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by 소인

은행

해마다 은행알 주워 지인들과 나누곤 했다.
올핸 은행이 흉년이라 멀리 순흥 사는 지인 네로 은행알 주우러 연이틀 다녔다. 서부 시대의 무법자처럼 포대 들고 은행 털러 가는 거다. 황금 동전 같은 이파리가 짤랑짤랑 떨어지고 관절 불거진 노인네 손가락 닮은 가지 앙상한 은행나무 아래서 은행알을 찾는다. 이른 아침 서리 녹기 전 손발 시리지만 한 알씩 주워 담는 재미 쏠쏠하다. 해거리하느라 듬성하게 떨어진 은행알을 수북한 이파리 헤치며 찾아낸다.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잎 아래 과육이 쭈글해진 은행알이 숨었다. 한 시간 넘게 쭈그린 자세로 주워도 비료포대 하나 채우기는 턱도 없다.

은행알을 분 바른 미인의 얼굴처럼 보얗게 말려 봉지에 담아 건네면 지인들은 줍고 껍질 벗긴 수고를 칭송(?)하며 고마워한다 주는 쪽에서도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한겨울 난롯가에서 구워 먹는 은행의 맛은 일품이다. 잘 익은 은행알 하나에 햇볕과 비바람, 은행나무를 품어준 대지와 은행나무의 수고가 녹아 있다. 바람이 지나가며 식은땀을 뿌리지 않았다면 잿빛 구름을 뚫고 물결처럼 흔들리는 햇빛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땅속으로부터 물기를 빨아올리는 나무의 노고가 없었다면 은행은 열리지 않았을 거다. 토실한 알에 천둥소리가 녹음되었고 새벽의 여명과 해거름의 붉은 황혼이 들었다. 알을 구워 입에 넣어 고소한 풍미와 쫄깃한 미각뿐만 아니라 비바람과 햇살, 천둥소리와 미명과 석양을 깨문다. 귀뚜리 우는 가을밤의 적막도 함께 맛보는 행운을 누릴지도 모르겠다.

길게 늘여 말하려는 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다름 아니다. 우주 공간의 빅뱅에서 생겨난 지구라는 혹성은 물론 무엇이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는 없다. 무생물이든 생물이든 서로의 관계에서 존재를 인정받는다. 혼자 공부한 이도 없고 홀로 우뚝 서 타인의 시선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저 잘나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저 잘생겨 예술로 인생을 노래하고 그리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간혹 관계의 정치로부터 떨어진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다. 오만한 사유가 꿈틀대며 기어오른다. 내가 중심이 되어 '내가 아니면'의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혼자서 느끼는 고독은 사회로부터의 단절과 결핍으로 생기는 감정이다. 잠시 동안의 외로운 감정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소중한 감정일 수 있지만, 길 경우 고립이라는 결핍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인간은 혼자만의 존재가 아니다. 학문이 경계를 넘어 통섭의 소통으로 노력하는 건 관계의 존재를 상상하지 않고는 우주의 내막을 진단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한밤에 풀숲에서 들려오는 벌레소리에 크게 놀라는 적이 있습니다. 만상이 고요한 밤에 그 작은 미물이 자기의 거짓 없는 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들을 때 평상시의 생활을 즉각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부끄럽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럴 때면 내 생활의 일상은 생활이 아니고 경쟁과 투쟁을 도구로 하는 삶의 허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삶이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하나의 작은 벌레가 엄숙하게 가르쳐 줄 때에 그 벌레는 나의 거룩한 스승이요, 참 생명을 지닌 자의 모습은 저래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됩니다."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의 말이다.

추운 날 김장하듯 은행을 갈무리할 땐 마당의 물이 꽁꽁 어는 무렵이다. 방탱이에 들앉아 퉁퉁 불어터진 은행알을 고이 밟는다. 파란 하늘이 지나가고 허연 입김이 터진다. 이마엔 땀이 솟고 그리운 이름과 얼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인간의 진정한 윤리란, 모든 생물에 대해서 끝없이 확산된 책임이다. 삶은 대결이 아니라 포용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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