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TMR 배달

새로 여섯 시에 집 나섰다.
연일 십 도 밑으로 곤두박질치는 기온 탓에 영하 오륙 도는 포근하게 느껴질 정도다. 약속한 장소에서 사료 배달 일을 하는 동생을 만났다. 그와 나는 얼마 전까지 기간제 일을 함께했다. 작년 말로 사업이 종료되고 동생은 사료 알바를 시작했다. 배달 일을 견학하겠다는 나의 요청으로 오늘 만난 거였다. 소읍은 조금씩 아침을 여느라 언 손을 녹이며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인근 Y시를 향해 아침 공기를 갈랐다. 사료 공장 빈터에 타고 온 차를 세우고 공장 마당으로 들어섰다. 간밤의 적막이 걷히고 옆 공장과 함께 소음으로 빠져들기 직전이다. 직원도 출근 전이다. 전날 사료를 받아놓은 트럭이 사일로 밑에 얌전하게 기다린다. 사료차를 몰고 어둠이 벗겨지는 시골길을 달린다. 지방도시 외곽의 공단으로 졸음을 끌고 출근 차량이 속속 들어온다. 사료 무게로 핸들이 논다며 동생은 조심조심 속도를 높인다. 마른 개울 한가운데 하얗게 석얼음이 깔리고 갈대가 이리저리 나부끼는 한겨울 삭막한 겨울 풍경이 펼쳐졌다.

첫 번째 '호수농장'에서 돌아오니 사료공장에서 출근한 사람들이 포대에 사료를 담는다. 컨베이어를 따라 포대가 도착하면 로봇 팔이 포대를 안아 사각 케이지에 차곡차곡 넣는다. 전기만 공급하며 쉬지 않고 움직이는 로봇 팔은 정확하고 지치는 법이 없이 포대를 쌓았다. 사료공장 맞은바라기 공장 마당에 알루미늄 괴가 산처럼 쌓였고 공장 한편에 알루미늄 캔 등이 쓸어놓은 낙엽처럼 모였다. 동생은 질 낮은 알루미늄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라고 일러준다. 사료공장 주변에는 강화 플라스틱 관을 만드는 공장도 있었다. 중소 생산업체가 오소소 모여 날이 새자마자 뚝딱대는 소리가 연기처럼 겨울 하늘로 올라간다. 사료 공장 마당에는 배합사료의 재료인 콩깍지 소맥피 곡물이 톤백에 담겨 있었다. 지게차는 포대가 찬 케이지를 들고 부지런히 나른다. 공장 안까지 겨울 햇발이 비치니 따듯하게 느껴지지만 손발은 여전히 시리다. 배합된 사료가 트럭 탱크에 쏟아지는데 햇볕에 반사되어 황금빛을 띤다. 마치 막켄나의 황금가루가 쏟아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배합사료는 80년대 초에 이스라엘로 유학을 다녀온 학자들이 이스라엘과 자원 상황이 같은 한국에 적합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여 낙농분야에 접목을 하게 된 것이 시초다. 소의 영양소 요구량은 체 유지, 생산, 증체, 비육단계, 번식 단계, 계절 환경에 따라 달라지며, 이러한 변동요인을 감안하여 소가 하루 동안에 필요로 하는 영양소 요구량을 충족하도록 곡물, 콩깍지, 비타민 등 여러 종류를 혼합한 사료를 티엠알(TMR: Total Mixed Ration)이라고 한다. 즉 조사료와 농후 사료, 첨가제 등을 성분표에 의해 섞어서 비빔밥 형태로 급여하는 완전혼합사료를 지칭하는 말인데 값은 비싸나 직접 배달해 부어주니 농가의 일손을 덜 수 있어 선호한다. 간단히 말해서 포대에 담은 tmr사료가 식은 밥이라면 막 배합해서 포장하지 않은 사료는 새로 지은 따끈한 밥인 셈이다. 사람처럼 소도 막 지은 고슬고슬한 밥을 좋아한다.

1톤 트럭에 사료 사일로를 실어 공장에서 사료를 공급받아 여섯 군데 축사에 공급한다. 한 번에 2톤을 싣고 모두 네 행보 여섯 군데의 농장을 돌면 하루 일을 마친다. 대개 오후 한 시쯤이면 사료 배달은 끝난다. 공장 컨베이어 앞에서는 인부들이 포대에 사료를 채우고 로봇 팔이 케이지를 채우면 지게차가 밖으로 나른다. 한겨울 맵찬 바람은 막았고 일하는 사방에 열풍기를 둘러쳐도 손끝을 파고드는 냉기는 어쩔 수 없다. 음산한 추위가 어깨를 짓누른다. 축사에 도착하면 운전을 조심하면서 소들이 고개를 빼고 먹는 바닥에 사일로 문을 열고 사료를 조금씩 바닥에 쏟는다. 로울러가 돌아가며 사료를 쏟으면 양과 거리를 조절하며 앞으로 나간다. 사료가 쏟아지는 동안에도 성급한 놈들은 칸막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사료를 먹는다. 농가에 따라 오후에 먹을 사료는 소의 주둥이가 닿지 않게 두 줄로 나눠놓기도 한다. 작업이 거의 기계화다 보니 작업자의 세심한 운전과 조작이 필요하다. 동생은 모든 공정을 익숙하게 진행하며 소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혼자 일하느라 무료한 탓이겠지만 매일 만나는 소들에게 동물이라고 정이 안 들 리는 없을 거다. 축사를 지키는 개에게도 안부를 묻기도 한다. 세 번째 농가를 돌고 길가 양지머리에 차를 세우고 동생이 사 온 김밥을 한 줄씩 먹었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 커피와 먹는 김밥 맛은 꿀맛이었다. 가을 걷어간 빈 논에는 돌돌 말아놓은 짚더미가 전장(戰場)의 비석처럼 널브러졌다. 배를 채우고 짚북데기 위에 오줌발을 날렸다. 바람 불어 쌀쌀했지만 불끈 떠오른 햇발이 차츰 몸을 녹여주었다.


여섯 군데 농장을 도는 동안 주인은 한 사람, 외국인 노동자가 한 사람 나와 본다. 젊은 주인과 젊은 노동자인데 둘 다 정말 잘생긴 얼굴이었다. 동생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인사를 나누는데 반말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농장을 지키는 개집을 근사하게 지어 보살피는 거나 농장을 운영하는 외양을 보더라도 주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얼마 전 난방이 안되는 하우스에서 동사한 외국인 노동자의 소식을 들었을 때 미어지는 분노가 일었다. 짐승보다 못한 차별의 칼날을 서슴없이 들이대는 농장주는 그러고도 자신은 꿈을 키워갈 거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두고 서로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무리와 무엇이 다를까.

농장 입구로 사료차가 들어오면 소들은 밥때를 알고 소똥 위에서 주섬주섬 일어난다. 배달처는 우유를 내는 젖소 우사(牛舍)가 대부분. 큰 소 우리 옆에 염소 울음으로 밥을 보채는 송아지들이 모여 있다. 중송아지 한놈은 뭐가 신나는지 연신 우리 안에서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우유를 내다 유선(乳腺)이 말라버린 늘그막엔 고기와 가죽까지 바치는 생명이지만 사는 동안의 처우도 중하다. 좁은 케이지 안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살을 찌우는 닭 돼지나 제가 눈 똥오줌 위에서 평생을 사는 소나 보기 딱한 건 마찬가지다. 옛날 시골집 뒤란서 돼지 잡는 거 보고 사흘 내내 밥을 못 먹었단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소고기는 귀한 음식이지만 예서 보니 선뜻 숯불에 올리기가 미안해진다. 동물과 사람은 사유의 차이라지만 저들의 심중을 헤아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모든 존재에는 생과 멸이 동반하는데 구무 불성(狗無佛性)이란 말인가. 업(業)을 알지(識) 못한다고 불성이 없다는 건 미욱한 인간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삶의 현상에 의혹의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서 나무토막처럼 살아가는 인생 천지 빛깔 아닌가. 남의 고통에 대한 배려의 상상 없이 제 식구 감싸기로 삶의 도락을 즐기는 개뼈다귀들 쌔발렸잖은가. 서푼 어치의 명리(名利) 위해 비린 몸뚱이에 똥칠하는 좆도 아닌 것들 나래비로 늘어섰잖은가 말이다. 아비가 몸을 푼 딸을 위해 목을 매달려고 뒷산으로 끌고 가도 꼬리 치며 따라가는 백구는 과연 해탈한 존재인가. 똥 위에 선 너와 똥칠하고 숨 쉬는 나. 소의 커단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었다.

점심시간을 넘겨서야 사료 배달이 끝났다. 바람이 몰고 온 쌀쌀한 냉기가 온몸을 꽁꽁 얼렸다. 사람이 밥을 굶을 수 없듯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일이다. 시내서 잘한다는 순댓국집을 찾아 늦은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너른 홀 안에는 노인 서넛이 숟가락을 순댓국에 푹 담가 고기를 건지고 있었다. 우리가 보얀 국물에 새우젓과 부추무침을 쏟아 넣고 숟가락을 휘휘 젓는 동안에도 밖에는 찬바람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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