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아침에 집을 나선다. 천변 산책길에 사람이 뜸하다. 연휴의 취기가 덜 가셨는지 희붐한 하늘 모서리가 기우듬하다. 밤에 내린 비에 젖은 풀이 무거워 보인다. 큰 물 진 뒤로 개울에는 모래톱이 많이 생겼다. 낚싯꾼의 발자국에 다져진 풀이 납작하다. 버리고 간 지렁이 통 위에 이슬이 앉았다. 물여뀌 꽃이 장식처럼 핀 물가에 송사리 떼가 물살을 거스르며 춤을 춘다. 벗은 여자의 다리처럼 지느러미를 흔든다. 물오리 네 마리가 보 쪽으로 미끄러진다. 천변을 오르내리며 짝 지어 밤을 보냈을 오리들은 아침이면 한데 모여 식사를 한다. 이태 전 야생 거위를 본 적이 있다. 무리에서 떨어졌는지 혼자 물을 차고 다녔다. 큰 새에 속하느라 백로 왜가리들과 어울리는 걸 보았다. 야생 거위는 사십 년까지 산다.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기온이 떨어진 탓인지 물빛이 투명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사는 동안 위선을 괴로워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먹고사니즘 앞에서 역사적 존재를 톺아볼 틈이 없었는데 그러고도 글을 생산하고 날 선 술상을 차려 독주를 마셨다. 이제 와서 타인을 향한 전언에 무위라는 단어가 들어와 박힌다. 대체 먼지 먹은 정신을 움직여 도모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바람" 하고 한숨을 쉬며 말하자 그 말이 바람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등 뒤의 바람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벌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람은 얼마나 살아야 세상의 셈속을 벗어날까.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에 대한 상처에서 여전히 유죄다. 지은 죄를 모조리 고백하고 싶어 질 만큼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