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이는 아랫집 사는 개다. 평범한 바둑이 흔한 말로 '똥개'다. 녀석은 나라가 살았을 적에 자주 놀러 왔다. 할머니 개인 나라도 녀석을 귀여워해 주었다. 나라가 떠나고 일월이의 발길도 뜸해졌다. 한동안 보이지 않다 나타났는데 함께 사는 할머니 말에 한쪽 눈이 실명되었단다. 교통사고를 당해 상처 난 일월이를 병원에 데려가 안구를 적출한 모양이다. 고생이 심했는지 오랜만에 본 녀석은 늙어 보였다. 노인처럼 주둥이 털이 하얗게 셌다. 한쪽 눈으로도 동네를 잘 쏘다닌다. 어쩌다 아이들과 만나면 모두 이뻐하니 녀석도 다가가서 꼬리 치며 잘 따른다. 어느 날 마당에 나가니 일월이가 잔디 위에 뻘쭘하게 서 있다 간다. 나라 생각이 나서 찾아온 거였다.
개념 있고 잘생긴 배우 정우성을 좋아하게 된 건 그의 출연작 '똥개'를 보고였다. 홀아버지와 사는 아들은 그를 무척 따르는 개에게 똥개란 이름을 붙여주고 어디든 같이 다녔다. 동네 양아치가 똥개를 유인해 잡아먹자 분노한 아들은 유치장에서 일대일 대결로 양아치를 흠씬 패준다. 젊은 정우성의 연기에 반해 그때부터 그를 좋아한다. '똥개'는 외로운 그의 반려였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교감은 소중한 감정이다. 반려동물 천만 시대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이 인권을 존중할 리 없다. 어릴 적부터 많은 개와 함께 살았다. 이삿짐 탈방이며 시골로 내려갈 때 개도 따라갔다. 곁에 없는 그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본 나라는 십칠 년을 살다 떠났다. 천수를 누렸다. 지금은 우리 집이 고양이 급식소가 된 덕분에 종일 길냥이를 본다. 우리끼리 이름을 붙여 부르지만 다가오진 않는다. 거리를 두는 쌀쌀맞음이 녀석들의 생명활동이라 그대로 좋다. 어떤 이는 동물의 털과 흐물한 살집의 감촉에 혐오감을 느낀다. 개의 게걸스러운 식탐과 고양이의 요귀 같은 울음소리에 소스라치는 사람도 있다. 기호는 개인의 호오(好惡)에 달렸지만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기의 삶을 사는 개별적 존재다. 생명은 생명답게 살다 떠나야 한다. 그것만 생각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