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文 (267)
인간의 신념은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을까. 자신이 세상을 보는 눈은 과연 정확할까. 정확하다는 건 믿는 바를 따라서 하는 데 있어 틀림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좀 더 근원적인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의미와 목적까지 말이다. 인간다운 삶이란 그가 속한 공동체의 가치관에 의해 정의된다고 생각한다. 태어나 성장하면서 대대로 이어진 공동체의 가치를 정신과 몸에 익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공동체의 가치가 모든 구성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합당한 것일까. 그걸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자신이 보고 느낀 대로 학습하고 삶의 가치를 세우는 것이 인간이라면, 인간의 세계관은 말 그대로 자신이 본 것만 믿고 따를 뿐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영토가 나눠지고 국가가 세워진 이래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국가는 국가주의의 색채를 띠지 않고는 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 국가가 인정한 구성원 외의 개체는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억압을 지속한다. 국가는 국가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구성원에게도 폭력과 억압을 행사한다. 히틀러는 아리안족의 우월한 혈통을 내세워 타민족을 정복하고자 유태인을 포함 내국인 중 정신병자, 반체제 분자, 고아, 장애인 등을 격리하고 배제했다.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었던 일본의 군국주의는 아시아 제국의 민중을 약탈, 강간, 학살했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타국의 민중뿐 아니라 자국의 민중까지 전쟁과 전쟁 준비에 동원해 고통에 빠뜨렸다.
동일한 언어와 문화는 구성원을 민족 공동체로 수렴하며 고유의 역사를 이어간다. 국가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기준으로 통치한다. 그렇다면 국가와 민족은 범박한 의미로 인류의 인간다운 삶에 기여할까. 불행스럽게도 인류의 역사는 그렇지 못했다. 가시적 존재와 불가시적 존재라는 배제와 차별의 가치관은 국가와 민족, 계층 간에 작동해 인류의 굴곡진 역사를 만들어 왔다. 배제와 차별은 타인에 대한 혐오를 생산하고 전쟁과 학살을 일으켰다.
단순히 역사를 말한다면 과거의 발자취 정도겠지만 누가 역사를 말하느냐는 발화자의 상황에 따라 역사는 천 갈래의 색깔로 나타난다. 역사는 시대적 조건과 상황, 인간의 의지 그리고 우연성이 결합한 시간의 흐름이다. 시대적 조건과 상황은 국가와 민족에 따라 다르다. 그것을 해석하는 인간의 의지는 앞에서 말한 세계를 향한 가치관일 테다. 동일한 삶을 반복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일회성이기 때문에 실수는 회복될 수 없지만 계속적이라는 시간성은 반성과 성찰을 생산한다.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변화와 성장은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늘 깨기 때문이다. 반면에 동일한 사고를 고수하려는 근저에는 안온한 상황의 고착에 대한 염원이 도사리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를 혐오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그들을 우호적으로 대하기란 개구리 샅에 털 나길 기다리기보다 어려운 일일 거다. 마찬가지로 태극기 휘날리는 노인의 굳은 신념을 하루아침에 깨기란 죽은 조상이 살아 돌아와도 불가할 것이다.
혐오와 차별의식은 뿌리가 깊고 질기다. 진실에 가까운 사실을 제시해도 그들은 이미 학습된 것만을 믿고 따른다. 책봇이 아무리 데이터를 주입해도 타인을 향한 배려의 상상력을 발휘하기 힘든 것처럼 그들도 학습된 인지능력 밖의 것에는 창조성을 드러내기란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여기에는 다른 중요한 인자, 즉 공감이란 감성이 거개를 좌우할 정도로 클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복잡한 내면을 지닌 존재라 공감 이후의 행위조차도 다양한 갈래로 나뉜다.
과문한 지식으로 들떼놓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에둘러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나는 지금 달성에 있는 김충선 마을로 간다. 김충선(金忠善, 1571~1642)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 장수의 선봉이 되었다가 조선에 귀화하여 일본 공격에 앞장을 선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실록에는 김충선을 비롯한 귀화한 일본군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실렸다. '항왜(降倭)'라고 하는 이들의 귀화 이유는 배고픔으로 인한 전의상실 등 다양하나 김충선의 경우는 특이하다. 김충선의 일본명 사가야(沙可也)가 남긴 자전적 가사 <모하당 술회가(慕夏堂述懷歌)>의 제1단 부분에서 사야가는 '넓디넓은 천하에서 어찌하여 오랑캐의 문화를 가진 일본에 태어났는가'에 대해 탄식했으며, 그래서 아름다운 문물을 보기를 원했다. 그러던 중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을 정벌하러 가게 되면서, 그는 선봉장으로 임명되었다. 사야가는 이 전쟁이 의롭지 못한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예의지국 조선을 한번 구경하고자 선봉장이 되어 조선에 오게 되었다. 이때, 그는 맹세코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마음속으로 결단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보편적인 인류애는 불가능한 가치일까. 내가 도둑질로 밥을 번다고 해서 아들에게 도둑질을 가르치란 법은 없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긁어모은 전직 대통령이 자식에게 파렴치한 행위를 따라 하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안동 임청각의 석주 이상룡 선생이나 우당 이회영 선생 일가가 전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떠나기 전 노비문서를 태웠다. 또한 함께 떠난 하인들에게 결코 말을 놓는 법이 없었다. 조선 후기를 거친 시대 공간에서 그것은 혁명과도 같은 행위이다. 선생의 일가는 (현재의 가치로) 수백 억의 가산을 독립운동에 쓰고 자손들은 타국 땅에서 병사하거나 굶어 죽었다.
인류 보편의 가치는 민족, 인종에 계급과 차별의 위계를 두지 않는 가치일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공산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사상이 들불처럼 번진 것도 암울한 시대를 극복하고자 한 대중과 지식인의 몸부림이었다.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 선생이 월북했다고 해서, 북한 고위직 간부를 역임한 빨갱이라고 해서 독립 서훈에서 배제했던 지난 정권의 행보를 보면 국가주의가 얼마나 인류 보편의 가치와 동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태극기 나부끼는 노인들이 숭배하는 박정희는 혈서를 쓰고 일군 육사에 입학했으며 만주군 장교 계급장을 달고 독립군을 토벌했다. 해방이 되자 그와 조선인 만주 군은 독립 군복을 입고 귀국했다. 박정희는 국군 창설 후 남로당의 신분으로 암약하다 여순 사태 때 숙군의 위기에 처하자 동료를 고발하여 목숨을 부지한 교활한 기회주의자였다. 태극기 노인들에게 이걸 얘기하면 다 지나간 얘기 거나 날조라고 뼛성을 내며 침을 튀긴다.
허위의 선전 선동이나 인신공격에 물든 민중은 차별과 배제의 시선에서 곱지 못하다. 국가주의의 지휘봉에 휘둘려 자기 발목이 썩어가는데 이념과 사상의 데마고기에 빠져 같은 민중을 혐오한다. 국가와 이념을 초월한 사해 동포 주의는 과연 이상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가. 평화로운 상태란 일체화된 고요와 침묵의 상태가 아니다. 서로 각기 다른 견해를 자유롭게 나누며 합의에 다다르는 어수선하고 소란스런 상태여야 한다. 그러나 사분오열로 갈라져 대립하는 얼크러진 실타래 같은 난맥을 보며 지나는 하루가 무겁다.