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文 (253)
쑥부쟁이 피는 가을이다.
산자락이 환하다. 때죽나무 이파리가 도르르 말리며 말라간다. 붉나무는 벌써 낮술에 불콰한 얼굴이다. 화살나무 울타리는 농염한 붉은빛을 날마다 뿜어낸다. 마가목 빨간 열매가 파란 하늘에 동글동글 떠 있다. 사람들은 다 가을에 벚꽃이 핀다고 개나리가 핀다고 난리다. 날씨가 미쳤다고 한다. 세상이 미쳤으니 날씨마저 제정신이 아니라고. 식물이 자라기 시작한 태초부터 그랬다. 남보다 도드라진 꽃눈은 가을의 날씨를 봄으로 착각해서 꽃을 내민다. 흔히 봄은 희망의 은유로 쓰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희망은 인식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날 뿐이다. 나는 그래서 구원이 없는 소설을 좋아한다. 뜬금없는 희망은 삶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구원이 없는 상황에서 구원을 인식하는 힘이 본질에 가깝다. 초겨울에 피는 납매(臘梅)는 그런대로 봄의 그리움을 전한다.
꽃은 존재만으로도 섭생의 끈질긴 순환을 증명한다. 자식의 몸이 찢겨 죽어도 입으로 밥을 떠넘기며 살아내는 것이 인간이다. 나라가 망했을 때 아편을 먹고 자결한 매천 선생 같은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도 독을 떠넘기며 망설였다. 입은 산 것을 살게 하는 음식이 통과하는 기관이다. 거기에 독을 넘기는 게 선뜻 실행에 옮길 일인가. 작년에 광양의 매천 선생 생가에 갔었다. 초가집의 정갈한 마당, 밥 지을 때마다 물을 길어 올렸을 우물, 선생의 글씨가 남은 마루 위 대들보가 기억난다. 매천 선생도 동학군을 반역의 무리로 보았다. 시대인식은 당시의 신분 위계와 자신의 사상에서 가치를 끌어올리는 패러다임이다. 현재의 위치에서 함부로 과거를 재단할 순 없지만 '그때는 할 수 없었지...'라든가 '전시였으니 누구나 불가항력'이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통하지 않는다. 인간의 보편적 존엄은 시대의 가치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늦게라도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자는 그래서 용기 있는 사람이다. 시대를 통과하면서 친일과 제주의 4•3 학살, 여순 사태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과 광주항쟁의 짐승만도 못한 학살의 현장에서 가해자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 중 자신의 죄업을 토설한 자는 드물다. 인간이기를 상실했던 자신의 상태를 드러낸다는 건 현재의 모든 걸 포기한다는 건데, 참으로 더럽게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거다. 일상에서 자신의 신념을 속이는 자잘한 배신이야 하나하나 말할 수 없는 노릇이긴 하다. 인간은 밤하늘의 별을 헤는 영적이면서도 쓰레기만도 못한 어처구니 짝이 없는 영혼을 지닌 존재다. 쓰레기는 재활용이나 하지. 쓰레기에게 미안하다.
역사는 시대 조건과 상황, 우연성, 인간의 의지를 구동력으로 한다. 지나온 역사를 단락 짓기 좋아하는 학자들은 인민을 역사의 물결에 휩쓸리게 한다. 하지만 개별적 존재인 대중은 역사의 고비와 상관없는 개별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낼 뿐이다. 평화는 물 흐르듯 고요한 상태가 아니라 주장과 사상, 서로의 입장이 소란스레 토론되고 나뉘는 시끄러운 상태다. 획일적 강요와 침묵과 복종이 들어찬 진공 상태가 아니라 저항과 변화가 가능한 상태, 그것을 발판으로 성장하는 상태가 평화다. 헤겔은 평안만을 지향하는 삶을 타락한 상태라고 말했다. 우리는 '몰라서도 안 되는 것'을 '몰라도 되는 걸로 되어 버린' 상태를 살아간다. 그러다 결국 '몰라도 되는 걸로 되어 버린' 세상을 살다 떠난다. 화려한 의복을 걸치고 기름진 음식을 입에 문 채.
새벽 출근하면서 밤을 줍는다.
정문의 쇠사슬 자물쇠를 푸느라 낑낑대고 있자면 어둠 속에서 푸른 눈동자가 달린 손가락이 어깨를 툭툭 칠 것 같다. 축구경기 보느라 눈이 우물 바닥까지 푹 꺼진 교대자가 마스크 너머로 인사한다. 오늘 아침은 먹다 남은 식빵을 가져와 머루잼을 발라 먹었다. 8시 넘어 산림청에서 나온 두 남자가 토양 조사 왔다며 산으로 올라갔다. 남양주에서 밤길을 달려온 모양이다. 나의 오지랖은 그들의 도시락을 염려한다. 산밤은 계곡에도 길에도 풀 속에도 떨어져 탄탄한 갈색을 뿜어낸다. 매일 한 되 남짓 주워다 이웃과 노나 먹는다. 아래께는 퇴근길에 양조장에 들러 주인 없는 문 앞에 두고 왔다. 다 저녁에 맛있게 삶아 먹노라는 전갈이 왔다. 기세 좋게 땅을 울리며 떨어지던 산밤도 끝물이다. 가을 산은 하루하루 제 몸을 물들이며 가라앉는다. 생태는 변화하거나 변질보다는 순환이 본성이다. 인간은 변화와 변질이 속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성장의 변화라기보다 변질 속에 퇴보가 숨은 듯하다. 느끼한 뱃구레 불리며 이마빡에 금칠하기 바쁘다. 그것이야말로 '시급하고 종요로운' 일이라는 듯이. 대답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지만 '왜'라는 질문은 서서히 소멸되는 느낌이다. '알려고 하지 않는' 뻔뻔함을 시니컬하게 감추는 건 타락 외엔 해석할 방도가 없다. 낙엽은 쌓여 부엽토가 되어 거름이 되지만 인간의 적시(積屍)는 어디에 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