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

by 소인


연하장이다.
미국 도시의 귀퉁이 문방구에서 샀거나 리어카 행상의 요란한 캐럴송을 들으며 집었을지 모른다. 떠나온 땅의 동생을 생각하며. 오래전 석유 먹인 횃불 들고 밤 가재 잡으러 나간 기억 떠올렸을지도.

난 왜 형들을 생각하면 가재가 생각날까. 두 형은 미국의 동부와 서부에서 늙어 간다. 삶으면 빨개지는 갑각류의 빛깔에 감탄하며 전등 아래 오도독 가재의 껍질과 살을 씹은 기억이 오십 년이 훌쩍 넘어서도 생생한 건 빛과 어둠의 두려움과 안도와 불안의 경험 때문이다. 사람은 생래적으로 밝은 것은 좋은 거며, 어둡고 칙칙한 건 좋지 않은 감정과 불행의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모든 상투적 관념이 증명한다. 죽은 사람의 그림자는 살아 있을 때와 다르다. 그것은 움직여 몸을 일으킬 수 없고, 더 이상 숨 쉬지 않는다. 몸에서 생명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순간 그의 정신도 그림자의 영혼도 끊어진다.

빛은 어둠 속에서 빛으로 빛나고 어둠은 빛의 무게에 눌려 사멸한다. 선과 악 이분법의 상대적이란 뜻이 아니라 그것들은 동시에 함께 존재한다는 뜻이다. 빛과 어둠을 잘게 자르면 빛에서도 어둠이, 어둠 속에서도 빛이 들었다. 추운 밤의 이면에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발가벗고 해풍과 파도에 씻기는 낮의 풍경이 교차한다. 삶은 현실에 근거하지만 보이는 현상이 다가 아니란 건 인류의 스승들이 누대에 걸쳐 설파한 바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진부한 여기를 통과해 현실 너머의 의미를 캐는 일이다.

밤 가재 잡이는 인디아나 존스의 황금 동굴을 찾아가는 황홀과 모험의 파노라마다. 여름 밤숲에 들어가 기름 먹인 솜을 태워 어둠을 여는 일은 공포를 지워 평안을 깨우는 일이다. 뿔 달린 도깨비가 혹 방망이를 휘두르며 튀어나올 것 같은 어두컴한 수풀. 찰박이며 개울을 거스르는 발소리. 발목을 간질이며 흐르는 물살. 푸드덕 뒤채며 가지를 옮겨 타는 새의 선잠. 동네 형과 형들을 따라가며 양동이가 무거워지면 뒤처진 나는 자꾸 불빛이 지워진 어둠을 돌아보았다. 그건 공포를 몰고 온 최초의 감정이었는데 앞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까맣게 묻어났다.

낮으로 바위 밑에서 자던 가재는 밤이면 개울 바닥에서 장을 열었다. 새카맣게 바글거리는 가재를 그냥 집어 잡으면 그만이었다. 등껍질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 올리면 갑작스러운 부양에 당황한 가재는 집게발을 버둥대며 저항했다. 물리면 피가 나도록 아팠는데 제대로 잡힌 가재는 허우적대며 여름밤의 후텁한 어둠을 연신 꼬집어댔다. 암컷은 꼬리 안쪽에 알을 가득 품고 바둥거렸다. 형들은 앞서가며 불빛에 꼼짝없이 드러난 가재를 잡았고 양동이는 금세 찼다. 환호성을 지를 때마다 나는 형들과 멀어졌고 이마에선 땀이 솟았다. 이따금 놀란 밤고기가 종아리를 치고 달아났다.

꼿꼿하던 횃불의 꼬리가 이울 무렵 밤길을 더듬어 돌아온다. 우리 집이 아니고 동네 형 집에서 큰 솥에 잡아온 가재를 삶는다. 그제야 어린 나는 밤 가재 잡이의 전말을 개관한다. 재혼한 아버지는 처갓집 식구가 올 때마다 형제들을 숨겼다. 이틀 사흘 손님이 갈 때까지 형들과 나는 동네 형 집에서 머물렀고 그때마다 가재를 잡으러 다녔다. 가을이면 산에 올라가 도토리를 줍거나 으름 열매를 따서 오도독 깨물었다. 형들은 집에 가자고 보채는 나를 위해 갖가지 유희를 만드는데 골몰했는데 형들로서도 고역스러운 놀이였다.

거품이 넘치도록 물이 끓자 암갈색이던 가재는 빨갛게 변했다. 우리는 뜨거운 가재를 호호 불어가며 씹었는데 뭐라 집어 말할 수 없는 고소한 냄새였다. 지금 생각하면 짭조름한 바다 냄새만 없었지 살 빠진 칠게를 먹을 때의 맛이었다고 기억한다. 허연 김이 오르고 백열전구 아래 와르르 모인 동네 아저씨와 형들의 떠들썩한 소리에 여름밤이 흘렀다. 어둔 밤숲과 전등 빛에 드러난 빨간 민물가재의 탄탄한 등딱지 집게발 포도송이처럼 달린 가재 알. 집의 내밀한 이야기와 아버지. 그것은 투명한 유리그릇이 아니라 불순한 게 섞인 탁한 물 같았다. 내막을 알 수 없는 까마득한 깊이의 우물 말이다.

누구라도 삶의 현실에 밀려드는 사나운 바람에 속수무책이었으리라. 어른과 아이라고 해서 별다른 건 아니다. 아이라도 어른만큼 느끼고 겪는다. 자신의 무기력에 어른은 분노하지만 아이는 상처를 몸에 새긴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는 별개로 발생하는 사건이다. 전쟁과 여자의 만남. 많은 꿈들이 폐허로 변하면서 사람들은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다. 개인의 역사는 더 큰 역사 앞에서 절망적일 정도로 무력하다. 하나 인간의 의지는 역사의 우연으로부터 깨지고 넘어지면서 이어진다. 어쩔 수 없이 속화된, 현실의 상투화된 관념에 젖어 사는 사람은 '살아내기'를 통해 '살아 있음'을 관철한다. 어쨌거나 비관적이게도 명확한 건 태어난 존재성의 비극이다. 일면적인 게 아니라 희비극은 겹치며 삶을 엄습한다. 천지 불인(天地不仁)은 엄연한 명제다.

불빛에 모여든 날벌레 같은 왁자한 사람들 얘기를 들으며 가재를 씹으면서도 어둠 너머 웅크린 것의 알 수 없는 정체에 나는 자꾸 고개를 빼고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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