했다. 환자 대부분이 교통 관련 나이롱환자로 병실은 텅텅 비었다. 아들과 병실에서 짜장라면을 끓여 먹으며 키득댔다. 휠체어를 타고 목발을 짚다 일주일 만에 걸어 나왔다. 사람 좋은 임업 사장은 손을 흔들며 두고두고 미안해했다.
예초작업을 하다 보면 갖가지 산짐승을 만나기도 한다. 동막골 풀베기 때는 억새풀 사이에 둥지를 튼 붉은 머리 오목눈이가 알을 품은 채 날 쳐다보았다. 알을 보호하려는 습성이 도망보다 먼저였다. 동료에게 피해 가라고 일러주었다. 두릅나무 밭을 작업자들이 동심원을 그리듯 베어 들어가자 오도 가도 못한 고라니 새끼가 예초기 소리에 놀라 꼼짝 못 하고 엎드려 있었다. 어딘가에 어미가 지켜보고 있을 거였다. 새끼가 웅크린 곳을 남기고 돌아섰다. 충청도에선 동료가 풀 베다 새끼 산토끼 세 마리를 안고 왔다. 작업자들이 키운다며 한 마리씩 나눠 가지고 갔는데 크면서 살림을 물고 뜯고 저지레가 심하더란 후일담을 들었다. 날다람쥐와 고슴도치를 보기도 하고 유혈목이와 까치독사를 만나 혼쭐나게 달아나기도 했다. 여름보다 질긴 가을 풀을 베다 보면 메뚜기, 풀여치, 참개구리 등도 본다. 매사에 칼날을 조심해서 피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칼날이 가는 반대 방향으로 튀기만을 바랄 뿐이다. 야생동물의 터전을 인간이 잠식하여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는 칼을 들이대는 꼴이다.
강원도에서 십오 년 동안 수목관리를 하면서 여름이면 예초기를 등에 붙이고 살았다. 소나무 식재지와 주거 공간이 한 곳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에 나가 예초기를 휘둘렀다. 식재지 가운데를 흐르는 배수로에 들어가 물을 끼얹으며 더위를 식히기도 했다. 어떤 날은 손님의 급한 방문이 있어 비가 내리는 중에 예초기 엔진에 우산을 달고 풀을 베기도 했다. 실용신안으로 등록할까 하다가 웃고 말았다. 비 오시는 날은 만물의 휴식이다. 태초부터 지구를 적신 장엄한 빗줄기에 저항한다는 건 불경스러운 일이다. 집에서 부침개와 막걸리로 절을 올려도 모자랄 일. 풀도 수목도 인간의 도시와 들도 비를 맞으며 생태의 순환을 몸으로 정신으로 느껴야 할 일이다. 태풍, 번개, 지진, 폭설과 폭우는 종종 인간이 사는 마을에 심각한 상처를 남기지만 지구의 순환을 위해서는 필요한 자연의 운동이다. 자연을 거스르고 산을 깎거나 물길을 막아 문명을 건설한 인간의 구조물은 그때마다 치명타를 맞았다. 바다를 뒤집으며 산소를 공급하고 막힌 물길을 뚫으며 생태는 복원을 시도한다. 자연을 개발과 파괴로 대상화한 인간에게 지구의 순환은 종종 엄청난 고통의 교훈을 가져다준다.
여름 내내 오전과 오후 근무의 낮 시간에 예초작업을 한다. 매일 쏟는 땀 덕분에 당 수치가 반으로 떨어졌다. 의사는 놀라면서 입을 벌리고 웃었다. 아내는 일 년 내내 풀만 베고 살면 약도 끊고 틀림없이 장수할 거란다. 예초기 메고 백 살 산다면 집어던지는 게 낫잖은가. 코로나 사태로 여행이 막힌 마당에 장수 타령이라니. 어느덧 풀베기 경력 이십 년이다. 암튼 건강을 회복한단 점에선 나쁘지 않으니 풀베기는 나와 동급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