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섰다. 영하 사오 도는 세모 내내 영하 십 도 아래로 곤두박질치던 것에 비해 봄 날씨다. 울진 방향으로 전용도로를 달려 소천면을 지나간다. 눈에 익은 간판이 보인다. 외곽도로가 생겨 한가해진 풍경이다. 서울서 내려와 처음 삼 년을 면에서 더 들어간 마을에서 살았다. 아이들 어렸지만 그때 뭘 먹고살았는지 기억이 가뭇하다. 한겨울 산에 올라가 억새 뿌리를 캐거나, 임산 도로 사방공사를 다니거나 숲 가꾸기 공공근로를 했다. 생전 처음 농사짓는다고 터진 농약 줄을 때우며 밭고랑을 기어 다녔지만 소출은 굶어 죽기 맞춤이었다. 아이들은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고 일 없이 물가에 나가 낚싯대 던지는 시간이 잦았다. 삭풍 몰아치는 솔숲에 펑펑 퍼붓는 함박눈이며 한여름 밤도와 흐르는 개울물 소리 듣기 좋았는데 아이들과 아내는 내일에 관한 대책 없는 가장을 쳐다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삼 년 만에 마을을 탈출했다. 리에서 면으로 다시 면에서 읍으로 이사하다 일자리 찾아 바닷가 도시에서 십오 년을 살았다. 동굴에서 탈출해 도로 동굴 속으로 처박힌 꼴이었다.
간밤에 자국눈이 내린 강변에는 하얀 눈을 뒤집어쓴 강돌이 잠뽁 깔렸다. 햇발이 들지 않는 응달엔 눈이 그대로 남았다. 물길 따라 솟은 산꼬대를 녹이는 햇발은 여적지 느릿하게 넘어오고 있었다. 바람이 차다. 태백에서 경상도 땅으로 허위허위 달려온 물길은 군데군데 석얼음을 쌓으며 간신히 줄기를 이어간다. 작년 여름 미끈한 강돌에 허리까지 물에 빠지면서 피라미 잡던 곳에 텐트를 폈다. 건듯 부는 바람이 펼쳐진 텐트를 잡아챈다. 바닥이 온통 자갈투성이라 팩이 들어가지 않는다. 끈을 달아 큼지막한 호박돌을 네 귀퉁이에 묶었다. 금세 손이 꽁꽁 언다. 텐트에 들어가 커피를 끓였다. 언 속이 녹는다. 매트 까니 텐트 안은 견딜만하다. 책 펴고 엎드렸는데 바람이 짓누르는 통에 텐트가 들썩거린다. 글자고 뭐고 도통 눈에 들오지 않는다. 자세를 고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밤중에 불어난 열하(熱河)를 건너던 연암이 떠올랐다. 지금이 벌건 대낮이 아니고 한밤중이었다면 불안감은 더했을 거다. 짐승이 나타나거나 끝없는 눈보라가 때렸다면 불안은 공포를 몰고 왔을 거였지만 지금은 사람의 출현이 성가실 뿐이나 그건 확률상 희박하다.
캠핑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비박(Biwak)족이 늘어난다. 비박은 등산이나 트레킹 도중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밖에서 잠을 자는 한뎃잠, 한둔 또는 노숙(露宿), 야숙(野宿)을 뜻하지만 요즘은 텐트를 치고 동계 비박을 흔하게 한다. 영하 이십여 도로 곤두박질 치는 극한의 추위 속에서 한둔하는 청년들의 유튜브가 인기를 끈다. 사계절의 자연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을 즐기는 문화는 도시화된 일상 패턴에서 인간 본원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숲에 들어가면 인간은 숲의 일부가 된다. 천 개의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나무와 나무 사이 흐르는 바람, 새와 고라니의 뒤채임을 귀담으며 땅 위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태고의 시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멀찌기 떨어진 관찰자의 입장에서 톺아보거나 예까지 붙어 따라온 일상의 자잘한 티끌을 털어내기도, 더러는 소중한 인연의 얼굴을 떠올리며 뜨거운 입김이 밴 기억을 찬찬히 반추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돌옷을 입은 바위처럼 스스로 사물이 되어 밤하늘 점점이 박힌 뭇별과 동화되는 착각을 즐기기도 한다. 상대하는 것은 자연일 뿐, 나를 시험하는 시선도 없으며 오직 숲 속에서 숨 쉬는 존재의 가느단 사유를 붙들고 밤을 지새운다. 혁명 뒤에 끊임없이 벌어지는 혁명처럼 숲을 벗어나 도시로 들어가기까지 번민의 탈피는 반복된다. 자연을 상대하여 그 속에 잠겨 존재의 반향을 느끼는 행위를 통해 삶의 전존재를 몸에 담는다. 서걱대는 마른풀, 등짝을 누르는 돌멩이, 달빛에 반사되어 떨리는 떡갈나무 우듬지, 꿈결인 듯 귓구멍을 파고드는 물소리,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한 줄기는 사물이 된 나와 시간의 흐름에 관계한다. '철저히 타인에 대해 존재하는 말'은 끊기며 잠시 고독한 존재가 된다.
마른 강변에 텐트를 치고 들앉아 곰곰 생각에 잠긴다. 낙동강의 상류. 황지 못에서 발원한 물길은 예천 삼강주막 합수머리를 지나 남으로 내달린다. 뾰족한 산의 사이를 뱀의 허리처럼 구불텅하게 흐르는 강은 강이되 강은 예전의 몸이 아니다. 조금 올라간 석포면의 아연제련소에서 쏟아낸 카드뮴은 주변 산의 토양과 수목을 녹이고 강으로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먹고사느라 공장으로 몰려들었고 밥집과 술집이 늘었다. 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는공장 마을 사람들은 강에서 사는 물고기는 먹지 않았다. 상처 난 강의 신음은 여름 큰 물이 질 때 절정에 달한다. 문명이 토해낸 온갖 쓰레기와 오염물질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낙동강 오백 킬로를 단숨에 달린다. 한국전쟁 때 낙동강 전선을 두고 시산혈해를 이룬 다부동 전투. 유골은 가루가 되어 강물에 녹아들었다. 시인 조지훈은 종군기자로 낙동강 전선을 누비며 참혹한 전쟁을 시로 썼다. 강을 따라 마을이 생기고 도시가 서고 다리가 생겼다. 모든 게 달라졌고 이 편한 세상을 노래하는 사람 한쪽에서 누구는 눈물을 찍어낸다. 수많은 강돌처럼 한 점 사물이 된 나는 눈가루 날리는 무연한 강변에서 바람처럼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