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文 (251)
올해 추석은 조용히 지나갈까.
실은 올해만 그런 건 아니었다. 매년 명절이 오면 우리 집은 고요한 공기에 묻히기 일쑤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오고 가는 사람이 없으니 그렇다. 평일에도 택배나 우체부 외엔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럴 때 가족이란 자연적인 게 아니라 인위적인 제도가 맞다. 육 남매인 우리 집은 명절이면 큰집에 모여 밤을 지새웠다. 같은 서울에 살아도 평소 만나지 못한 사촌들과 어울려 갖가지 장난과 놀이를 하며 보냈다. 친척들과 만나는 날이 명절이었다. 사춘기 소년들의 은밀하고 짜릿한 밤이 지나고 명절 아침 어른들과 섞여 엄숙하고 지루한 차례가 지나면 서로 아쉬워하며 뿔뿔이 헤어지곤 했다. 추석 날 아침 상엔 늘 토란국이 올라왔다. 양지머리와 다시마로 국물 낸 토란국은 별미였다. 미끌하고 부드러운 토란 알이 씹기도 전에 목구멍을 넘어갔다. 해마다 가을이면 토란국을 먹는 걸로 명절을 쇴다. 형제들이 일가를 이루자 우리 집은 꾸러미를 싸든 대표를 큰집에 보내고 따로 모였다. 형제의 자식이 늘어나자 갈수록 집이 좁았다. 어느 해 마치 붐처럼 형제들이 이민을 떠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명절은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시골살이를 시작하고부터 서울로 명절을 쇠러 올라갔는데 그것도 큰 일이었다. 상경보다 하경 하는데 녹초가 되고 말았다. 다시 우리 집에 서울 사는 어머니가 내려왔는데 그것도 세월 지나며 시들해졌다. 용돈을 낫게 입금하고 택배를 보내고 나서 고요한 명절 연휴가 지나기만 숨죽였다.
명절 어름에 농촌에 가면 자식들이 몰고 온 차들이 시골 마당을 채우고 남았다. 마치 유세하듯 번쩍번쩍한 차들이 늘어섰는데 내세울만한 자식들의 행보라면 촌로의 어깨가 절로 들썩이곤 하는 거였다. '앞서가는' 우리 자식의 행차가 '뒤처진' 남의 일에 비해 훨씬 고소하다. 읍내의 골목마다 담장 너머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넘쳤고 왁자한 웃음소리가 첫닭이 울도록 들렸다. 형제의 반이 타국에 살고 먼저 떠난 누이, 혼자 사는 누이를 빼면 아들이라곤 나 하나 남았는데 오가는 친척 없으니 명절이 절간 같았다. 처가도 장인이 어릴 때 사할린으로 징용 간 할아버지 탓에 장인은 외아들이고 먼 친척이 가물에 콩 나듯한 형편이라 쓸쓸하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처형 빼고 삼 남매가 근동에 사니 처남 집이나 우리 집에서 술 한잔하는 걸로 명절 땜을 하는 정도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명절이 한산할 것 같다. 중대본에서는 귀성을 자제하라고 했지만 조상과 부모를 끔찍이 생각하는 효자라면 기를 쓰고 내려갈 거다. 시댁 행이 좌절된 며느리는 쾌재를 부르며 펜션을 예약할 거고. 누구에게는 명절이 다디단 보약이고 누구에게는 독약처럼 쓴맛일 거다. 전통의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이고 습속으로 인한 구속이 뒤따른다. 관습은 정당성을 갖는다. 과거에 받아들여졌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권위를 갖는다. 권위는 종종 권력과 지배로 작동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남에게 건네지 못할 말을 함부로 던지고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상처는 깊게 남는다. 믿는다는 건데 신뢰는 기대와 실망을 부르고 상처는 깊다. 복종이 유연한 관계를 생산하므로 저항은 유보된다. 명절 밥상머리에서 폭언과 칼부림이 흔한 건 가족이라는 이유로 상대에 대한 보상과 채무 기대가 깔린 탓이다. 권위와 권력의 실종이다. 이럴 때 가족 관계는 짐이고 멍에로 작용한다.
바이러스가 일상의 비접촉을 강요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쨌거나 올해는 동네마다 적막한 명절이 될 거다. 명절 이후의 상황에 따라 살림은 쪼들리고 생존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될지 모를 일이다. 이미 알바로 생계를 잇는 계층은 거지반 일터에서 밀려났다. 정부는 내년에 공공 일자리를 대량으로 풀 전망이다. 빈곤층, 장애인, 소상공인과 종업원 등 사회적 약자는 숨통을 잇기에도 참혹한 현실이다. 모내기부터 농약에 버무려진 햅쌀을 찧으러 온 농부가 정미소 앞에 앉아 푹푹 담배를 태운다. 그의 얼굴에 수확의 풍요는 지워졌다. 기약할 수 없는 인생은 이 시대의 패러다임이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생존의 사냥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살아남는' 자격증이라도 따야 하나. 명절 이후도 암울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