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文 (259)
집수리가 끝났다. 이사 온 후 두 번째 집수리다. 처음 낡은 시골집을 사서 콧구멍만 한 방이 다닥다닥 붙은 흙벽을 헐어 주방을 만들고 문간방에 화장실을 들였다. 뼘뙈기 마당에 잔디를 심고 화단과 장독대를 꾸몄다. 철마다 제철 꽃이 피고 두어 포기 고추를 심고 호박 넝쿨을 지붕에 올려 심심찮케 호박을 땄고 골목 밖까지 된장 끓는 냄새가 진동했다. 돈 들이고 품 들이니 그런대로 살만 했는데 아내의 성미엔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산자락의 경사면에 지은 집은 장마 통이면 습기가 찼고 물먹은 벽에선 검버섯처럼 새까만 곰팡이가 피었다. 여름 내내 제습기를 틀었다. 한나절이면 제습기 물통이 가득 찼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물을 쏟았다. 처음 산 제습기는 주야의 노동에 지친 탓인지 가을 들어 기어코 멈추고 말았다.
시월에 시작해서 십일월에 끝났으니 달 수론 두 달인데 일한 날짜는 일주일이다. 시작해놓고 삼분의 일쯤 남겨놓고는 다른 집 일을 하느라 오지 않은 거다. 업자는 여기저기 현장을 벌여놓고 일했다. 독서로 치면 병독(竝讀)하든 셈이다. 일 잘하고 견적 부풀리지 않으니 알음알음 소개하는 일이 새끼를 친다. 육십 줄의 잘생긴 사장은 말씨와 태도가 선량하다. 가는귀먹어 함께 일하는 사람이 반통역하듯 끼어들어 대화를 엮어간다. 미장부터 건축일을 배웠는지 미장 솜씨가 깔끔하고 야무지다. 나도 반미장은 하는 주제라 그가 흙손을 잡고 몰탈 바르는 걸 유심히 지켜봤다.
직업훈련소에서 미장 실습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인천 바닷가의 직업훈련소 앞 하숙집엔 지방에서 올라온 훈련생들이 득실거렸다. 골목마다 막걸리병이 뒹굴었다. 휴일이면 훈련생들이 갯벌에 나가 잡아온 바지락으로 하숙집 아줌마는 조개탕을 끓여댔고 조개껍질은 패총처럼 쌓여갔다. 훈련생들이 노리는 건 기술을 배워 중동으로 취업 나가는 거였다. 어차피 따라지 끗발로 태어난 담에야 국내에서 한몫 잡기는 그른 터. 해외에 나가 한 삼 년 고생해서 밑천을 잡자는 심산이었다. 대기업 부설로 운영하는 직업훈련소의 종목은 미장과 조적, 용접이었다. 시멘트를 만지는 미장과 조적은 삼 개월이고 용접은 육 개월 과정이었다. 난 반월에 사는 이모집에서 첫차를 타고 다녔는데 매일 지각을 밥 먹듯 했다. 반월에서 소래를 거쳐 인천으로 들어오는 통로는 거미줄처럼 서해로 뻗어나간 수로 탓에 제대로 된 길은 외길 하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아침 체조를 하는 중간에 직업훈련소 정문을 통과했다.
훈련 기간이 끝날 무렵에 오월 광주가 터졌다. 전라도가 고향인 꺽다리 형은 막걸리를 마시며 울었다. 오갈 수도 없는 난리통에 들려오는 소문은 흉흉했고 끔찍했다. 실습 나간 공사장 건물 옥상에서 인부들과 술을 마시는데 누군가 우리 같은 밑바닥 것들은 빨갱이 세상이 되어도 배를 곯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누구는 이판사판 개다리판인데 눈깔 뒤집어지게 세상이 화악 뒤집어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실습 나간 현장에서 두 사람만 뽑히고 나머진 뿔뿔이 헤어졌다. 빈터에 이슬 젖은 달맞이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 나도 머물던 수락산 계곡으로 다시 들어갔다.
직업훈련소
아침 점호 벌어졌다 위로 아래로 국민체조 농사 거덜내고 중동 사막 땅 한몫 꿈 이 씨 손발 따로 놀아 꼭두각시 장군 예편 소장 떴다 거북 등딱지로 난짝 엎드려 애당초 없는 것덜 못 배운 것덜 출생 근본 자본 근본 도장 팍이여 좆 빠지게 벌어다가 허벌나게 맥여 조지면 줄줄이 거지신세 면하겄지 마누라 애새끼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인천 앞바다 짠물도 꼬뿌 없으면 좆도 아니여
월남 용사 김 중사 베트콩 처녀 보지 속에 조명탄 까 넣었다고 뻐덩니 게침 흘린다 쉴 참에 야바위 동전 치기 홀라당 털어먹고 뻐끔 담배질이라니 비벼 발라 문질러 미장 실습실 몰탈 바르기 한창이다 남쪽에선 폭도들이 총칼 차고 세상 뒤집었다는데 씨팔, 아라비아로렌슨가 좆도 아닌 김삿갓인가 외화벌이 한 탕 꿈에 따라지 끗발 비지땀 투성이라
훈련소 앞 대폿집에 냉막걸리 넘쳐나고 하숙집 골목 바지락 껍데기 산처럼 쌓인다 딸딸이 파리똥 덕지덕지 담벼락엔 규슈 탄광이나 아오지 탄광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댑뽀 석 달지나 고향 앞으로 가기 전 기능 잡부로 차출되어 가자, 가자 대한 남아 달라 벌이 국위선양으로 낙타 눈깔 펄럭이는 중동 땅으로 사막 땅으로
[팔십 년 오월]
변변하게 한우물 판 것도 없이 나이만 들었다. 먹고살자고 한 일이 구부러진 못처럼 한가득이다. 초년부터 삐딱하게 기울어진 성벽은 언제나 이리 튀고 저리 들이받으며 굴러다녔다. 스무 살부터 집을 떠나 살았다. 노가다를 전전하다 늦깎이로 들어간 대학에서 봄날 동네 뒷산을 뒤져 캔 나물을 씻어 시장에 나간 적도 있었다. 허름한 양복 차림의 청년의 입에서 나물 사란 말은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아까부터 멀찌기서 보던 술집 아낙이 들고 오라고 했다. 천오백 원을 받고 도로 술을 사 먹었다. 하늘이 캄캄했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도시락 귀퉁이에 된장을 담아 밥을 먹으면서도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유인물을 등사하던 친구의 망을 보다 유치장 생활을 하기도 했다. 여자를 울리기도 하면서 대학의 추억도 뒤안길로 사라졌다. 남도 보리누름에 가위를 치며 고물을 사고 쥐포 공장에서 쥐치를 말리고 벽돌을 찍다 중선배를 탔다. 통통통 수제비처럼 떠 있는 섬 사이를 빠져나가 이틀을 꼬박 가면 동지나해 54 해구에 닿았다. 우윳빛 바다에 닻을 내리고 투망을 하면 긴장 속에 눈만 반짝인다. 선창의 선원들은 첫그물을 올리고 생선살을 먹어야 멀미가 가셨다. 갈치 조기 아귀 갑오징어가 갑판 위로 쏟아졌다. 그물을 풀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갈매기떼가 아귀처럼 몰려와 그물코에서 찢겨 나간 생선을 노렸다. 음력 삼월의 눈바람이 얼굴을 할퀴는 바다에서 그것들은 반가운 손님이었다.
출 어(出 漁)
국동 얼음창고 컨베이어 타고 싱싱한 얼음 조각 한껏 배 채우면
기름 먹은 바다 위 고등어 배 갈라 소금 뿌리듯 물자락 들추며
중선배 나아간다 수제비 같다 남해 사이 점점이 등대 비춘
섬의 표정 안개 위로 지울 때까지 통통통 길 열린다
멀미 언제나 붙어 다녀 육지 멀미 사람 멀미 뱃멀미 바다 멀미
멀미 따라다니는 갈매기 탐욕의 시선 죽지에 감추고 항상
등 노린다 물속은 어군탐지기로 까 볼 수 있어 네 뱃속 시커먼 창자 맴도는 꿈 어지러워 씨팔, 골 때려
멀미가 출렁거려 일곱 물 오사 해구 문패 잠기듯 부표 대륙붕 떠돌다 투망 소리에 긴장한 수초 오금 저린다 씨팔, 육지 소식은 잊어버려 똥내 나도록 그물 당기다 항구 횟집 쌍과부 허벌나게 박아 조지면 그뿐 뱃놈 신세 신접살림 웬 호사여 어느 해고 대목 터지는 날 이 바닥 떠나 내 고향 영산강 변 복사꽃 흐르는 물길 따라 소 몰고 밭갈이로
저무는 고향에서 메나리 한 판 멋들어지게 뽑을 거야
아홉 물 열 물 동지나(東支那) 막창 해구(海溝) 갈치 아구 고등어
갑오징어 삼치 데룩거리는 수조기 와르르륵 쏟아진다 화태도 곰보 선장 벌어진 입 턱 빠진다 음력 삼월 봄 바다에 함박눈 퍼붓는데 눈물 콧물 시린 입김 마구 비벼져 출렁인다 에헤라, 한 그물에 출어 밑천 뽑아내고 두 그물 세 그물에 모작 패 호주머니
풍선 마냥 부풀어간다 화장(火長) 이마에 땀 솟는다 살 튀는 병어 접시 소주잔 알싸하게 돌아가는데 갓 잡은 고등어 뒤끓는 무 간장 속에 숨넘어간다
찌리링 찌리링 닻을 올려라
내일은 욘 단 록 단 참조기를 덮칠 거라 갑판장 얼음 삽질 신명나게 돌아가고 동지나해 푸른 갈매기 한 그물 대목 꿈에 힘줄 솟는다
[여수 선적(麗水 船籍) 제65 대창호에서]
새로 세 시.
자다 깨다 시계를 들여다본다.
오전 출근 조일 때는 알람을 켜놓아도 무시로 잠이 깬다. 오줌 누고 와서 잠이 들었다가 꿈이라도 꾸면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대개 출근길의 어둠 속에서 알람 소리를 듣곤 하는데 출근 삼 일째는 언제나 잠자리에서 알람 소리에 깬다. 꿈과 현실을 빠르게 갈아입고 급하게 옷을 꿰고 고양이 걸음으로 현관을 나선다. 도시락과 책가방을 손목에 걸고 나서면 동네는 무덤 같은 적막에 잠겨 있다. 우리 집에서 밥을 해결하는 고양이가 밤새 쏘다니다 들어서기도 한다. 바짝 선 등털에 새벽의 불빛이 올라탄 채. 오늘은 영하 오 도. 본격적으로 겨울로 진입한 날씨는 냉랭하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따라 새벽길이 조금씩 열린다. 퇴근하고 차를 손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읍내를 빠져나가자 장례식장의 불빛이 멀리서 보인다. 손님이 들었을까. 앞으로도 이 고장에 쭉 산다면 나도 언젠가 장례식장의 고객으로 들어설 거다. 누구나 거쳐가는 길은 이어지거나 끊어지며 천 갈래로 뻗었다. 욕망과 한숨과 웃음과 눈물이 범벅된 표정들이 머물다 간다. 전조등을 올린다. 장례식장 커브를 돌아 직선 길을 타자 양조장 마당의 외등이 나타난다. 양조장 울타리 주변의 논밭은 가을 걷어간 뒤로 달빛만 흥건하다. 앞유리의 성에가 녹자 슬슬 히터의 온기가 퍼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