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杂文 (250)

긴팔 남방을 입고 나섰는데 선득하다. 매일 기온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 가을이 온다. 출근길에 전조등을 켤 정도로 해가 짧아졌다. 어둑한 길을 천천히 간다. 읍내를 벗어나 고개 넘어 닭실 마을 지나자 장례식장에 불이 환하다. 어둠 속에서도 하얀 꽃이 매달린 화분이 보인다. 망자를 슬퍼하던 가족들도 잠들었겠다. 살면서 떠나보낸 이들을 떠올린다. 가족과 친지, 친구와 동료, 지인들은 한마디 말없이 서둘러 떠나곤 했다. 나라고 남길 말 있겠는가. 일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다 모두 떠난다. 삽질하던 이는 삽을 든 채, 밥 먹던 이는 숟가락을 쥔 채로, 공부하던 이는 읽던 책을 열어둔 채 이승의 문을 나선다. 마치 누가 부르기라도 하는 듯이.

오래전 묘원을 관리했다. 부자의 가족 묘였다. 봄이면 무덤가에 둘러선 도래솔 새순을 치고 가위질로 다듬었다. 여름이면 잔디를 깎고 주변의 칡넝쿨을 예초기로 날렸다. 땅속의 사람 생각이 남았는지 덤불은 베고 베도 이듬해면 무성하게 자랐다. 눈비가 쏟아지던 초봄 혼자서 소나무 아래 기며 우죽을 치우다 무덤 속의 사람들이 보지나 않을까 부끄러웠다. 살아서 양지를 찾겠다고 눈비 뒤집어쓰고 뒹구는 꼴이 우스웠을 거다. 떠난 사람들은 양지에 반듯하게 누워 겨울 볕 쬐고 이승의 난 언 손을 불어가며 볕을 찾는 꼴이라니. 죽은 자들의 이력이 생각났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을 보고 한국 전쟁을 겪은 이들. 폐허에서 출발했지만 부자로 살았다. 울면 불면 살아 무엇을 남기고 갔을까. 아니 생이란 목적도 남김도 본래 없는 거다. 뜨겁게 살아내다 저쪽으로 옮겨 갔을 뿐. 위대한 생각도 예술 작품도 얼고 녹아 풍화를 거치며 남은 자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우연한 존재의 무. 생몰이 돌을 깎은 자국으로 남은 묘비를 보며 그래도 미욱하게 이쪽저쪽을 넘나드는 내가 낫지 싶어 연장을 던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 알 수 없는 열에 시달렸다. 자신이 얼마나 낮은 온도의 삶을 사는지 생각했다. 그건 앞선 세대와의 저울질도 아니고 시대 인식에 따른 돈오의 각성도 아니고 비속의 성찰도 아닌 천박한 현실 인식에 대한 반성이었다. 현실 인식은 습속과 제도의 허상을 관통하는 역사 인식에 다름 아님에도 하루의 끼니를 염려하고 분에 넘치는 일신의 안락을 도모하며 내일을 기대한다는 게 얼마나 허허로운 상상인지 몸이 떨리도록 뉘우쳐지는 거였다. 현재는 과거의 오늘일 뿐, 오지 않는 '未來(没来)'를 상상하는 깨지지 않는 벽을 마주한 거였다. 우연한 태생인 나의 존재가 있기까지 과거를 톺아 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심정이 되었다. 실천은 접어두고 지적 허영에 침잠하던 책 읽기, 과거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자기만의 고유한 인식은 흐릿한 채 앞서가던 개가 짖는 대로 따라 짖으며, 글 쓴다고 시 쓴다고 팔도를 무른 메주 밟듯 나댄 것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제가 뱉은 독설에 걸려 길을 잃고 헤맨 꼬락서니가 가소롭고 가여웠다.

주인이 땅을 팔 때 내가 살던 집까지 팔려 거처를 잃었다. 좋게 보아 퇴직이지만 쫓겨났다. 얼마든지 일할 나이에 아내의 고향으로 내려갔다. 오금의 신경에 붙은 혹 때문에 서울 큰 병원에 다녀왔다. 혹은 통증을 불렀으나 당장 수술할 형편은 못되었다. 가끔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죽을 만큼이면 수술대에 눕기로 마음먹었다. 빈집을 고쳐 살며 도서관에 들락거렸다. 바뀐 입장에서의 책 읽기는 낯선 인식과 부딪쳤고, 서늘한 문장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역사, 철학, 문학을 더듬다 맥락의 독서로 들어서는가 하면 고집스레 한 우물만 들입다 파기도 했다. 공부는 본시 마침이 없고 인생은 노루꼬리만 하니 애저녁에 서두를 일도 없다. 병독, 다독을 거쳐 한 권의 책을 정밀한 읽기로 가닥을 잡았다. 설익은 인식의 뿌리내림을 경계했다. 해를 거듭하며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나아갈수록 내가 지워지는 느낌이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오래도록 쓰라린 책,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책,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자극적인' 책" 그것이 좋은 책이라고 했다. 삶에서의 행과 불행은 사실이라기보다 자기 해석에 죄우된다고도 했다. 교양과 지성은 지식과 정보가 고인 물이 아니라 바위에 부딪치고 깨지고 넘으며 타인과 몸을 섞으며 밀고 나가는 행위다. 움직이지 않으면 변화도 성장도 전무하다.

농촌의 구인 정보에 조금씩 눈을 뜨며 밥벌이에 나섰다. 최저 시급의 단기 일자리는 인품(사람 관계), 발품을 팔면 널렸다. 하던 도둑질이라고 수목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산지가 85%인 지역에서 맞춤한 일을 찾아 밥을 벌었다. 일터에서 사람들을 알아 갔다. 책 읽기는 취미가 아닌 양식이 되었고 나름 진화하는 방식으로 맥락을 찾아갔다. 시보다는 산문을 쓰기로 작정했다. 어림 반푼 어치도 없지만 루쉰의 잡문을 흉내 내어 난삽한 문장을 쓴다. 급한 성벽은 버릴 수 없어 생각나는 대로 쓰고 눈가늠으로 퇴고한 후 sns에 올린다. 되감기로 읽어 보면 버릴 것 투성이다. 설익은 관념의 정조, 착종된 개념의 난무, 한 문장에서 드러나는 인식의 오류, 언어의 지리멸렬... 잡문을 쓰면서도 불립문자(不立文字)의 명제는 책상을 떠나지 않았으며, 서툰 문장으로 허명을 좇는 영치부(詅癡符)를 경계했다.

살면서 많은 일을 하며 밥을 벌었다. 대별하면 건설회사, 광고회사, 수목관리지만 이력에 내놓지 않는 자잘한 게 끼어 있다. 앞으로 얼마나 고단한 땀을 씻으며 일터를 오갈지 모르겠다. 약수탕 거리를 지나 가재골로 들어선다. 사위는 여적지 어둑하다. 산딸나무에서 떨어진 빨간 열매가 길가에 으깨져 뒹군다. 외주물집 대문 앞 호두나무가 잎을 털 준비를 한다. 도토리, 산밤이 툭툭 새벽을 흔들며 떨어진다. 익은 것들은 땅을 울리고 사라진다. 가을이 오는 소리다. 휴양림 정문을 막아선 쇠사슬이 희붐한 여명에 빛난다. 단단한 빗장을 푸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잡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